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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15. 2023

오지랖을 스스로에게만 바칩니다.

"이혼시키고 말 거다. 얘가 뭐가  부족해서, 지가 뭐라고!" 

어머니는 울산 사는 남편의 큰 누나 집에 소고기며, 반찬을 가져다주곤 하셨다. 차로야 멀지 않은 거리인 데다, 시댁 주변을 맴돌며 사는 그녀를 어머니는 물심양면 계속 돌보신다. 연락 없이 울산 집에 들렀다가 부부싸움 장면을 맞닥뜨리셨나 보다. 예비 며느리인 내가 있건 없건 사위 욕을 하신다. 얘들과 큰 딸을 당장 해운대로 데려다가 보살피겠다고 큰 소리를 치신다. 미국에 살러 보내도 된다고도 하신다. 어지간히 분하신가 보다. 

시어머니도 돌아가신 시아버지도 큰 사위에 대한 불만이 늘 가득이었다. 큰 아주버님은 한결같이 명절엔 일찌감치 와서 고주망태가 되게 술을 먹고 제일 늦게 돌아갔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즐기는 것도 두 분에겐 불만이었다. 고스톱을 치면 개념 없는 것도 싫어했다. 고스톱을 그냥 치는 게 아니라 돈개념과 세상 원리를 깨우쳐 주려고 하신단다. 늘 고스톱에 지고, 물정 모르는 그가 한심하게 느껴지시나 보다.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아들에게 아들과 함께 온 며느리에게 사위 불평을 늘어놓으면 나에 대한 이야기도 저렇게 나누겠구나 했다. 어머니에겐 딸이 셋이니, 돌려 까기를 해도 한참 하실 수 있겠구나. 내 속으로 낳아 기른 자식도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만 해도 일 평생 목표로 삼아 매진해도 이룰까 말까 하다. 삶이란 만만치가 않은데, 시부모님들은 딸들의 남편을 쥐락펴락하고 싶으셨다. 

샘이라 부른다. 욕심도, 야망도 크고, 눈치도 빠릿빠릿한 둘째 사위는 대 놓고 칭찬 릴레이이신 어머니다. 세 딸 중에서 제일 목소리 큰 둘째 딸은 함께 서울서 곁에 있던 내가 보기엔 이혼 안 하고 사는 게 대견할 정도로 두 사람은 합이 맞질 않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둘째 사위가 예쁘다. 어버이날이면 배달하는 꽃, 부산 가면 싣어다 나르는 비싼 과일, 섬세한 관심은 어머니가 남편에게 바라던 바였겠지. 




시급 만 원짜리 아르바이트가 감사하다. 사회적으로 경력이 단절된 지 10년이 넘은 나를 받아줬으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부터 든다. 50명인 원생을 2배로 늘려놔야지 하며, 꿈부터 키운다. 

그러다 식구들이 다 나가고 홀로 있으면 걱정이 더럭 찾아온다. 오해받으면 어쩌지? 

남편이 좋았다. 남편의 부모에게 좋은 소리, 칭찬만 듣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데로는 최선을 다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알겠다고 답했다. 아버님은 가시는 순간 이런 내 마음을 아셨을까? 능력을 모두 발휘하고 관심을 끌어모아 쏟을 때, 상대가 말한다. 원하는 바가 아니니 떨어지라고 한다. 

배신감. 머리로는 이해돼도 가슴으로는 소화되지 않는 것이 배신감이다. 또 배신당하면 어쩌나 싶어, 우물쭈물 닥친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고 싶은 만큼 원 없이 하게 되면 내게 돌아오는 좌절은 여전히 낯설다. 사람으로부터 좌절하고 싶지 않다. 




멋있게 물러나자 했지만, 동생 카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볼 때마다 쓰라렸다.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동생은 듣지 않았다. 떠나고 나니  몇몇 개의 디저트들은 천 원씩 단가를 낮췄다.

빅토리아케이크는 생소해서 고객을 설득시켜야 하니, 생크림 케이크를 제한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이틀 전엔 여름 케이크라고 레몬커드 생크림 케이크가 인스타에 올라와 군침을 삼켰다. 

 할 수 있는 제안은 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기가 대부분이었다.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공간을 바라보면 마음이 쓰라리고 속상하다. 노란 페인트를 고르고 환해진 매장을 바라보며 짜릿함을 느꼈던 날들이 그리웠다. 방향으로 제시했던 것들을 하나씩 차근히 하고 있는 동생을 보면 원망스럽고 배신감도 느껴졌다. 

 들이마시고 내시고, 또 들이마시고 내셔 본다. 내게 말을 걸어본다. 

" 알고 있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거 말이야. 아낌없이 위한 거 알아. 이제 그 사랑을 너에게 바쳐봐." 

내게 쏟아붓는 관심은 배신당할 염려가 없다. 거절은 번번이 당하겠지만, 배 째라고 못하겠다고 징징 거릴 수는 있겠지만, 오해받을 리 없다. 향하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데스크에 앉아 학원 업무가 뜸한 시간엔 글을 쓴다. 책도 읽는다. 전 같으면 감히 남의 돈 받으면서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나무랐을 것이다. 꿍꿍이를 가지고 사는 나를 토닥여준다. 블로그 키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한 글을 쓰는 동시에 학원 포스팅도 한다. 학원 강사들은 동년배인데, 일하는 여성으로 사는 이들을 찬찬히 바라보기도 한다.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상대가 나를 오해함은 어찌할 수는 없다. 나의 능력 밖이다. 누가 뭐래도 스스로에게 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산다면, 나를 판단하고 심지어 오판하는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신이 두려워, 오해가 두려워 타인을 사랑하기가 머뭇거려진다면 내게 들이부어본다. 사랑, 그리고 관심 말이다. 



사진: UnsplashKarly Gom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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