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우린 1일인 거다.
어제 쓴 내 글 ' 주부의 업에 대한 정의'를 읽는다. 쓴 글을 보니 많이 아팠었구나 싶다. 그렇다. 하루 만에 나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위드 코로나 시기에 그게 머 그리 대수냐 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체 나는 태연하게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있다. 월요일에 아이 학교 보건 선생님이 직접 아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셨다. 방과 후 수업을 같이 들은 학생 중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있으니 검사를 받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 아, 귀찮게.....'
나의 생각은 이거 한 가지였다. 지난주부터 걸린 목감기로 컨디션 난조인 데다, 일요일에 부산에 갔다 오고 나니 어지럼증이 더 심해 셔저 꼼짝을 하기가 힘든데 선별 진료소 걸어가려니 귀찮다는 생각뿐이다.
" 엄마, 검사 아플까? "
가면서 아이가 좀 불안해 하지만, 난 전혀 불안하지 않다.
" 아니, 콧구멍 팍 쑤시고 그만이래."
목이 좀 아프고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살살 이야기하며 아이와 강남역 선별 진료소까지 걸어왔다. 10분 남짓의 거리지만 많이 춥지 않은 날씨 덕에 귀찮다는 생각은 잊었다.
1시부터 3시까지 진료소는 마침 방역 시간이다. 우리는 2시 10분에 도착했다.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팻말을 보고서야 알았다. 진료소 바로 앞 공차에 가서 아이 좋아하는 브라운 슈가를 하나 샀다. 아이는 잠시 서있으라고 하고 나만 들어갔다 나왔다. 그것도 사실 꼭 이래야 하나 싶었지만, 당연히 아이는 코로나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검사하러 온 거니까 좀 찜찜해서 내가 주문하고 아이는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날씨가 따뜻해서 좋다고 재잘재잘거렸다. 아이 친구들이 요새 누가 누구 좋아한다는 것에 관심이 엄청 많은 터라 딸아이를 좋아하는 아이는 누군지 사실 관심이 많이 간다. 단 둘이서 집 밖에 나오니까 왠지 사실을 털어놓을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 엄마, 나를 좋아하는 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럴 리가... 내 눈에만 이쁜 건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내 입으로는 아이의 외모 평가 따위는 하지 않다는 마음을 먹고 양육을 하자는 원칙을 가진 나이다 보이 생전 가도 아이에게 이쁘단 말은 안 하지만 사실은 천만번도 내 눈에는 이뻐 보이는 아이인데 말이다.
이렇게 재잘거리다 보니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린 2시 50분 정도부터 줄을 서서 아이는 세 번째로 검사를 받았다.
" 어머니는 검사 안 받으시는 건가요? "
" 네."
재차 물어보지만 난 받을 이유가 없다. 아이도 받을 이유가 없지만 학교에서 받으라고 하니 받는 것뿐이니 말이다. 딸과 나는 또 기분 좋게 뛰다시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의 일기에는 코 속으로 기다라게 들어온 검체 막대기가 몹시 불편하고 싫었다 라고만 나온다. 매일 하는 루틴인 일기도 쓰고 연산 문제집도 풀고 우린 잘 잤다.
" 검사 결과가 아직도 안 나왔나요? "
보건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은 결과가 다 나왔는데 왜 딸아이 결과만 연락이 없냐고 전화를 주셨다. 오후 2시였다. 3시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다가 보건 선생님이 자꾸 이상하다고 하시니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한다. 그리고 울린 핸드폰.
" 따님이 코로나 양성입니다. 따님 주민등록 번호 불러주세요. "
우리 딸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생각이 안 난다.
삶은 늘 이렇게 예고편과 인트로 없이 그 색을 바꾼다. 날 향한 시선이 한없이 따사로운 날이 있는가 하면 엄하디 엄해서 마치 내 인생이 모두 실수와 오류 투성이라고 나무라는 시선을 하는 날도 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 여권을 찾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큰 눈에 눈물이 가득 들어있다가 또르르 다 흘러내린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난 울지 않아야겠다.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난 엄마니까.
"따님은 격리 시설로 이동해야 합니다. "
보호자 1명이 동행 가능하다고 하는데 , 이 순간에는 나의 공황장애가 내 목을 겨눈다. 난 들어갈 자신이 없는데, 아이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무능하고 나약한 엄마. 그것이야 말로 내가 인생 전체를 걸고 가장 하기 싫은 일이다.
그 이후의 전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아이의 확진 순간부터 내가 받은 전화는 수십 통이다.
보건소는 인적사항을 파악하며, 동선을 조사하고, 추가 검사 대상자를 묻는다. 큰 아이를 데리고 나는 어제 딸아이와 재잘거리며 갔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간다. 목이 아파서 다 쉰 목소리로 작은 아이의 인적 사항과 동선을 이야기하면서 큰아이와 종종걸음으로 간다. 울면서 집에 혼자 있겠다는 작은 아이 걱정에 머릿속이 하얗다.
" 난 코로나니까 밖에 나가면 안 돼."
눈물범벅이 된 아이에게 나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큰 아이와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길로 허둥지둥 선별 진료소에 가서 다시 숨고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화들. 아이의 열흘간의 동선은 이제 자다가 깨워도 외울 것 같다. 카드 기록, 부산에 갔다 온 열차 기록과 아이가 수업받은 학원.
그동안 아이는 방 안에서 울다 진정하다 혼자 핸드폰을 보다 한다.
난 엄마다. 아이부터 안아 주었다. 긴긴 동선 조사가 끝나자 아이를 안아 주는 일이 제일 급했다.
" 네가 코로나인 게 아니라 그저 바이러스가 잠깐 들어와 있는 거야. 네가 바이러스가 아니야."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내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이미 나는 내가 지난주에 아팠던 일들이 코로나였다는 것을 예감한다. 약을 먹어도 쉬이 낫지 않으며, 며칠을 남편 없이 끙끙 앓았으며, 목이 아프다 못해 목소리 내기 힘든 지금 내 상황은 40년 동안 내가 앓던 감기와는 다르다.
그러니 나는 이미 양성이라고 예감했다. 큰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원체 목이 약해서 감기 걸리면 기침이 심했지만 3일 정도 약을 먹으면 사그러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흘 넘게 컹컹 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침을 해댔다. 우리 셋은 코로나를 앓았던 것이다.
아이를 안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가서 원 없이 외식이나 하고 , 여행이나 갈 것을 싶다. 만 2년을 주말에도 외출 없이, 외식도 없이 지낸 시간들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걸려야 하나 싶다. 아이와 함께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는 아이도 원망스럽다. 주변에 수없이 제주도 여행을 간 친구들이 부러워 딸아이가 왜 우리만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을 사냐고 불평해도 조심하는 게 좋다며 다독거리기만 했던 시간들은 그 빛을 다 잃었다.
오늘 아침 10시 보건소 전화번호가 보인다. 난 전화를 받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코로나 양성 호박씨. 진정한 with 코로나구나. 코로나와 오늘부터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