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가 심하다. 수학여행 출발 전 멀미약 하나 먹음 될 것을 나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다. 기억 속 수학여행은 어지러움증이다. 좌석 배치도 문제다. 수학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러 난관이 내 앞에 대기 중이었다. 단 한 명에게만 내 옆에 앉아 달라고 부탁하긴 애매하고 지질하다. 한 친구에게 말하면, 다른 아이는 어떡하나? 나의 선택으로 상처받는 이가 생길 수도 있다. 버스 옆에 앉을 친구도 없어서 미리 부탁한다고 여기면 어쩌지? 서울 지하철 마냥 영화에서 본 군인 트럭 마냥 일렬로 번호순으로 앉아 마주 보고 갔으면 좋겠다. 고속버스는 왜 죄다 이따위로 생긴 거냐고.
필드트립이란 국제학교에서 가까운 장소로의 체험학습을 말한다.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버스를 타고 나간다.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 뒤편에 자리한 넙데데한 타우누스 산은 매주 간다. 샤프론이라는 부모 도우미가 동행을 한다. 저학년은 여러 명의 도우미가, 고학년은 도우미가 1명 남짓 필요하다.
우르르 뭉텅이로 학교를 다녔던 큰아이는 친구 만나러 학교 가는 셈이었다. 산을 가든 바다를 가든 어디서든 그들과 함께라면 상관없었다. 단짝은 필요 없다.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이 몇 년을 둥개둥개 몰려다녔으니까. 뭐 하고 지내나 싶어 샤프론으로 학교를 가볼라치면 아들이 절대 오지 말라 말렸다. 아들이 허락하든 말든 요새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 필드트립 동행을 청한다. 담임선생님에게 얼굴 도장도 찍을 겸해서 가보는 거다.
게르만까지 행진해 온 로마인들이 기원전 지어둔 요새로 필드트립이라, 관광버스로 30여분이 채 안 걸린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20여 명을 버스로 인솔하는 데는 샤프론 1명도 남아돈다. 그러니, 엄마에게 눈인사 한 번 하고 수다 떨기에 정신없는 아들을 바라본다. 엄마의 눈길은 느껴지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바빠 보이는 아들로부터 멀치감치서 반아이들을 모두 버스에 태우고 나니, 버스 안 빈자리가 보인다. Homeroom 선생님은 혼자 앉은 아이, 평소 옆에 앉아야겠다 싶은 아이 옆에 앉거나 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샤프론 온 부모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녀도 나도 각자 할 일을 해야 하는 업무시간일 뿐이니까. 상담날이 아니기에, 그녀에게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볼까 싶어 온 내겐 필드트립에 대한 이야기 외엔 그 무엇도 건네지 않는다. 미국인들이란 칼 같은 데가 있다.
그럼 나도 앉아 볼까? 아들이 재잘 대는 소리가 들리는 데쯤에 오도카니 앉은 남자아이 옆에 앉아본다. 국제학교야 주재원과 미국군인 등 나라를 옮기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아이가 늘 드나드는 곳이라 new face는 항상 존재한다. 예측 없이 또는 계획되어 옮겨 심어진 아이들은 온 학교에 존재하니까.
아이에게 나를 소개해본다. 난 쟤 엄마야. 영어 하지 못하는 중국아이다. 젠장, 담임은 뭐 하는 거야. 얘 옆에 앉아 주지 않고..... 못된 X. 손짓, 발짓해가며 아이에게 말을 건네어본다. 30분 알 수 없는 소음에 쌓여 로마인의 성인지 요새인지로 옮겨지는 이 시간이 너에겐 어떤 의미로 남을까? 중국어 한마디 할 줄 모름이 안타깝다. 아이가 창 밖을 바라본다. 응. 그냥 너의 옆에 앉아있을게.
버스 맨 뒷자리에서 인싸가 되어 웃는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러다 담임한테 혼나지 싶다. 아들은 이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어디 앉아 있는 흡족할 따름이다. 엄마는 오늘 너의 웃음을 들으려고 샤프론을 신청했구나 싶다. 너의 기억 속에 필드트립이란, 체험 학습이란 어린 나와는 다르게 행복하게 반짝거리는 시간으로 남겠구나.
" 엄마, 오늘은 몇 시까지 가야 해?"
목에 힘이 들어간다.
"3학년 8반 교실에서 8시 50분까지."
한 템포 쉬고, 진정하고 학교 알리미에 온 내용을 AI 알렉*처럼 전달하려고 애를 썼다. 2박 3일의 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서 5교시까지 자습을 할 예정이다. 급식이 없어, 도시락을 싸간단다. 혼자 먹으려면 삼각김밥이 덜 민망하겠지 싶어 아침 일찍 일어나 주문을 외우며 밥을 안치고, 참치 소를 만들었다.
'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마음 맞는 아이 한 명 만나는 날이 되게 해 주세요.'
기도하며 밥 한 숟갈, 밥 두 숟갈 꾹 삼각김밥 틀에 눌러 담는다.
2박 3일의 체험학습 비용이 50만 원이더라. 아무리 강남이라지만, 여전히 적응은 안 된다. 내일은 병가 내고, 아들과 외출해야겠다. 엄마표 체험학습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가 가득하다는 일본 문화원도 가고, 주변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어야겠다. 5만 원 정도면 반나절 충분하지 싶다.
알고 보니 아들은 효자다. 월급날이 25일이라 잔고가 5천 원이라, 신용카드 쓰기 찜찜한지 어찌 알고는 체험학습을 안 간 건지 신통방통하다. 그리 생각하자. 시간이라는 그릇 속에 담길 의미는 내가 정한다. 아이의 시간 그릇에 빛나는 체험으로 담기도록 도울 수 있다. 16살 수학여행이란 단어에 떨던 여고생이 아니라, 엄마 호박씨니까 말이다. 한국에 옮겨 심어진 아들이라는 풀에게 물을 줄 수도 거름을 줄 수도 있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