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검색해봤더니 정신분열증 약이라는데?"
맞다. 아들이 신경정신과에서 받아오는 약을 네이*에서 검색하면 정신분열증은 물론, 조현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명이 나온다. 부서진 접시를 쓸어 담아본들 뭔 소용이 있을까?
담백하게 말하는 아이의 음색에 울보 호박씨는 눈시울이 무거워져 온다. 티 내지 말아야지.
" 초기 감기약 같은 거야. 독감 심해져서 엄청 아팠잖아. 초기에 아주 아주 약한 약으로 잡으면 심해지는 지경까지 안 가는 거지. 오케이?"
듣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던 아들이 저녁나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게 외친다.
" 엄마, 1/10의 정도 약 이래. 만약에 나를 10개로 나누면, 나는 통째 백 프로 분열증 환자인거지! 흐흐흐"
맞아! 다행히 사랑하는 네가 10개로 나눠지는 일은 엄마 살아생전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니, 넌 초기감기약 정도의 정신과 약이 필요한 지금에서 더 심해지지 않겠지? 부디 말이야.
도와달란 말 하는데 소질이 없다.
"그렇게 힘든데 왜 말을 안 했니!"
S사 주재원을 프랑크푸르트에서 함께 지낸 이를 만나니, 아이 때문에 힘든 상황을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나무란다. 아핫! 그럼 도와달라고 해도 되는 거야?
" 언니, 아들한테 저희 아들 수학 과외 좀 부탁해도 돼요? 친구 없고, 한국이 싫다는 얘한테 엄마말고 친한 형 있으면 힘이 되지 싶어서요. 1주일에 한번만이라도 만났음 좋겠어요. 수학 때문이 아니고, 마음 나눌 형하나 생길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그건 안된단다. 송도의 국제학교 졸업반으로 미국과 싱가포르의 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서 초조한 언니 아들이라 우리 아들 만날 시간은 없다고 한다. 힘들어 외로울 땐, 또 다른 힘든 이를 도우며 힘을 돋운다. 나는 그렇하다. 원서는 내어 뒀으니 내 아들을 도우며 여유를 챙기면 어떻겠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그럴 만큼 그녀에게 애정이 없으며, 그녀 또한 진짜 관계를 맺을 마음은 없을 것만 같다.
" 호박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 네, 언니 뭔데요?"
" 우리 아들 미국 대학 붙었어! 이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근데 학비가 없어서 못 간다는 거."
한 달 후 그녀에게서 톡이 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깨워 카페로 데려가지 않으면 하루종일 혼자 자신의 방에 누워 있을 런지도 모르는 아들과 차가운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강남역으로 향하는 날들이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을지언정, 북적이는 출근길 속에서 숨 쉬는 아들을 보고 안도했다. 디저트 카페에 들르는 아기들을 보며 미소 지을 때도 있었다. 산책 나온 단골 개를 맞아 어찌할 바를 몰라 자꾸 나를 쳐다보는 순간도 있었다.
엄마도 되고, 아빠고 되고, 친구도 되리라 이를 악물었지만 불안했다. 누구라도 내게 손 내밀어 준다면,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이라 믿었다.
언니의 톡에는 내 아들에 대한 안부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잠자코 언니의 아들 입시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줬다. 싱가포르 대학 또한 지원했는데, 거기 보다야 국내 대학 진학했으면 좋겠단다. 국제학교에서 국내 명문 사립대 Y를 진학한 언니의 큰아들처럼 작은 아들도 그리면 됐으면 좋겠다 싶은가 보다. 싱가포르 대학 또한 합격하길 빈다고 해야 하나, 아님 싱가포르 대학 붙을 바에야 언니 바람처럼 국내 대학 붙길 기도한다 해야 하나? 고민하다 우리의 톡은 마무리가 되어갔다. 소심하게 마음먹어 본다. 진짜 인연이 아닌 걸로 그 언니를 분류해야겠다.
드레스덴은 대체불가의 도시다. 독일서 살고 싶은 도시를 단 한 곳만 찍으라 한다면 내겐 드레스덴이다.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귀엽고 아늑하면서도 위엄 있는 성모성당이 있다. 성모 성당은 2차 대전 폭격으로 그 뼈대만 남았다. 공중 포격으로 드레스덴이란 도시가 사라질 지경에서도 시민들은 잔해를 쓸어 모았다. 깨진 접시의 파편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시 건축한다는 마음으로, Frauenkirche의 조각을 담아 올렸을 것이다. 성모성당이 원래의 모습을 되찼는다면, 우리도 드레스덴에서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란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성모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전형이지만 스타일과는 엇박이게 아담한 편이다. 드레스덴을 통틀어, 유럽을 통틀어 그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성모 성당이 대단히 특별한 건축물은 아니다.
성모 성당 외벽 중 한편은 시커먼 그을음으로 특유의 아이보리 색과는 다르다. 폭격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벽이다. 성당의 벽돌은 어제 지은 듯 아름다운 상아색이 대부분이지만 사이사이 시커먼 벽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살아남은 드레스덴 시민들이 번호 매겨 간직한 조각은 빠짐없이 오늘의 프라우헨 성당을 이루고 있다.
아픔과 상실의 기록은 소중하다. 건재하고, 딛고 일어나며 승화한 후 금 간 자리를 찬찬히 매만져 본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왔고,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박살 난 접시는 원래의 모양을 찾을 수 있다. 실금이 범벅이라도 뭐 어때. 영광의 상처라 쓰다듬어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