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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r 30. 2023

목련 말고 벗꽃처럼 물러서기

실컷 자고 일어나니 두통이 사라졌다.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던 복통과 두통은 잠이 약이었구나. 출근길 신분당선의 종점에 가까운 신논현에서부터 광교 중앙역까지 한 번에 가지 못하고 꼬일 듯이 아픈 배를 부여잡고 몇 번을 타고 내리던 출근길이었다. 광교 중앙역까지 가보자 싶어 아픔을 참고 싶을 때는 블로그나 브런치 글을 읽고 쓰곤 했다. 오늘은 아침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일어나니 12시. 조심조심 먹은 아침이 다 소화되었는지 출출하다. 복통 없이 지나가는 이틀째다. 

 섭섭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안 먹으면 여왕의 오후 출근해서 힘이 없으니 먹을 수밖에 없고, 먹으면 배가 아프고 화장실이 급하니 걱정되는 상황에서 늘 장과의 대화를 했다. 똑똑, 이 정도 까진 괜찮겠니? 그럼에도 부지런히 나갔다.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만인가? 언니가 꼭 있어야겠어. 언니의 직함은 마케팅 대표야 해주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일이 신날 수 있다는 것을 살며 처음 느꼈으니 내 장은 살살 달래 가며 나가고 싶었다. 

 

문제는 시작부터 도사리고 있었다. 여왕의 오후를 시작하던 7월은 침체가 시작되기 전인 코로나의 막바지였다. 그러니, 가로수길이나 연남동 가격으로 책정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원가 책정을 하는 일이 귀찮기도 했고, 가격에 대해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벽이 느껴져서 동생과 감정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격 이야기는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코로나가 제대로 자취를 감추는 때가 왔다. 여행을 가고, 꽃놀이를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동네 가게는 안될 수밖에. 같은 가격이라면 연남동 가서 먹고 싶고, 비슷한 상품이라면 인스타에 올릴만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사람마음일 테다. 그러니 단돈 100원이라도 싸게 해서 평일 동네 단골을 잡아야겠다 싶어 원가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엑셀창을 열고 동생의 손글씨 레시피를 입력했다. 하나하나 재료의 가격의 물었다. 숫자 하나하나에 날 서있는 동생에게 재료들을 묻기란 쉽지 않아, 중복되는 재료가 나오면 '아싸'를 외쳤다. 

 나온 결과는 예상과 비슷했는데, 제품당 많게는 500원에서 적게는 100원 정도까지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숫자를 보여주면 설득이 되겠다 싶어 엑셀을 뒷배 삼아 동생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마음 상해했다. 가격을 낮추는 것은 동생의 노력과 시간들을 평가 절하하는 일이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는 실패다. 더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 가게 문을 나섰다. 그게 지난 고작 지난 수요일이었는데 벌써 1년쯤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어제오늘 아침 먹고 2시간씩 푹 자는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 얘들을 보내고 2시간을 자고도 밤잠도 잘잔다. 푹푹 겨울곰처럼 봄의 가운데서 소파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혹여나 나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 월요일만 출근하겠다고 했지만, 동생은 거절이다. 언니에게 의존하고 있기에 언니가 나오지 않으면 내가 더 부지런을 떨어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언니로서의 입장에서는 씩씩해졌으니 기특한데, 7개월 함께한 마케팅 대표의 입장에서는 섭섭하다. 없으면 안 되니, 언니의 의견을 반영해 가면서 함께 나아가자 해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필요하면 파트타임으로 나갈게 하며 여운을 남겨본다. 사랑과 관심을 쏟은 공간이라 정들었다. 그래서 뭉그적 거린다. 제일 먼저 봄을 알리던 우아하기 그지없던 목련의  뒷모습 같다. 추적추적 거리며 흉한 뒤를 보이는 목련 마냥 정들었던 마음을 추스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2시간씩 자는 시간이 개운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복통을 견뎌가며 가던 신분당선이 사실 내겐 짜릿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극기의 삶을 보여주겠어라는 미련한 생각으로 출근을 했었다는 것을 3월의 마지막날에서야 깨닫는다. 가야 할 때를 아는 벚꽃처럼 멋있게 퇴장하고 싶다. 그러니 4월도 잘 지내야겠다.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 또 있을 테다. 얼마가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울을 지나 간절한 마음으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처럼 기다리고 기다릴 테다. 목련 말고 벚꽃!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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