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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r 27. 2023

키친타월이 필요한 꾀돌이

"키친타월은 절대 안 살 거야."

부엌에서 키친타월을 키우지 않는 친정엄마처럼 동생도 여왕의 오후 주방에 키친타월을 사두지 않는다. 파티시에는 동생이고, 보증금은 친정부모님으로부터 왔고, 여왕의 오후를 시작해야겠다는 펌프질은 내가 했다. 공식적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은 파티시에의 언니인 것 같다. 

주부 경력으로의 일요령은 동생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창업이라는 불안감에 동생이 두려움에 질려 도전하지 않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달래고 설득하고 있다. 취업이라고 창업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가족 외의 공동체 즉 사회로 내디딘 발걸음이 아니기에 결국 나는 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감정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가족이니까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의사소통이 편하다는 것은 오산이다. 공부 잘하는 언니 때문에, 공부 잘해야 인정받으니까라는 20년, 30년 전 부모님이 일군 가정의 영역에서 동생이 받았던 불평등과 스트레스는 이제야 해소되고 있다. 칭찬받지 못했던 시간들 속에서 움츠러든 동생은 뭔가를 잘 해내도 스스로를 기특해하지 않는다. 

" 와, 이거 진짜 너무 맛있네."

"근데 아무도 안 사 먹잖아. 안 맛있는데 맛있다고 하는 거지?" 

스스로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 가해자의 한 명이였던 내가 아무리 말해도 동생은 자신의 손으로 일구는 성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깨끗하지?"

"언니 돈 받고 청소업체 해도 되겠다."

주방을 정리하고 청결하게 하는 일은 파티시에가 아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을 보며 칭찬을 쏟아붓는다. 내게 쏟는 칭찬의 반만이라도 스스로에게 주면 어떨까 싶다. ' 역시 우리 큰딸!'이라며 동생 앞에서 첫째는 믿음직해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을 다잡곤 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무엇이라도 그녀에게 응원을 쏟아붓겠다고 말이다. 


"맛있어?"

1년 전 나는 저녁밥상 앞에서 칭찬을 구걸했다. 남편의 눈을 들여다보며, 밥그릇과 반찬을 향한 그의 얼굴 가까이에 내 얼굴을 들이대며 답을 기다렸다. '응'이라고 한마디로 답하지 말고, 어디가 어떻게 맛있냐고 설명해 달라 했고, 맛있냐고 묻기 전에 국 한 숟갈을 들이켜고 나면 자발적으로 나온 칭찬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변하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감정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 엄마 오늘 피자 시켜줄 거야? 아... 미안미안, 엄마. 이따 다 먹고 이야기할게."

밥을 먹기 전에 ' 이야, 맛있겠다.' 호들갑 떨어주고 피자등의 외식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했다. 딸이 눈치 없다는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자 아들이 허겁지겁 사과한다. 아이들은 변화했고 부탁한 바대로 해준다. 말랑말랑한 그들에게라도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있는 내 노동의 가치를 일러준다. 칭찬으로 갚으라고 알려준다. 


세상에서 제일 탓하기 쉬운 것이 부모다. 동생을 왜 이렇게 키워놔서 나를 힘들게 하냐는 마음이 하루에 몇 번씩 나를 찾아온다. 마흔의 중반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도 아직은 어리석구나 하며 채찍질해 본다. 언니가 아니고, 그녀의 유일한 동료다. 먼저 태어난 첫째가 아니라 그녀의 첫 창업에서의 동업자다. 

애꿎고 만만한 친정엄마 나무라지 말고, 그녀의 협업자로 칭찬세례와 인내심을 무장해야겠다. 여왕의 오후 파티시에의 부러진 마음을 일으킨다면 내 인생의 숙업인 아이들과의 관계도 꽃길일 것이다. 


지난 토요일 플리마켓 참가와 키즈베이킹 수업이 겹쳤다. 둘 다 기진맥진하여 손도 까딱 할 수 없어 그대로 퇴근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언니로 변신하여 텔레파시를 보내보니 그녀는 뻗어있다. 일찌감치 나가 매장에 쌓인 설거지와 짐정리, 바닥청소를 하고 나니 퇴근시간이 다되었다. 정오가 넘어까지 자다가 전화를 받은 동생은 미안한 기색이다.  바로 이 때다.

"주방에 키친 타월 좀 사주라. 초코 작업하고 행주로 닦으면 행주가 시커멓게 되더라. 키친 타월 사둘 거지?"

저녁밥을 차리러 3시에 퇴근하고 1시간 정도 후에 광 나는 매장에 도착한 동생이 키친 타월을 주문해 준다. 설득 성공. 파티시에의 마음을 일으키는 데에는 꾀가 필요하다. 여왕의 오후가 순항을 한다면 그 비결은 나의 꾀돌이 변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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