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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전복

by 호박씨 Jul 30. 2023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면 진짜 피해자가 된다는 은유 작가의 말이 와서 꽂힌다. 이 더위에, 가만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날씨에 서슬 퍼런 문장 덕에 에어컨 없이도 정신이 맑아진다. 

전복 간장조림을 하면서도 왜 나는 그냥 조리기만 하지 못하는지, 선연히 알 수 있다. 순간순간 깨치며 사는 삶, 책 읽기와 글쓰기이면 가능하다는 걸 전복을 보며 오늘 또 깨닫는다. 




그들은 야심 차게 서울로 올라왔을 게다. 그들이 두 번째로 보금자리 잡은 곳은 화양리. 지금은 화양리는 어떨지 몰라도 당시 화양리는 성매매 집결촌이 위치하던지 얼마 되지 않았었던 터라 그녀의 선택을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울 안에서 강남, 서초를 제외하고 이리저리 구를 옮겨 다니던 그녀가 이번엔 위례를 선택했다. 

서울 살이가 25년이 다 되어가는 둘째 시누는 여전히 부산사투리를 구사한다. 어쩌다 다들 모인 자리에선 스스로를 촌년이라 일컫는다. 둘째 시누의 지방 콤플렉스는 변치 않고 영원할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이제 강남 사모님 되셨네."

5년의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는 즈음, 고민이 많았다. 그녀가 권한 목동 대신에 강남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나와의 통화에서 첫마디가 강남사모였다. 강남 전세살이가 그녀를 거슬리게 한 걸까, 아니면 그녀가 말을 듣지 않는 동생과 동생의 와이프가 성질 나는 걸까? 알 수 없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그녀의 언어로 생채기투성이다. 그녀로부터 얻은 상처는 치료되지 못하고 남편을 향한다. 무성의하게 내뱉는 남편의 언어에서 그녀가 내뱉은 말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젠 연락도 마주침도 하지 않는 그녀로부터 독립할 때가 왔다. 그러니 전복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이런 더위가 아니어도 여름 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얼굴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더위가 무르익으면 엄마는 전복을 조린다. 음식으로 말하는 엄마, 요리는 엄마에겐 즐거움이자 대화다. 전복죽이란 메뉴하나를 하는데에 하루 종일이 걸리는 어머니와 전복 조림쯤은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친정엄마, 두 여자의 요리로 남편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깨닫는다. 

시누들이 계획한 어머니의 허리수술은 2달 전이었다. 시어머니가 어찌 될까 싶어 초초해하던 남편은 2달간의 서울 요양이 끝나자, 언제 시어머니를 해운대로 모시고 내려가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기분을 살피더니 갈비탕과 전복 조림을 내게 부탁한다. 일요일엔 음식을 싸들고 모시고 내려갈 터이니, 준비해 달라고 한다. 손도 까딱 하지 않고 하리라 마음을 먹어본다. 전복을 조릴려니 지속적으로 둘째 시누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첫제사였다. 집안 모든 여자들이 며느리가 어쩌나 보자 싶은지 한 마디씩만 해도 네 마디인 것을 알지 못했다. 살아계실 때 잘하지, 후회하면 뭐 하나 싶었다. 딸이 아닌 며느리라서 하는 소리다. 아니다, 난 딸이어도 저렇게는 안 하겠다 싶었다. 

" 다음엔 네가 혼자 해. 해주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잘 보고 배워." 

제사상에 올릴 전복을 조리며 그녀가 말한다. 대꾸하지 않았다. 전복 조릴 줄 아는 것이 그녀에겐 큰 자랑인가 보다. 시어머니도 둘째 시누도 그들은  조그마한 전복 하나에 만원도 넘던 시절, 명절 백화점 선물세트에 전복이 처음 나오던 시대를 산다. 20년 전 그들의 황금기에 그들은 머물러 있다. 어제자로, 주먹만 한 전복 10마리에 1만 원대다. 전복농장주인 분들에게 황송할 지경이다. 

 전복요리 할 줄 아는 것이 의사 와이프의 덕목이라 여긴다. 넘치는 생활비에 조금은 익숙해진 서울살이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이 들여다보인다. 안쓰러운 그녀지만, 내가 안쓰러워하는 바를 표현하기엔 그녀는 여러모로 마음 다친 구석이 많다. 

"얘도 못 낳는 주제에 어디서 기집질을 하려고 해."

둘째 시누는 시어머니에겐 이런 말까지 들었단 소리는 이제 한 번만 더 들으면 100번은 채울 것이다. 의사 아들이 전 지구에서 본인 아들뿐인 줄 아는 시어머니에 10년을 찾아오지 않는 아이에 그녀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도 남는다. 그러니 집안에 하나뿐인 며느리 내게 구박도 해보고, 자랑도 해보고, 시샘도 해본다. 참으로 내내 안쓰럽다. 




 

 첫제사상을 준비하며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꼬박 하루를 말로 나를 찔러댔다. 새벽같이 일어나 제사를 지내고, 다들 한술 뜨려고 앉은자리의 분위기는 이제야 가라앉았다. 글 쓰는 사람이라, 내게는 만 하루치의 원한 섞인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큰 시누가 내게 말을 건다. 기회는 이때다. 

" 제사 안 지내봤지?"

" 저희 친정아버지가 장손이잖아요. 친정엄마가 맏며느리로 제사 지내신 지가 40년이에요. 일도 워낙 쉽게 하시고요." 

톤을 한껏 높여 말하니, 워낙 말이 없던 내가 입을 띠니 둘째 시누를 비롯한 그날의 제사를 함께한 모두에게 나의 목소리가 가닿는다. 가만 내 말을 듣던 둘째 시누에겐 깨달음이 왔나 보다. 첫제사 이후론 음식 준비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시어버지 제사, 한 분의 제 사쯤이야 우리 엄만 눈감고도 하겠구먼. 이렇게 말하지 못하였어도 그들 귀에 잘 들리게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릴 수 있게 되어 뿌듯할 따름이다. 

 전복을 껍질까지 박박 씻니라 한 시간은 보내는 그녀의 작은 어깨가 싱크대를 한참이나 지켰었다. 나는? 

남편을 시킨다. 껍질은 입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씻겠는가. 가위로 전복 관자부위까지 깊숙이 날을 집어넣어 잘라내면 전복살만 떨어져 나온다. 독이 있다는 이빨만 방금 전 사용한 가위로 도려내면 전복 다듬기는 끝이다. 이 마저도 하기 싫을 만큼 땀이 흐르는 날이라 어머니를 위한 음식은 남편 당신의 몫이라고, 하루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내일 아침 9시부터 전복조림을 할 예정이니 그대가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부엌에서 시누들이 다 사라진 두 번째 제사, 남편과 이것저것 상의해 가며 준비하는 제사상이 좋았다. 월급쟁이라서 의사가 아니라서, 생활비를 대지 못하는 아들이라 ' 나는 하는 게 없지.' 또는 '우린 하는 게 없지'라며 스스로를 쓸모로 판단하는 남편이라 누나들의 도움 없이 한 가지씩 해낼 때마다 표정이 밝아진다. 그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그가 이해할 수 있게끔 분절하여 조리법을 알려준다. 맛있고, 보기 좋은 음식이 탄생하면 그의 덕이라 치켜준다. 



"전복 조림 맛있더라."

해운대에 잘 도착했다는 한 마디가 지나자 어머니를 바꿔준다. 시누의 전복 조림 구박을 이겨내고, 남편과 즐기며 만든 전복조림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칭찬은 필요 없고 충만한 상태다. 

"네. 건강하세요."

전복을 조리기 싫은 나의 역사와 감정은 글에 싣자꾸나. 시어머니에게 본인 딸 이야기를 꺼내기엔 그녀는 허리수술로 기력이 쇠하였으며, 자신의 자식을 전부로 아끼며,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겐 지난 사건들을 되돌이켜 글로 씀으로써 나만의 언어를 가질 젊음이 있다. 어머니용 전복을 조리는 김에 10마리를 더 조렸다. 1일 1 전복하며 이 여름 글 쓰는 젊음을 더 연장할 셈이다. 글 쓰기는 전복보다 더 효과 좋은 원기 회복이다. 가슴에 꽂힌 시누의 말도 이 더위와 함께 날려 버리니 말이다. 


사진: UnsplashJulie Fran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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