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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r 10. 2023

띵언은 충분합니다.

살면서 겪는 시간들은 왜 이 세상 이 순간 여기 존재하는 지의 이유이다.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고 즐거움의 찰나는 위로를 준다.

창업의 시간도 비슷하다. 매출이 안 나오는 시간은 성장의 기회다. 매출이 좋은 때는 지속할 수 있는  위안의 동력준다.

삶이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구나, 왜 내게만 가혹할까 하는 때가  있다. 나만 괴롭다 싶고 내가 제일 힘들다 싶으면 견디기 힘들다.

가게 매출도 그러한데 나만 오늘 매출 바닥인가 싶으면 가게는 꼴도 보기 싫지만  카페 사장들의 온라인 모임의 글을 읽으면 행복해지기도 한다. 나만 매출 펑크 난 거 아니구나 하며 미소 지어진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은  흔해 빠져서 아무 데다 떨어져 있다. 각종 sns에 인생띵언, 오늘의 인생조언이 넘쳐나지만 띵언을 읽는 그 순간 내게 닥친 위기를 기회라며 감사하게 여기긴 쉽지 않다. 머리 쓰기 싫으니까.

눈앞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결책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것만큼 귀찮은 일이 없다. 짬짬이 행동한 이의 띵언을 들으며, 아니 읽으며 (지하철에선 다들 읽으시지 않는가) 개운해한다. 그래, 이 말까지만 읽고 뭔가 해보자.

문제는 이 말까지만, 여기까지만이 1시간 정도 되고 나면 하기 귀찮아진다는 점이다. 성공한 이들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위기감은 느끼고 싶지 않다. 이제 마음이 내게 속삭인다.

 "내일 하자.  일단은 맛있는 거나 먹자고."

  

여왕의 오후에서 보내는 시간들의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2시~3시 사이에 퇴근한다. 출근할 때의 마음먹은 바, 4시간 전에는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 중 실제 집행되는 일은 1개 또는 1/2개 그도 아니면 제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장 오픈 준비며 어제  퇴근 후  일어난 얘들과 집안일을 동생인 파티시에에게 하소연하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제품을 디스플레이를 해뒀는데,

1시까지 개시를 못하면 비탄에 빠진다. 왜지? 왜 손님이 없지? 괴로우면 생각을 하려다가, 고만 점심을 챙겨 먹어버린다. 점심 먹으며 여왕의 오후 소식을  인스타, 당근마켓,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나면 뭔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액션을 취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케이. 난 오늘 할 일 다 했다고!

설거지와 주방바닥 청소를 하면서는 머리 안 쓸 수 있다. 기계적으로 두 가지를 해내고 지하철을 타러 간다. 여전히 POS에는 매출이 제로인데 말이다.



말이 디저트'카페'이지 사실 여왕의 오후는 카페가 아니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여왕의 오후를 이름 붙이다 보니 디저트 카페라 부를 뿐이다. 내겐 거울이며, 동생에겐 치유제다. 위기 상황에 나를 밀어 넣어 사는 것 같이 살아보라고 스스로에게 선물한 기회다. 나는 자신을 이리도 사랑한다. 흔히 기독교에선 신이 나를 선택했기에 내게 시련을 준다 했다. 종교가 없는 내게 시련은 셀프다. 브런치는 글을 쓰기만 하러 들어오고 인스타는 여왕의 오후 소식 피드만 올리는 용도로 써야 한다고 다짐한다. 까딱하다간 내게 동생이 붙여준 여왕의 오후 마케팅대표, 마대는 커녕 경력이음 파트타이머가 될 판이다. 창업이 아니라 낙하산 알바를 하고 있는 처지가 된다. 이 글만  발행해 올리고 핸드폰은 가방 주머니에 숨겨두리라 다짐한다. 집에 도착할 때까진 꺼내서 SNS 안보리라,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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