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국 대학 합격 소식 자랑은 전화로 합시다.

by 호박씨

어떤 삶이든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 어떤 부모로서 살더라도 나름의 고통은 있는 법이다. 만약 진짜 부모인 순간이 삶 속에 있었다면, 자식 가진 부모에게 우리 아이가 잘 된 바를 자랑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아이의 성과를 뽐내고 싶다면, 그 결론은 성과에 이른 과정을 공유하여 그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되고 나서 그리고 부모 됨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무서워지는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쓴다. 친한 사람, 주변인들, 인연을 맺는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착각에도 종종 빠진다.


합격의 시즌이다. 국제학교를 다녔던 주변 인들과 주재원 자녀로서 자란 아이들 중에서는 일찌감치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고, 8월은 그들의 새로운 출발이 바야흐로 시작하는 달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1년 전부터 아니 3년 전부터 부단히 시작되었었고, 운 좋음이 이르게 온다면 아이비리그도 진학한다. 물론 아이비리그가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운이 나쁜 건 아니다. 대학이 다는 아니라는 걸 우린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카톡이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 만나는 S언니의 딸은 1월부터 이른 재수에 들어갔다. 재수학원 들어가고 나서야 1년 만에 S언니 그리고 그녀와 함께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S언니의 얼굴은 원래도 조막만 했는데, 반쪽이 되어버렸다. 인서울 여대쯤이야 외국에서 국제학교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네이티브인 아이들의 경우 그냥도 가겠다고 생각한다. 자식 가진 주재원이라면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런 꿈을 꾸는 게 사실이니까.

아이가 전부이지 않은 엄마가 어디 있겠냐만은, S언니가 얼마나 자식으로 가득한 엄마인지 아는 나로선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저런 얼굴색이 될 때까진 11월부터 , 아니 큰 아이 고3 내내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싶었다. 언니가 1년 동안 만나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알아서 찾아갈걸 싶었다. 뭔 힘이 됐겠냐만은 밥이라도 한 끼 사 먹였었더라면 이리 마음이 아프진 않았겠다 싶다.

그녀도 S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모임 단 6개월 만에 그녀가 연속해서 올리는 카톡창의 사진은 잔인하다. 말 그대로 잔인하다. 때 마침 그녀의 생일이라 아들의 해외 공대 입학 소식과 함께 올라온 그녀의 생일맞이 사진을 보니 기가 막혔다.

'D 동네 최고의 돼지 엄마 **씨, 두 아들 다 해외 명문대를 보낸 우리 집의 실세 **씨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녀의 두 아들은 플랫 카드를 들고 시원한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한국의 인 서울 공대도 아니고, 해외 유명 공대에 둘째까지 입학시켰으니 그녀는 돼지 엄마가 맞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성공한 입시 결과를 맞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을 부지런히 도 올렸다.




얼마 전부터 더 이상 어디 가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놀러 갔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있는 나와 오랜 인연들이 모두 들여다보니 카카오 대문창에는 어느 좋은 곳을 갔으며, 가서 어떤 멋지고 비싼 맛난 것을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올리지 않는다.

아들의 고립과 단절이 길어지고, 두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1박 2일의 외출은커녕 네 식구가 얼굴 맞대고 외식하는 시간 빼기 조차 쉽지 않은 시간들이다. 아들을 데리고 나가기도 쉽지 않고 데리고 나갔다간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거나, 에어팟을 끼고 있는 아들과 투덕 거리기 바빠 외출이 망쳐진 적도 많았다. 딸이 또래 아이들이 어디 가서 뭘 먹었다더라, 해외 어딜 갔다더라 하는 통에 딴에는 괜찮은 곳을 데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가족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나를 진정시켜야만 하는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생각 없이 올리는 사진과 장소, 먹거리들로 상처 입고 상처 입힌다. 자랑할 뜻은 많지 않고, 그저 내 자식이 합격했다는 사실을 아는 모든 이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올리는 사진들일 수도 있다. 단순히 그렇게 이해하고 지나가면 된다.

어디 내 마음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독일 생활 5년 내내,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영어에 돈 한 푼 안 들이고 얘들 영어를 만들어갔다. 누군가 다가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하냐고 물으면, 며칠을 두고두고 만나 내가 했던 방법들에 대해서 알려주길 반복하고, 행동 안을 알려주니라 바빴다. 하나 알려주는 방법들은 고통과 인내, 시간이 필요하였기에 사실 그 누구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거나 변화하진 못했다.

가볍게 살아야겠다 싶다. 오지랖도 적당히 부리자 싶다. 그리하면 덜 상처 입으려나 싶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인연이 생각 없는 말을 내뱉고, 뜻 없는 사진들을 올릴 때면, 이런 인연에 시간을 들인 나를 탓하곤 하는데 이런 생각도 이젠 그만하고 싶다. 그럴 수도 있지 싶다. 그런 사진을 올리는 그 인연에겐 남모르는 눈물과 이불킥, 사연이 있을 테지. 그저 말하지 않을 뿐, 그저 감추고 싶을 뿐일 게다. 잘 사는 척하다 보면 언젠간 남을 부러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막연히 추측하는 그런 상태일 것이라 여기고 말자 싶다.

그래도, 합격 자랑은 전화로 말로만 하자. 부디 사진과 문자로는 남기지 않길 바란다. 부탁합니다, 주재원 사모님들. 서로에 대한 배려, 시급합니다. 아시잖아요, 다들?


사진: UnsplashMarcus Ganahl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질투와 질책 사이의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