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와 공황 장애를 이기는 글쓰기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6.25의 발발로 마무리가 된다. 그 난리통의 책 마무리와는 딴판으로 책의 시작은 너무나 평화롭고도 나른한 시골 마을이다. 만약 박 선생님의 본가에 시계가 걸려있었다면 지금의 우리의 것보다는 한 10배 정도는 천천히 흘러갔을게다.
브런치를 하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내가 찾은 인물이 바로 박완서 작가님이다. 싱아를 읽으며 나는 하루에도 몇십 번씩 쪼그라들기도, 또 갑자기 등을 쭉 피고 키보드 앞에 용감히 앉기도 했다. 이러기를 몇수십 번을 반복했다.
싱아의 어린 완서처럼 이제 막 태어난 어리석은 새끼 동물처럼 쓰디쓴 삶의 무게라곤 1도 없는, 철 모르는 내가 내 안에 있다. 글로 써서 남겨, 나의 아이들이 읽었으면 싶은 슬프게 아름다운 시절이 나에게 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 자신의 세상 무엇보다도 반짝거리던 순간들을 나는 모두 기억한다. 눈은 뇌의 확장이라고 한다. 내 눈에 담은 그 순간들은 나의 뇌 속에서 오늘 일어난 일들처럼 살아 숨 쉰다.
아프신 시아버지를 보며 생각하고, 박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내가 없어지더라도 이 글들이 남는다면, 아이들도 내가 본 그들의 과거를 읽을 수 있을 테지. 더 이상 그들 옆에 없는 어여쁘고 어리석던 나를 기억해주겠고나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면 갑자기 사명감을 가지고 브런치에 임한다.
실컷 이렇게 쓰다가도 싱아가 전쟁통으로 그 장면을 바꾸면, 호박씨 너의 인생이 무에 그리 특별한가 싶다. 전쟁쯤이나 겪어야, 친오빠가 전쟁에 끌려가 반실성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는 거야 싶다. 멍하니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위트가 넘치는 망고 작가님, 단단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아미 작가님, 연륜이 느껴지는 김종섭 작가님, 따스하게 인생을 바라보는 시덕 작가님.
브런치를 쓰기 전에는 글이야말로 나의 유희였다. 문자 성애자이며, 책 집착자다. 사람보다는 책이 편하며, 대화보다는 편지가 좋은 나인데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마치 대단한 인생을 살아야 한 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보잘것없는 너의 삶은 글로써 가치가 없다는 내 속의 외침이 신랄하게 나를 파헤친다.
그렇게 브런치를 앞에 두고, 글쓰기를 내 삶 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는 방황을 하는 나에게 오늘이 왔다.
코로나라는 단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서성이는 반나절이 지났다. 공황장애로 시설은 못 간다는 이야기를 얼굴도 모르는 지역 보건소 공무원들에게 실컷 하고 나니 내가 진짜 공황장애가 맞나 싶은 그런 날이다. 내 안에 있는 이 신경 정신병이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순간 나는 자꾸만 단단해진다.
" 공황장애이신데, 격리가 가능하세요? 감당되시겠어요? "
" 네. 가능해요. 전 집에 있을 겁니다."
뱉으면 뱉을수록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신기한 일이다. 코로나도 공황장애도 수십 통의 전화 끝에 내 옆에 말의 가루가 되어 수북이 부스러져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실험 중이다.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브런치 북을 발간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삶이 뜻대로 되던가. 삶에 백기를 들고 시작하는 호박씨는 그저 단단해지기 위해 내 삶을 브런치에 뱉어둘 예정이다.
후에 내 아이들이 읽을 나의 기록은 위대한 작가 호박씨, 현모양처 호박씨에 대한 바가 전혀 아니다. 지금부터 쓰일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대한민국 여자 사람의 이야기이다. 호박씨의 글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들은 이 많은 어리숙함과 어처구니없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포기하지 않은 마라톤 같은 삶 하나다. 너무 흔해서 도무지 왜 기록으로 남겼는지 알 수 조차 없는 그런 누구나의 이야기다. 그러니 큰 기대 하지 말아 달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