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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29. 2023

매우 이상한 알바는 7시 퇴근

토요일까지도 학원에 나가야 하는 아들을 치과 데려갈 시간 잡기가 쉽지 않다. 단골 치과까지 빠르면 40분 늦으면 1시간이 걸린다. 독감으로 체력이 떨어진 아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수인계받지 못하고 하고 있는 학원 데스크일 때문에 어깨가 뻣뻣했다. 공황발작을 겪은 후론 피곤하거나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다. 눈 주변으로 뻐근해서 손 발 움직이기 어렵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어떻게든 짧은 블로그 포스팅만 마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50% 정도만 해소된 기분이다. 

나라도 힘을 내야지. 11시 20분, 반포 학원가로 돌아와야 하니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데 아들은 침대와 한 몸이다. 

" 치과 못 가, 엄마. 나 너무 졸려."

  머리 하나 더 큰 아이를 간지럼 태우고 이불을 뺏어 깨웠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면 학원이 끝나는 2시 까진 빈 속일 텐데. 공부하려면 먹고 나서야 하는데...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종종 대며 치과에 도착했다. 아들이 치과 치료 하는 20여분을 제외하고 핸드폰시간을 1분 간격으로 확인했다. 네이버 지도에 따르면 지하철로 이동하느니 광역 버스를 타면 20분을 아낄 수 있단다. 그럼 학원에 1분도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다. 불소 치료까지 하고 나온 아들의 눈이 벌겋다. 

" 나 졸려." 

피곤하다. 아이는 피곤하다. 비가 추적이 내려 한산한 치과, 이런 날은 다들 집에 가만히 붙어 영화를 보면서 군고구마나 꼬들한 라면을 먹어야 하는데.... 

 버스가 오지 않으니 아들에게 폰 좀 그만 보라고 핀잔주었다. '이게 누구 때문에 이렇고 있는데, 네 치과 온 거잖아. 네  학원 가는 거잖아' 하는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 삼켜눌렀다. 아이는 치과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며, 거리가 있는 치과를 잡은 적도 없다. 


 처음 타보는 광역 버스라 어디서 타야 5분이라도 아낄 수 있는지 가늠이 안된다. 

" 강남역 가죠?"

" 반대편이요." 

아..... 왕복 8차선 너른 판교 대로에서 왔다 갔다 하며 5분을 날렸다. 버스 도착시간도 네이버로 알면 뭐 하겠는가? 이미 3대가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을 오가며 1분이라도 아끼겠다고 바둥거리는 나를 쫒으면서 아이는 한마디가 없다. 학원 늦어서 어쩌냐, 엄마 탓이다라는 눈빛은 1도 없다. 말없이 뒤를 따르고 좌석버스를 타자마자 기대어 잠이 든다. 어떤 사고를 쳐도, 무슨 실수를 해도 아이는 내게 머리를 기대 마음 놓고 잠에 빠져든다. 




"여기 많이 이상하지 않아요?"

출근한 지 닷새차, 만난 지 나흘 만에 Y 선생님은 그만두신다. 학원 마지막날이라 시간여유가 많고, 마침 원장도 출근하지 않아 내게 이것저것 묻는 그녀는 나랑 동갑이란다. 

데스크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묻더니 마지막 수업인데 강의실에서 기다리려니 숨 막힌단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원장 때문에 그만뒀다며 원장의 무시와 구박이 도를 넘었다 했다. 

" 괜찮으세요? "

음.... 나 괜찮은가? 

학벌도 좋은데 여기서 이렇게 아르바이트하기 아깝단다. 

 7시에 아이들 저녁을 함께할 수 있고, 원장은 학원에 나오지 않으니 사이사이 아이들과 연락하기 좋다. 경력이 단절된 기간이 15년인 내게 다음날 나와줄 수 있냐고 해주어서 좋다. 이런 이유로 여기에 시급 만 원짜리 데스크직에 있기에 괜찮다.

 공황발작 후, 체력이 떨어져 디저트 카페에서 동생을 도울 때도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어지러웠다. 요샌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왔는지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어떤 일이 현재의 내게 가능할진 알 수 없다. 


 원장은 괜찮지 않다. 원장이 싫어 인수인계 없이 ( 알바취급을 했다면 알바였다면 인수인계는 전임자의 의무는 아니다.) 부랴부랴 떠난 전임자의 향기는 데스크 자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사람인데, 이렇게 일하기 싫었던 이유가 뭐였을까를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실장업무 또는 학원 실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원장이 내게 데스크 직을 알려주려다 보니, 말을 함부로 뱉었댔다.


" 어제 일처리 하는 거 보니까 안 되겠더라." 

"..... 아,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요? " 

아는 게 없는 원장은 말을 돌렸다. 


" 원장님, 이 전화번호는 누구인가요?"

" 물어보지 마요." 

어디서 얼마나 돈을 주고 사 왔는지, 그녀에겐 인근 아파트 주민 번호가 천여 개다. 강사를 시켜 전화번호 엑셀 표를 만들어 낸 원장은 빠진 아파트들이 있다며 강사를 들들 볶았다. 강사가 이런 일도 해야 하나? 그녀의 호통에 길들여진 강사는 연신 미안해한다. 뭐가 미안한 거야? 

 내게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앞으로도 있을 텐데, 원장으로서 답 해주지 않을 것이란다. 나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 상관없어요."

사실이 그랬다. 


알바 시간 계약은 7시까지지만, 그녀는 7시가 넘어서 전화와 카톡을 한다. 

"A 강사에게 전해요. 나 엄청 화났다고." 

원장은 강사들의 소득세 신고 자료를 제때 넘기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발견한 강사들은 이런 원장은 처음 본다며 종일 수업은 뒷전이고, 원장과 학원 담당 세무사에 전화하기 바빴다. 원장은 강사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내게 카톡을 보내 다음 주까지 해결할 테니 직접 세무사에 전화 좀 하지 말라고, 강사들 진정시키라고만 한다. 

이런 날, A 강사에게 불법 개인 정보 문자 발송을 너 때문에 못해서 본인이 화가 엄청났다고 전하란다. 본인은 오늘 하루 A 강사는 물론이거니와 전 지점의 10명이 넘는 강사들의 전화를 꾸준히 씹었다. 당장 잠수 탄다고 넘기지 않은 자료가 넘긴 셈이 되며, 소득세 신고가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을 텐데, 하루살이처럼 사는 원장이다. 그녀는 카톡 뒤에 숨어 실장들에게 강사들을 조용히 시키라 한다. 


 Y 선생의 말이 맞다. 여기 많이 이상하다. 

어깨에 기댄 아들은 본디 마른 데다 독감 내내 입맛이 없어 살이 더 빠진지라 가볍기만 하다. 우왕 좌와 하는 엄마에게 한마디 탓도 하지 않은 아이에게서 배운다. 아랫사람 탓을 하며 사과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에게서도 배운다. 7시가 되면 내 달음 쳐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은 늘 뿌듯하다.

'네 잘못이야.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너희들 탓이야.'

바비 인형처럼 아름답고 늘씬하며, 명품을 걸친 그녀가 뱉는 듣고 지내온 이들이 학원엔 잔뜩이다. 그들의 오늘이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게 하려면 정신을 차려야겠다. 세상엔 저런 사람도, 저보다 더한 사람도 있단다라고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호박씨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더 이상 명품을 입을 수 없다면 그건 너희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야'는 말을 몇십 년 듣고만 지낸 강사들이 있단다라고 전하고 있다. 



"가방 들어줄까?" 

벌건 눈에 불소 치료 때문에 물도 못 먹는 아이의 가방이 무거워 보인다. 

"아니, 엄마 가. 학원 가면 돼." 

광역버스에서 내려 아는 길이 나오니 가방을 들어달라 하긴커녕 혼자 간단다. 

행복하다. 엄마 탓 하지 않는 아들 덕분에, 가방을 넘기지 않는 아이 덕에 가슴이 벅차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즐거웠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녀의 말이 옳지 않음을, 그녀가 함께 하는 이를 함부로 대하고 있음 선명히 느낀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그만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내고 있다. 엄마가 만든 저녁밥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은 오늘 하루 마주하는 인연 모두 같은 값으로 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매우 이상한 알바를 하는 호박씨는 저녁 7시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퇴근하는 중이다. 



 사진: UnsplashMarko Breč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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