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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21. 2022

해파리를 믿나요?

아쿠아리움도 동물원도, 식물원까지도 좋아한다. 사람보다 사람 아닌 것이 많은 곳에 가면 볼거리가 많아서 눈이 풍성해진다. 알고 싶은 것이 널려있어 뇌가 춤을 춘다.

시댁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 해운대 해변에는 씨라이프 부산이 있다. 최고다. 시댁에 반한다면 씨라이프가 가까워서라고 서슴없이 답할 것이다.

끈적이는 모래와 헐벗은 20대들의 비키니를 한 시간 가량 버텼다. 딸과 남편이 바다에 한 번 담그고 오고, 아들은 해변 벤치에 들러붙어 핸드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아쿠아리움 가면 얼마나 시원하게!"

14살, 12살이면 아쿠아리움 갈 때는 아니라며 시간 낭비, 돈 낭비라 말하고픈 남편 눈치를 살피며 셋을 끌고 갔다.

인당 이만 원짜리 석빙고다. 적당히 어두컴컴하고 시원하며 물 내음이 가득한 곳에서 시간제한 없이 아름다운 생명들을 볼 수 있다면 조선의 임금님보다도 멋진 시절이다 싶다.




그리스 고린도 운하에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나프 폴리오 바닷가였다. 그리스의 추석은 하얗다 못해 눈이 부시다. 여름 관광 시즌이 끝나도 그리스의 날씨는 여름의 한 중간을 달리고 있었다. 핫 시즌이 끝나 관광객들이 적어 고린도 근교 바다는 인적이 드물다. 시저 샐러드 가격은 단돈 만원. 양동이에 담아 나오는 줄 알고 놀랬다. 시저 샐러드 접시가 아들 얼굴의 두배 만했다. 

그리스에 대한 40년 묵은 로망을 드디어 이루는 여행이었다. 그리스에 대한 애정 어린 필터를 장착하고 그리스를 만났다. 게다가 금융 대란에서 구제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연민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서유럽을 여행하면서는 한 번도 만날 수 없던 구걸하는 어린이들이 고린도 운하 초입에 몰려있었다. 두 아이 가는 구걸하는 아이들을 지나치자 궁금해했다.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쫓아오며 손을 내밀었다. 내 옆의 두 아이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프 폴리오 바닷가에 아이들과 앉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싶었다.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남편은 어딘가로 가서 식후 담배를 마무리하고, 냄새를 빼고 오겠다고 했다. 아이들과 셋이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앉아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구걸하던 아이들을 생각했다. 태어나보니 그리스인이고, 세상에 나와보니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하는 삶이라면 어떠할까 싶었다. 


바닷가에  허연 것이 떠밀려 오니, 큰 아이가 뭔가 싶어 다가갔다. 대형 해파리였다. 큰 아이 머리 만한 해파리가 휴지처럼 둥둥 떠있었다. 아쿠리움 속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신비롭게 춤추고 있는 해파리만 봤지 늘어져 모래사장 가에 있는 해파리는 처음이었다. 신기했지만 멀치감치 보고 있는 것은 30대의 엄마뿐이다. 아들은 다가가서 발로 톡 치다 못해서, 손으로 해다리를 눌러보았다. 

" 악!" 

아이가 소스라치게 손을 거두었다. 해파리가 쏘았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가까이 다가가서 해파리를 들여다보았는데, 걸레처럼 늘어진 모양이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았다. 죽었으니까 여기까지 떠밀려와 저렇고 있겠지 싶어라고 말하니, 아들이 아까 내지른 비명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다. 

" 엄마는 왜 내 말을 안 믿어! 아프단 말이야. 해파리가 쏘았다고!" 

그러고 보니 아이의 손가락이 좀 부어오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해파리에 쏘였다면 병원도 가야 하고 이 정도 아프고 말 일이 아니라 심각할 것 같은데 말이다. 뉴스에서 들어본 바가 어린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 늘어진 해파리를 바라보는 내 눈이 아들의 통증보다 신뢰가 간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아들은 해파리에 쏘인 이야기를 한다. 신뢰와 믿음에 관한 화제가 나오면, 그리스를 끄집어낸다. 엄마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 또는 엄마는 자식의 이야기에 귀 기울지 않는다는 식의 하소연이 태반이다. 그러면 고린도 운하의 아이들을 꺼낸다. 그렇게 삶을 사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면서 아들에게 큰소리를 친다.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 아니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무조건 아들을 믿는 엄마라고 박박 우기고 싶다. 

 '엄만, 해파리를 믿는 거야? 아들을 믿는 거야? '라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 엄마는 엄마 자신을 믿어.'이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범인이기에, 부모이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이 제일로 소중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따 줄 것 같은 부모도 인간일 뿐이라, 매사에 자신에 대한 존중이 1등이다. 해파리에게 쏘인 고통보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 컸나 보다. 

 아들에게 그리스는 해파리와 배신감이다. 신화와 고고학이 서린 사랑하는 나의 그리스는 아들에겐 전혀 다른 나라다. 어쩌겠는가? 아들에게도 그리스처럼 사랑하는 곳이 세상 어디에 생기겠거니 스스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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