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3년여를 벼른 해외여행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수진작을 위해서라도 돈을 쥐고 있지 말고 쓰라는 분위기니까. 시어머니에겐 전신마취의 대수술의 시간이었다.
신경협착으로 생기는 허리 통증은 고질적으로 데리고 살아온 증상이라, 어지간히 알고 있지만 어머니의 통증을 위로하고 개선하는데 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오롯이 스스로의 통증은 딸들, 딸 중에서도 한 명에게만 말했으니까. 세 시누이 중에서 내게 가장 험한 둘째 S에게만 얼마나 아프고 어디가 아픈지 호소했다. 의사인 둘째 사위의 말이라면 어머니는 하늘같이 여기니 수술도 둘째 사위 친구가 운영하는 곳에서 예약이 잡혀있다. 내겐 수술 일주일 전 서울에 오신다더라 라는 한 마디로 시어머니의 대 수술이 알려졌다.
어머니는 그렇다 치고, 난리 칠 남편이 걱정됐다. 나와 이야기할 의지가 없는 어머니를 무슨 수로 엄마처럼 친해지라는 건지... 15년 내내 그는 이 집 딸이 되어 엄마의 속속들이를 다 알아내라고 떠밀어댔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속상한지 딸들에게 하는 소리만큼 며느리에게도 하게 되길 빌었다. 무슨 수로?
멀쩡한 딸들이 셋이나 있는 데다가 엄마 전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을 아들이 있는데 무슨 수로 자리를 꿰차고 않는단 말인가? 그는 나를 무능하다 했고, 나는 그의 꿈같은 이야기를 무시했다.
허리 통증은 다스리며 살았다. 신경이 눌린 바라 신경 수술을 해야 하는데 간이 작은 나로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자 주의다. 뭐든 몸에 칼 대는 건 안 하고 볼 일이다 싶다. 어머니는 나와는 정 반대쪽에 서 있는 이다. 의사사위를 맹신하면 마음은 편안할 터이다. 어머니가 부지런히 다니시는 절의 부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어머니 앞에 나타난다면 의사일 테다. 80이 넘은 나이에 전신 마취의 신경수술을 하셨으니 수술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퇴원을 못하신다. 퇴원 후에도 내내 조심하셔야 한단다.
퇴원 후 한달 동안 요양할 S네 집에 나를 보러 올 땐 100만 원을 준비해서 오라 당부하신다. 아들집에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의사 사위 집에 있는 것이 내 마음이 편안하다가 어머니의 요지다.
" 같이 갈 거지?"
남편은 나의 동행이 궁금한가 보다.
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S는 계속 나를 째려보는 중이다. 부유하고 행복하며, 넉넉하고 거칠 것 없어야 하는 그녀의 삶은 나 때문에 꼬였다는 식이다.
" 아들 학원 챙겨 줘야 해서 못 간다고 하면 안 될까? 혼자 가서 어머니 얼굴 뵙고 오지?"
" 그건 전혀 적절한 변명이 못돼."
당신 누나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속속히 묘사해 주고 차마 내가 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둘째 누나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 거림을 설명해 본들 남편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말해봐야 소용없어 입 다물고 머리를 굴려본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안 볼 수 있을까?
신 같은 의사도 가지지 못한 게 있다. 인물이다. 유도 선수의 두둑한 역삼각형 체형을 가진 S의 남편을 조카 A는 똑 닮았다. 시험관으로 10년 만에 귀하게 얻은 딸인데 아빠와 얼굴뿐 체형까지도 붕어빵이다. 미모로 의사와 결혼했다 생각하는 S를 포함해 남편집 여자들은 모두 아름다움이 삶의 으뜸 가치다. 그런 엄마를 가진 조카 A는 어릴 적부터 외모로 재단당했다.
내겐 A가 참말로 예뻤다. 외로워 보였다. 책으로 가득한 방을 마련해 준 엄마의 바람을 읽은 A는 내 손을 책방으로 이끌었다. 죽은 책들로 빽빽한 방에서 A는 혼자 책을 읽을까? 내가 없는 시간 A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궁금했다. 서울엔 변변히 친구가 없는 부산 사람 S 만큼이나 어린 A에게서 서늘함을 느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게 A는 애처로움이었다.
A의 생일은 3월이다. 남편이 잊지 않고 챙기기에 날짜도 꼬박 기억한다. 지금의 남편은 아이들 생일도, 내 생일도 소홀하지만 조카 생일 와 누나 S 그리고 매형의 생일은 악착같이 챙겼었다.
"옷 사이즈 얼마 사면 돼요? "
내 눈엔 A가 예뻤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옷 고르기니까 A의 생일 선물은 능력 발휘를 최고조로 해내야지. S에게 칭찬받을 생각을 하면 기뻤다. A의 통통한 몸이 S에겐 얼마나 끔찍한지 헤아리지 못했으니까. 나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진 않았지만 S 정도는 아니었으니 , A에게 잘 어울리는 새 옷을 사서 입힐 생각뿐이었다.
8살인데 13세 사이즈 옷을 사오라했다. 엥? 초1인데 초 6 옷을 사야 한다고? 백화점에 가 보니 11세 정도만 사도 될 듯했다. 내 눈썰미를 믿으니 알아서 결정하고 옷을 사가니 입혀 보지도 않고 바꿔오란다. 13세 사이즈 사 오라 했는데, 11세를 사 오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그날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살며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몇몇 되는데 그날이 딱 그런 순간이었나 보다. 갑질이라면 갑질일 수도 있겠다. 남편을 사랑하면서 살기로 결심한 내게 돌아온 대가다. 오늘 하루만 입어도 좋으니 난 바꾸러 가진 못하겠다고 했었어야 했는데, 남편의 누나라는 이유로 입을 닫았다. 돌이켜 보면 비겁함 뿐이었다. 나보다 더 살은 이가, 나보다 돈 많은 이가 지혜롭고 행복하리라 여긴 어리석음의 결과였다.
A에게 입혀보지도 못한 채 고분고분 백화점으로 향하는 길에서 내 미래를 보았다. 그녀에게 휘둘리며 살아갈 남편도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화면에 박힌 글자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이 나를 어찌할 수 없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리도 무서운지.
적어도 결혼 직후였던 그 당시 S는 말이라도 예쁘게 했던 것 같다.
"네가 사준 옷인데 한 철 입고 못 입으면 아쉽잖아."
그래서, 백화점을 다시 가게 만들었다고? 말이라도 곱게 하던 시절은 1년이 채 못 채웠었더랬다.
마음이 앙상한 S와 다른 삶을 살겠다면 S의 집 머무실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지. 문전 박대를 하던, 인사를 씹던 S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수술을 잘 마치신 어머니의 쾌차를 비는 마음을 표하러 가야 한다.
남편을 바라본다. 그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이해할 수 있는 깜냥이 되지 못한다. 벌써 그는 S의 부덕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어머니는 동생이 누나에게 사과해야지 하며 그에게 S를 향해 먼저 고개 숙임이길 종용하시기 때문이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들에게 고마워하신다. S가 저리 된 것은 됨됨이가 못된 S의 시어머니 때문이라고 내게 못 박아 말씀하신다.
내 새끼들은 다 착해. 어머니의 자식들은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건 어머니의 성적표나 다르지 않아 자식이 아닌 며느리 앞에서 어머니는 한껏 몸을 부풀리신다. 그녀의 허리 통증도, S와의 불화도 며느리, 즉 남에게 내비칠 마음이 1도 없다.
가족이지만 가족은 아니다. 여성으로 보이지만 여성적으로 살고 싶진 않다. 자식을 내 것인양 쥐고 흔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S네 집으로 가볍게 향할 것이다. 받지 않는 인사를 먼저 건네고, 나를 건너뛰는 시선을 붙잡아 웃으며 인사할 것이다. 난 그대와는 다르게 살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뿍 담아내야지.
그녀가 나를 뭉갠다면 묵묵히 바라보다 돌아올 것이다. 이 자리로 돌아와 그녀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안쓰러워해야겠다. 남편이 의사이며, 딸이 아이비리그 재학 중이라 남부러울 게 없을 듯한 어느 중년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고 왔다 생각하자. 나보다 훨씬 가진 것이 많아 보이는 이가 나로 인해 신경이 거슬린다면 그 또한 기이한 체험이겠다. 글로 도 닦은 내공을 뽐내볼 겸 선선히 그녀를 만나러 가봐야겠다. 출판한 책은 없지만, 마음은 작가다. 서점에 내 이름 박힌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아도 나는 글을 찾는다. 시댁 욕도, 남편에 대한 불만도, 아이들에 대한 근심도 머리와 가슴으로 소화되어 손으로 흘러나오니 이만하면 꽤나 괜찮은 삶인 편이다.
S도 느낄 테지! 자랑질하러 기필코 가야겠다. S에게로의 방문은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는 물론이고, 사심 가득한 문안 인사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