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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14. 2022

영국 개가 싫어요. < 캔터베리 >

아난티 코브의 해안가는 산책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수거 없다 싶은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 레몬색 달, 잔잔히 실려오는 바다 내음에 가진 자들의 여유가 묻어났다. 거금을 들여 마련한 시간과 장소이니, 만족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린 지나가는 길에 들려본 것이지만, 그 시간에 산책길에서 거닐거나 맥주 한잔을 하는 이들은 투숙객일 테니 말이다. 

반려견을 데려온 사람이 셋 중 하나였다. 아난티 코브가 살기 좋은지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엄마 길고양이는 새끼를 세 마리나 데리고 산책길 중턱에 자리 잡고는 산책하는 인간의 개들을 구경하고 있더라. 아들은 고양이를 좋아하고, 딸은 개를 좋아하니 얘들은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어머니와 남편은 피하니라 고생이었다. 

하얀 개 한 마리가 어머니 다리 쪽으로 가 냄새를 맡으러 다가가니 화들짝 불에 덴 듯 발을 피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너희 집에 개 키우면 너희 집 근처도 안 걸 거다 하셨던 어머니는 세상이 변하는 줄 모르고 아직도 아들이 개에 물렸던 그날에 머물러 계신다. 


독일에서부터 개를 키우겠다고 징징 거리던 딸애를 한국에 오면 사주겠다고 달래 왔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보니 개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고, 남편은 여전히 개를 무서워했다. 전보다 더 무서워하는 듯해 보인다. 

남편이 제일 어렸다고 했다. 뜀박질이 제일 늦은 남편은 피가 나게 엉덩이를 물렸는데, 어머니의 친정인 대구 외곽 시골이었단다. 광견병이라도 걸린 개면 어쩌나 싶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개 주인이 눈을 흘기며 유난을 떤다고 어머니를 나무랐다고 한다. 40년 전의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기가 막히시는지 딸아이에게 말씀하셨다.

" 키우지 마라. " 

딸이 안쓰럽지만, 어찌하겠는가. 딸이 독립해서 원하는 반려 동물을 키우는 날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남편을  배려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런던에서 보내도, 캔터베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캔터베리에서 도버까지는 금방이고, 고전인 캔터베리 이야기의 무대인 도시에 대한 개인적인 로망도 있어서, 들르고 싶었다. 12월의 영국 남동부는 8시가 되니 자정인 듯 어두웠고, 연휴 끝이다 보니 문 열은 가게도 많지 않아 도시는 적막하기만 했다. 캔터베리라고 일러주지 않았다면, 여느 영국 시골 도시라 해도 그렇겠거니 했다. 

런던은 런던이고 영국은 영국이다. 마치 서울과 한국이 다른 것처럼, 런던과 영국은 갭 차이가 크다. 세계 최대 도시 런던은 연휴에도 휘황 찬란 도시인 데다, 연휴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몰이를 하니라 더 바쁘고 떠들썩하다. 반면 런던 외 지역은 설날이나 추석 전후의 지방도시들처럼 황량하다. 

런던에서 5일을 지내다 프랑크푸르트로 복귀하려다 보니 감이 떨어졌었나 보다. 캔터베리 도착이 9시였는데, 저녁을 먹고 런던에서 떠났어야 했다. 도심을 둘러싼 성곽 앞에 주차를 하고, 문 열은 초밥 집을 구글맵에서 한참을 찾아 아이들을 데려갔다. 주문 마감이 30분이라고 해서 넉넉히 시켰는데도,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도착한 초밥집이라 양이 모자라다 했다. 

초밥집을 나서 차로 돌아가는 길은 가로등조차 어두웠다. 3시 방향 낡은 도심 공터에는 부랑자들이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듯했다. 늘씬한 개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다리가 길어 성큼성큼 순식간에 우리 앞을 막아섰다. 


내 뒤엔 아이들, 아이들 뒤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이 개에 물렸던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럴 땐 그도 속수무책일 것 같다. 연애하면서도 친정집에 있던 개와 고양이가 무서워 얼씬도 하지 못했던 그에 대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가만있어. 다들." 

식구들 앞을 막아서서 가만있으라고 말하고는 얼음처럼 가만히 서서 개를 쨰려보았다.  길 건너 주인을 보호하고 싶은지, 우리를 보고 연신 컹컹 짖어댔다. 빈 시내가 개 짖는 소리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개를 쳐다보고 서있었을까? 부랑자 모임이 있던 개 주인이 개 이름을 부르며 우리를 보고 고개를 까딱 했다. 

이제야 부르다니, 나쁜 영국 놈 새끼. 

그제야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남편이 가만 굳어 서있다. 남편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는 한마디도 없이 부랴부랴 차로 돌아와 숙소를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줌도 나누지 않았다. 





새벽마다 산책길에 다녀오는 남편은 오늘은 어떤 개가 나를 보고 짖었다 또는 오늘은 어떤 개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더라 하고 이야기 해주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개들은 소형견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소형견에게도 졸긴 하는 듯 하지만, 어린 시절처럼 물어 뜯길 걱정은 하지 않나 보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만큼 여유가 되는 거겠지 싶다. 

그도 언젠간 바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스쳐 지나가는 개가 체취도 맡을 수 없게 재빠르게 발을 내빼시는 어머니 같은 노인이 되지 않길 빈다. 그는 호박씨라는 부인이 있으니 개도, 고양이도 무서워하긴커녕 어여삐 여기는 멋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문그림, 박계숙 작 < 잠복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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