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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나이는 삼만살입니다.

by 호박씨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을 테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경험 속 낯선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는 것은 삶의 물길을 힘껏 옮겨보는 노력이다.

화요일 정지우 작가의 북콘서트는 독일 산을 함께 걷던 이 B에게 동행을 권해보았다. 고등학생, 중학생을 둔 워킹맘인 그녀가 저녁 7시의 역삼동에 나와줄까? 웬걸. 그날이 생일이라며 B는 설레어했다. 자꾸 보고 싶은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작가를 소개하는 책방 대표님 뒤로 새침해 보이는 정지우작가는 사진보다 어려 보인다. 자리를 메꾼 주변 사람들을 보니 20대, 많이 먹어도 30대이겠다. 아, 내 마음은 젊음에 멈춰있고 싶은가 보다. 정작가의 책을 읽으며 하도 고개를 끄덕이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공감해서 혼자 생체나이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 착각했다. 나는 오늘도 불안하고 흔들리며 늙지 않는 영혼이고 싶다. 그런 내 마음은 이제 막 퇴근하고 삼삼오오 모여든 젊음이라고 말한다

삶을 읽고 기록하는 사람은 바다 같다. 날씨에 따라 각각의 표정이 있지만, 아무리 거센 파도가 쳐도 그 심연은 검푸른 고요함일 것이다. 같은 순간은 한 번도 오지 않는 이 삶을 엄숙하게 바라본다. 물론 잔파도처럼 발랄한 순간도 쨍한 해안가의 욕망도 있다. 작가를 보고 바다를 떠올렸다. 그의 나이는 바다처럼 삼만 살일지도 모르겠다.


초초동안이다. 과외하러 다닐 때는 과외받으러 가냐고 물었고 코로나가 한창일 땐 아이와 외출하면 우리 두 모녀에게 '학생들, 길 좀 물을게.' 했다. 국제학교 학부모 봉사를 갔다 나오면 가드가 수업중간에 어디 가냐고 잡곤 했다. 그래서 내 나이는 바다처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라 여겼다.


함께한 B는 북콘서트의 젊은이들이 풋풋하다며 들뜬 목소리로 자리를 일어났다. B의 아이가 특례로 우수한 외고에 들어간 직후라 B는 기득권이고 승자인 것만 같다. 겨울 방학 내내 한국학교 싫다고 울고불고하던 아들을 매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배웅하는 나는 먹구름 낀 바다처럼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때다. B가 말한다.

'지나가요.'

삼만 년을 살아도 삶은 새로울 것이다. 죽음이 주어진 인생이라 축복이다. 정지우 작가를 만나보면, 유명 작가들을 만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했다. 없는 답을 쉽게 얻고자 하는 꿍꿍이였다.

오늘은 승자라 즐기고 있는 그녀도 가만히 나의 몇 달을 들으며 자기 일처럼 고통스러워한다. 눈으로 말한다.

답이 어디 있겠냐고.


다음 북콘서트도 불러달라며 B가 부탁한다. 최고의 찬사다. 한국어로 된 콘텐츠 속에 풍덩 빠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우리에겐 꿈만 같다. 한국책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생각하면 손 닿을 거리에서 사랑과 결혼을 회피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꿰둟는 정지우 작가도 내겐 호사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옅은 슬픔과 기쁨 또한 호강이다. 기록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은 저런 기운을 풍기는구나 싶어 이렇게 활자를 꾹꾹 누를 희망이 생긴달까?

심지어 아들에게 느껴지는 외로움과 침울함도 받아들여진다. 삶을 일찍 알아가는 삼만 살짜리일지도 모른다. 가장 지칠 순간에도 일기를 내려놓지 않은 아이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성숙할 수도 있겠다. 그만 슬퍼하고 마음을 좀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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