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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신 의사, 사과 대신 이해

by 호박씨

"내가 갈 곳은 너네 집이지."

어머니가 허리수술로 서울에 오신단다.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 오시라고 해야한단다. 시누들 집에서 지내실 테지만, 말이라도 그리 해야한다해서 전화 드렸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던 중에 가장 높고 기쁜 톤이다.

허리가 아프신 상태를 확인한 것도, 수술을 잡은 것도 심지어 수술 집도 의사 조차 알아본 바는 딸들이다. 며느리인 나에게 어머니가 바라시는 건 단 한 가지, " 수술 끝나면 우리집으로 오세요."라는 말이다.

어머니를 모시러 이미 딸 한명이 해운대에 내려가 있다. 남자친구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다. 서울 오는 시간 맞춰서 공항에 차를 몰고 나가고, 저녁을 먹고 온단다. 남편은 그 다음날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료를 도와드리고,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란다. 우리 모두 월요일 저녁 시간 대기다. 오라고 하는 시간에 오라고 하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어야한다했다.




부모님의 생계를 20년 동안 책임졌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의사 업을 할 예정인 사위가 집안에 둘이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세상이다. 신은 사라졌고, 의사는 남았다. 신의 자리는 비었으나, 신보다 전지전능한 의사가 우리에겐 있다. 신보다 돈 잘 버고, 신보다 똑똑하다. 신께 드리는 기도는 거리가 멀어 내 목소리가 그에게 닿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신께 드리는 기도는 고통스럽다. 새벽같이 교회에 나가든, 백팔배로 무릎과 팔꿈치가 닿도록 기도하는 노동을 감수하고도 나의 목소리에 신이 귀 기울여 줄지 아닐지 확신하지 못한다.

의사 사위는 내 앞에 앉아있다. 손 닿는 곳에 위치하며 말도 한다. 어머님이 전화하면 그 전화를 받을 것이다. 살려 달라 애원하면 기꺼이 그러겠다며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신이란 말인가? 이 신들은 사람을 살려 돈을 번다. 많이 번다. 의사 사위들은 생활비를 따박따박 20년 동안 군말 없이 바쳐왔다. 참으로 바람직한 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으로의 마지막 외출을 하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간 아버님은 하루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가실 때가 된 듯하니 집으로 모셔가라는 병원의 메세지를 남편과 남편의 누나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에 계시는 일주일 동안, 컨디션이 좋으시다고 기뻐했다. 병원에 계시길 늘 원하지 않으셨던 아버님이셨다. 병원에 간병인이 있으니 어머니는 병원 출입이 거의 없으셨다. 댁으로 모셔오니 부산으로 남편과 누나들이 번갈아서 시댁으로 달려가 아버님을 돌봤다. 다시 병원으로 모셔야하는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를 했는데, 더이상 집에서 모시긴 힘들다는 이유에서 였다. 요양병원이 나을까, 기존에 계시던 병원 중환자실이 나을까 고민하던 그들은 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새로 간병인을 구하고, 아버님이 병원에 돌아가신 만 하루만에 다시 남편은 해운대로 새벽에 급하게 출발했다.


" 네가 오길 기다렸다보다."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막내누나가 남편에게 말했다. 아버님은 남편이 도착하고 눈을 감으셨기 때문에 끝까지 아들을 기다렸다는 것이 그녀의 논리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의사 둘째 사위가 말한다.

" 그게 아니라, 올 사람 다 올 시간에 맞춰서 가시게 병원에서 셋팅을 해둔거지."

우리는 병원을, 그리고 의사를 신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버님이 살아 계시는지, 눈을 뜨고 계시는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의사다. 살아있는 이 중에서 돈 있는 이에게 의사는 얼굴 마주하고 인사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패혈증으로 아버님 몸 속 피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패혈증이란 병에 대해 남편과 누나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의사인 누나의 남편 그리고 남편의 친구인 두 의사는 패혈증이다라고만 말했지, 가망없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집안 여자들이 울며 불며 그들을 원망할까 두려웠을 것이다. 신이잖아? 왜 살리지 못해? 더 살게 해내라는 울부짖음을 들을 용기가 그들에겐 없다. 손쉬운 돈처럼 달달한 존경과 숭배가 그들이 원하는 바다.



무엇을 잘못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과 둘째누나는 아버님의 첫번째 기일까지 내내 화가 나 있었다. 아버님의 병과 죽음을 맞닥드린다는 일이 두렵고,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스며드는 불안함과 슬픔을 내게 쏟아냈다. 뭘 더해야한다고, 뭔가를 해야한다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에서라도 두 사람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부서짐을 기꺼이 환영한다. 내겐 신같았던 그들은 죽음과 고통을 두려운 애어른이라는 사실은 선연히 떠오른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지 2년을 채워가는 지금, 남편에게 말했다.

"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누구한테든 무엇에든 탓하고 싶어하는 거 같더라. 그게 나인거 같더라구. 제일 만만한 대상."

" 사람마다 표현방법이 다르니까.... 오해야."


글쎄요. 오해라는 말은 편안하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야라 치부하면 뭐든 둥글게 변한다. 뾰족한 마음이 베어낸 날카로운 말들에 피 흘리는 주방이 싫다.

" 고생했어."

달싹이듯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내겐 신이다.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공감은 전부다. 살게하는 힘, 당신을 덮치는 불안함을 떨치는 단 한가지는 끄덕임이다.

허리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남편의 긴장도 잦아들었다. 둘째 누나네 도착한지 3일만에 어머니는 본인을 집으로 데려다달라 하신다. 어머니의 불안감을 잠재워 줄 것이라 여겼던 둘째 사위의 집은 어머니에게 편안함을 제공하지 못했다.

" 다들 자기 집이 제일 편하잖아."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읽는다. 남편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여전히 의사는 신이다. 생과 죽음을 쥐고 있는 그들은 자애로운 신이여야한다. 그럴리가 없음에도 말이다. 그들도 한낱 인간일 뿐이란 것을 언제쯤이면 알게 될까 궁금하다.



"처남아, 어머니 수술비 내가 비용처리해도 되지?"

내가 잘 아는 의사는 이렇하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나누어 부담했지만, 내 세금은 소중하니까 월급쟁이 처남에게 영수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아이구야.


대문 그림 Thomas Eakins: The Gross 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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