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수요일에 부산으로 먼저 떠나 폐암이 재발하신 아버님의 퇴원을 준비하러 갔다. 병원에서는 마지막 정리를 하라고 댁으로 모시고 가라고 한 것이니, 그간 코로나로 면회가 안 되는 병원에 계신 아버님을 뵐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였다. 나는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화요일부터 큰 아이가 콜록거린 것이었다.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내 일은 같으며, 어느 정도 이젠 공황 장애라는 병도 내 손아귀 안에 있어서 약만 잘 먹으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남편이 없으니 내가 더 멀쩡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젠 좀 내려놓고 아이들에게도 좀 의지하면 좋으련만. 엄마 된 입장에서 주부 된 입장에서 쉽지 않다. 안되면 안 된다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참 싫다. 큰 아이가 아파도 할 일은 다 한다. 예를 들면 매일 청소, 3끼 밥, 간식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작은 아이까지 콜록거리니 나는 안 아파서 다행이야 하고 있던 것이 딱 하루였다.
아들의 감기가 제대로 나에게 왔다. 겨우 감기인데 공황장애 때문인지 두통과 어지럼증이 너무 심하다. 24일까지 브런치 북을 한 권 묶고 싶었는데.... 주부라는 이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의 직업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컨디션을 일단 제쳐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고 목표로 잡아 두고 나면 그것을 지키고야 말고 싶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나 밀어 부침도 좀 완화 가능할까? 누군가와 협업을 한다면 나의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시일에 대해서 좀 더 객관화할 수 있을까?
도저히 글도 쓸 수 없고, 밥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나는 침대에 눕고 낮잠을 잔다. 한 숨 자고 나면 열이 내리고 몸을 좀 일으킬 수 있다. 열이 내렸으니 일어나면 좀 상쾌하고 기분도 좋아져야 하는데 눈 뜨면 내 일터니까 기분이 진짜 뭐 같다. 혼자서 뭔가를 먹고 꺼내 둔 접시, 쌓인 설거지, 자리에 있지 않은 물건들. 아이들이 엄마 자는 사이에 사부작사부작 알아서 잘 지내고, 엄마 한번 안 깨우고 자기 할 일 듯했구나 하고 느끼면 좋을 텐데. 나란 주부, 감사가 없다. 손톱만큼 나아진 컨디션을 다시 집을 정상화하는데 쓰고 나면 내 속에서 이 주부란 업에 대한 증오가 끓어오른다.
주부란 직업을 평화롭게 잘 영위해 나가는 것이 나 개인의 목표다. 마음의 평화, 정신의 안정을 가지고 이 업을 할 수는 없는 건가? 다른 직업을 가져본 바가 있는 나이니 비교를 해보자면 주부가 영 나쁜 직업은 아닌데 문제는 이렇게 일과 쉼의 구분이 없는, 몸이 아픈 순간인 것 같다.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안방 침대마저 남편과 함께 사용하니 온전한 쉼의 공간은 없는 것이 문제인가 본다.
아픈 몸을 질질 끌고,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을 갔더니 아이들을 열심히 돌봐 주신다. 살살 눈치를 보면서 실컷 잤는데,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내가 아픈 것에는 크게 신경은 안 쓴다. 아프신 아버님에게 온 신경이 쏠린 남편도 시댁 식구들도, 때가 때이니 그러려니 하고는 나대로 꾹 참고 이럭저럭 약 들이부어가면서 다녀왔더니 갔다 오자 마자 터졌다. 하루 종일 어지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는 상태다.
" 엄마, 수건이 하나도 없어."
빨래를 해야 하는구나. 어지러운데 빨래는 해야 한다.
" 코로나 검사받아야 한데."
어지러워도 딸내미 코로나 검사는 받으러 같이 가줘야 한다.
이 주부라는 업이 참 거시기하다 싶다. 막강 체력이 여야 하는 이 일을 만만히 보고 나를 보살피지 않았던 시간들이 후회가 된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된다.
주부의 업을 가진 이는 이기적이 이여야 한다. 업무 강도가 장난이 아니고, 업무 시간이 길어서 체력을 평소에 증진시켜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길러야 한다. 또한 남은 잔반 말고 양질의 음식을 먹어서 영양 균형을 챙겨야 한다.
주부의 업을 가진 이는 No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나의 일이다 라는 한계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알리고 일을 분담해야 한다. 그들의 모든 일이 주부의 일은 아니다. 주부가 관여하고 챙겨줄 수 있는 그 정도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이상의 오버 듀티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혼자서 계속 중얼거려본다. " 아니요. 싫어요. 안 해요." 좋아! 반복해보자. " 안 괜찮아요." 요것도 하나 추가해본다. 안 괜찮다. 주부, 너는 안 괜찮을 때도 있는 거니까 그리 말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