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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험지에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다.

by 호박씨

글을 쓰다 보면 선명하게 관계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글에 기대다 보면 말이 닿지 못해 외로운 순간도 넘어가진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기로 작정한 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답을 하곤 했는데, 그건 음식이었다. 말이 없고, 알아서 배려해 주길 기대하는 아빠와 40년 넘게 살면서 엄마도 아빠도 대화가 없는 관계가 되었고, 글도 웃음도 울음도 없는 시간들을 잣아가고 있다.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겠다는 소신이 있었다. 다들 그런 생각들 한 번씩들 하지 않나? 나만 이러한가. 부모에겐 감사하지만, 난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들 해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멀쩡하게 맑은 날 내게 일어나는 불행은 누구라도 탓하고 싶다. 다들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준 이를 탓해보는 거다. 손쉬운 방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배우자와 사는 그녀, 받고 싶은 관심을 요구할 줄 모르는 친정 엄마를 보면서 나는 다르게 살리라 마음먹었다.




허리수술을 위해 서울로 어머니를 모시러 부산에 갔던 막내누나가 어머니를 내내 돌볼 것이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장어 덮밥집까지 모시고 나온 막내 누나는 어머니 안중에도 없다.

" 너 큰 거 먹어라."

메뉴판부터 아들에게 내미는 어머니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녀가 불쌍하다. 며느리인 나도 안쓰럽다. 엄마와 아들의 꽁냥꽁냥한 사이 옆에서 들러리 서있으니 말이다.

" 남은 거 먹어라, 난 배부르다."

어머니 드시다 남은 장어덮밥을 내게 권하신다. 남편은 얘들 음식을 주문하면서 하나 시켜 둘이 나눠먹으라 한다. 기가 막히다.

어머니는 여기 함께 앉은 5명 중에 젤로 귀한 사람은 내 아들이라고 티 내시는 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남편과 누나가 수다를 떠는 대화 속에 나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내 근황을 묻는 이는 없다. 그림자 사람, 보모, 씨받이 별별 단어가 다 떠오른다. 아이들의 외모 칭찬을 신나게 하고도 침묵을 이기지 못한다. 1인분에 5만 원이 넘는 비싼 장어 덮밥을 시켰어, 허리 아프신 어머니도 계시니 쾌적한 이 공간에 좀 더 머무르자 싶은가 보다. 방 안을 감도는 싸늘함은 남편과 누나 둘 다 느꼈을 것이다. 침묵을 지키는 나의 기운인가 보다.

60이 다 되어가는 막내누나의 남자친구는 의사다. 아내를 5년 전에 먼저 보내고, 우울증을 앓는 두 딸을 가진 막내누나의 남자친구가 루이비*백을 선물해주었나 보다. 까만 명품백에 잘 어울리는 원피스를 차려입고 장어 덮밥을 먹으러 나온 그녀가 참지 못하고 결국 가방 이야기를 꺼낸다. 내 딸에게 말을 건다.

" 이 가방 어때?"

평소 같았으면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을 것이다. 남자친구가 선물해 줬구나 하면서 부러운 척을 해줬겠지만 불쌍한 그녀에게 더 이상 값싼 동정은 하지 않는다. 아들,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라고 말하는데 눈곱만큼의 죄의식도 없는 어머니 덕분에 막내 누나는 내게 칭찬을 기다리고, 남편은 엄마에게 받은 넘치는 사랑을 갚지 못해 안달이다.

적어도 시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거울 보듯 그녀가 아들을 키워왔고 대하는 태도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내게 정답은 알려주지 못해도 오답은 알려주는 이가 바로 시어머니다.




앞서 가는 이를 따라 하면 편하다. 따라 하고 싶은 사람 또한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모순과 오류 덩어리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부지런히 사서 읽혀준 'Wh*' 시리즈 전기 만화가 부럽다. 단순하게 담아진 인물의 인생이 위인전으로 쓰여 내려져있다. 어두운데 혼자 더듬더듬 거리기 싫어 등하나만 있으면 싶다. 저리 살면 되는구나 싶은 '엄마'가 곁에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투정이다.

오늘도 서점을, 도서관을 헤맨다. 정답 같은 엄마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투정 어린 희망을 버리기엔 외롭다. 컴컴해서 한 치 앞이 보이질 않아 희망을 부여잡는다. 어딘가는 있겠거니, 정답을 가진 엄마.


대문 사진 : https://kr.louisvuitton.com/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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