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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18. 2023

시급 만원짜리를 일당 백만원으로 만드는 마법, 글쓰기

그녀의 눈은 긴장감이 늘 긴장감이 돈다. 항상 팽팽한 상태인 그녀가 내리 쏟아붓는 말을 듣긴 쉽지 않다. 그녀에게 적응하려고, 맞추려 노력하다가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를 반복한다. 그녀는 원장이고, 난 시급 알바다. 실장 권한을 늘리겠다면, 이것 저것 맡아달라고 하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책임감이란 것을 울러 맨다. 

글쎄....

삶을 책임감 있게 바라본다는 것, 내 인생을 필터 없이 목도함은 쉽지 않다. 얼렁뚱땅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당장에야 달콤하고 듣기 좋은 순간의 모면을 선택하고 싶겠지만, 나는 안다. 한 번 살 인생을 그리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원 실장직은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주부들이다. 어제 도착한 이력서 또한 그렇하다. 학원 많이 보내본 엄마들이니 학원은 익숙해서 안전하게 느껴지고, 데스크직이니 몸은 안 힘들겠지 싶어 선택한다. 나 또한 학원을 선택했던 이유도 동생의 디저트 카페 창업을 도우면서 온몸이 두들겨 맡은 듯 아프곤 했었기 때문에, 앉아서 하는 일을 찾겠다 했었으니까. 

 일한 지 1년 된 S실장은 명랑하고 단순한 타입니다. 면접 볼 당시 원장이 "우리 실장들 휴무인 날 어디 갔나 하고 전화해보면 라운딩 나갔더라고요"하며 골프 자랑을 했을 때 언급됐던 분이 이 분이구나 했다. 원장이야 만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은 나를 알지 못하니 실장직을 하면 쉬는 날 골프도 치러 나간다고 꼬드기면 좋겠거니 싶었나 보다. ( 이런 추세라면 전 국민이 아마추어 골프 선수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PC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으로 옮기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데, 반복해서 해도 되질 않길래 검색창을 띄워 두고 했더니 금방 문제가 잡혔다. 1년을 일해도 아는 건 없구나. 적어도 1년 후엔 난 저런 상태는 되지 말자 마음먹었다. 

 일한 지 5년 된 J 실장은 꼰대다. 원장과 기싸움 중이라고 했다. J 실장이 받는 아르바이트비도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터인데, 원장의 학원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한다. 전화를 걸어 내게 말했다. 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지만 그랬더니 원장이 싫어하더라 했다. 당연하지.... J 실장과 5년을 일하는 동안 원장도 힘들었겠구나 싶다. 원장의 말투를 견딜 이가 드물어 어쩔 수 없이 원장 옆을 지키는 J 실장과 함께 한 세 월 이었겠다. 쌍방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겠다. 나란 인간은 J실장과는 거리가 먼데, 첫 열흘 간 나를 대하는 원장의 태도는 J 실장에 맞춰서 있는 듯해 보였다. J는 컴퓨터는 서툴고, 자존심이 세고, 학원일이 수월한 사람이다. 5년 전 학원을 설립할 때의 양식과 홍보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J와 원장의 합작품인 셈이다. 

  내가 뭐라고 학원을 바꾸겠는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 시급 만원의 실장에겐 꼭 필요한 자세다. 

 글을 쓰면서 내게 생긴 변화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또는 어떤 상황에 닥쳐도 있는 그대로 촬영한다는 기분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나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라, 잠 못 자고 곱씹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 노트북을 연다.  스크린을 따라 상황을 써내려 가다 보면, 그랬구나 하며 끄덕거린다. 상대의 말은 나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상처 입힐 수 없다. 상대의 칼이 내게 상처를 입을 거리로 다가오면 물러나 칼을 향해 카메라를 든다. '나'라는 렌즈로 그들을 바라보면 상대의 칼사위는 허우적거림일 뿐이지, 내겐 어떤 상처나 피흘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에서 남편에게 한 번의 편지를 썼다. 그에게 어떤 타격감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편지를 쓰고 난 후 나는 바뀌었고, 순응했다. 당신들을 이해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내가 바뀌어 줄게. 당시의 마음먹음은 그렇했다. 덕분에 어리석음에서 나는 벗어났고, 남편을 포함한 그들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더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상대에 대한 글을 쓰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한 발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습관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고부터 얘들이 나를 반긴다. "엄마!" 자꾸만 전화질이다. 




7시 퇴근인데, 원장이 6시에 나타났다. 젠장.....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학원을 나서니 7시 10분이다. 아들이 배고프다고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말이다. 도착해 보니, 배고픈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있다. 손만 까딱하면 될 거리에 오전에 해두고 나간 볶음밥과 된장찌개가 있는데 말이다. 밥과 국을 덥혀 내니 셋이서 신나게 먹는다. 남편과 한 식탁에서 얼굴 맞대고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싶은 지가 3개월이라, 남편이 식탁을 떠나고서야 내 밥을 떠 앉았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아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딸의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아들의 게임시간에 뜬 광고들에 대한 이야기꽃이 핀다. 

몸은 아직도 학원을 나서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뒷목은 뻐근하고 양 어깨는 딱딱하게 뭉쳐있다. 그럼에도, 금세 아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30분 전 원장에게 한 소리 듣던 실장이었다면, 지금은 그들의 하루 일과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엄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냄새를 맡고 혀로 얼굴을 핥아주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인생이 다 꼬이고 되는 일이 하다도 없단다. 모든 것은 당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 나 때문이라고 했다. 그간 아이들을 대하며 남편과는 한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싶다.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밖에서 입은 상처를 내 보이며 짜증을 냈다. 상처를 바로 보는 이에게 이건 다 너 때문이라 소리 질러댔다. 

시급은 만원이지만, 일을 시작함으로써 얻는 깨달음의 일당은 백만 원은 될 듯하다. 나는 알고 보면 꽤나 고급인력인가 보다! 


대문그림, 김환기 1973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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