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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14. 2023

남매의 엄마에겐 고통이 따른다.

남매의 엄마라니, 분에 넘치는 기회다. 깜냥이 될지 안될지는 신이 판단할 바인데, 신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친정엄마의 든든한 신뢰를 업고 사는 아들 같은 딸로 산 내게 아들과 딸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성별이 다르지 않아도 두 아이 다 개성이 넘칠 터인데, 달라도 이리 다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몸이 두 개였으면 싶다.  터질 게 터졌다. 큰 아이가 수학여행, 단체 체험 학습이라는 2박 3일의 일정을 거부하자, 불안함이 압도했다. 그러다 금요일엔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마음을 터트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금요일 마지막 시간은 동아리 활동이다. 친구도 말 나눌 이도 없는 아들은 동아리에 혼자 들어가 있다. 얼굴을 아는 이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말을 나눌 아들이 아니다. 친환경 동아리라 늘 교실에서 자습하라고 해 주신단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을 잘 만나서 수월하게 잘 지내가는 가보다 생각했다. 

지지난 주부터 같은 중학교의 작은 아이는 어딜 자꾸 돌아다닌다. 동아리에서 예술의 전당 전시를 보러 가고 영화도 보러 간다. 절친과 함께 들은 동아리인 데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절친의 담임선생님으로 딸의 흠모를 한 몸에 받으시는 분이라 딸은 금요일 6교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어딜 자꾸 돌아다니니, 친구가 많은 딸은 학교밖에서 학교의 허락 아래 노니 동아리 시간을 즐겼다. 그런 딸과 동아리 시간에 뭉텅이로 떠들어 대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운 아들이 대비되었다. 


점심시간 후에 동아리 선생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단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주신 선생님은 양재천 근린공원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할 터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하셨단다. 현금도 카드도 가져가지 않고 학교에 간 아들은 버스로 20분 거리를 걸어갔다. 

" 엄마, 물도 안 가져가서 사하라 사막을 걷는 낙타가 된 기분이었다니까. 웃기지? 쌍봉낙타... 단봉낙타.... 흐흐흐." 

피눈물이 났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숨을 들이쉬고 아들과 함께 맞장구를 쳐주었다. 

" 아들, 다음번엔 엄마한테 전화해. 학원 아르바이트하는 곳이 너네 학교에서 20분도 안 걸리잖아. 엄마가 돈을 가져가던지, 엄마 있는데서 택시 타고 물 들고 가면 빨랐잖아."

" 엄마 일하는데 방해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나 왕복 3시간이나 걸었어. 오늘 많이 걸었지?" 

속상하다. 




대중교통을 타는 법과 서울을 걸어 다니는 데에 익숙하게 해주고 싶었다.  낯선 환경도 즐거울 수 있다고 북돋아주고 싶었다. 딸아이는 황금연휴가 있던 지난주부터 엄마랑 오빠랑 어디든 놀러 가고 싶다고 했고 딸아이를 빌미로 송도행을 계획했다. 2주 전부터 아들에게 일요일에 한 시간 반 떨어진 송도에 가서 먹고 놀 것이라 얘기했다. 

" 엄마, 나 안가. 집에서 수학 공부할래." 

아들에게 악다구니를 썼다. 그렇게 외출하지 않는 것은 병이다. 한국에 정을 붙이려고 노력 좀 해봐라. 신경정신과 졸업 빨리해야 하지 않겠냐. 마음에 담아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내면 낼 수록 아이는 담담해졌다. 

진정하라고 엄마. 엄마의 말은 사실이 아니야. 난 세상이 두렵지 않아. 차분한 눈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울부짖는 나를 바라본다. 

" 엄마, 난 오빠가 안 갈 줄 알았어. 오빤 너무 이기적이야." 

딸아이는 나보다 더 분개한다. 2주간 고대하던 날을 망쳐버렸다고 오빠가 너무 싫다고 했다. 내 감정을 그대로 담아 내려가는 딸부터 진정을 시켜야겠다. 그리고, 안방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남편이 나의 이 고전을 엿들을지도 모른다면 고소해할 수도 있겠다. 잘난 척하더니 어디 한 번 고생해 보라고 할는지 모른다. 

 두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엄마가 미안해. 다 미안해. 잘할게. 불안해하지 않고, 너희들을 믿을게. 용기 있고 씩씩하게 살게. 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말로만 고통은 약이라 하고는 단 한 조각의 쓴 맛도 내 새끼들은 맛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다. 이런 이기심 때문에 늘 불안하다. 고통의 한 중간에서 우린 안도한다. 아마도 대장염일 것 같은데, 아침만 먹고 나면 화장실을 서너 번씩 가는 요새다.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은지 않은 순간보다 아파오기 시작하는 순간이 훨씬 안도감을 준다. 배가 꼬이 듯 아픈 사이사이의 평온함은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아플 땐, 화장실만 찾으면 되니 얼마나 명쾌한지 모른다. 또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이 고통이 사라질 예정이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 내가 성격이 거지 같았으니까, 친구가 없었지." 

중학교를 사랑하고, 코로나가 사라진 상황을 백 번 즐기며, 한국에서의 모든 인연을 즐기는 딸아이는 친구가 없던 국제 학교 유치원의 어린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때 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진심으로 사과할게.'를 반복해서 말한다. 지금도, 그때도 넌 존재자체로 빛났다고 딸아이에게 쇠뇌하는 중이다. 가스라이팅이라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각오할 터이다. 

외롭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딸아이 옆의 인연들은 소중하다. 한 명 한 명 내 딸같이 귀하다. 딸의 빛나는 중학교 1학년을 선물해 주는 그들을 뜨겁게 안아주고도 남을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의 찬란한 행복은 고통스러웠던 국제학교 유치원 시절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잊는다. 잊고 또 잊으니 어디에 문신이라도 새겨야 할 판다. 

"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뻔한 진리를 손가락 어딘가에다 박아 놓아야겠다. 자판을 두드릴 땐 엄지 아래가 제일 잘 보이니 거기가 적격이겠다. 내일은 문신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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