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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질책 사이의 야구

by 호박씨

" 엄마, 나 힘들어서 그만할래."

독일이어도 8월은 덥다. 90도의 각도로 고동빛의 머리를 비춰대는 유럽의 태양을 즐기는 야구 여름 캠프라니. 나의 로망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중인데 아들은 이런 내 속과는 상관없이 겨우겨우 가고 있는 듯해 보인다. 미안하게끔....

게다가 왜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한 묘사도 장난 아니다. 작가아들 아니랄까 봐, 글을 잘 쓰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아이. 이것이 이 아이의 장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관심은 아이의 단점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 배트에 공이 맞으면 배트에 진동이 오는데 손바닥이 아플 지경이야. 공 무서워!"

야구하는 애가 공이 무섭다니, 제대로 억지로 보낸 셈이다.



대만인, 베트남계 미국인, 한국인의 조합은 꿀이다. 전 프랑크푸르트, 헤센 지역에 대만인을 찾는다면 두 자릿수 미만일 테다. 속이 좁아터진 미국인들은 부모는 베트남인이지만 미국의 분유를 먹고 자랐으며 베트남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이를 미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에서 인구밀도가 꽤나 높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청한 나, 이들과 함께 한다.

겨울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한가운데 우리 셋은 결의를 다지기 위해 숲에 모였다. 방학은 독박 양육의 시작이다. 돈 많은 대만인 Mandy는 대만으로 돌아가 고국 체험이라는 양육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아이 셋에 외벌이 아일랜드 남편을 둔 베트남계 미국인 Trang은 변변한 겨울방학 대책 없이 겨울을 견딜 것이다. 그녀의 생활력과 인내심은 한국인인 내가 당해 낼 수 없는 수준이다.

나? 질투심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중이다. 가을이면 오버오젤 동네 리그가 한창이라 Mandy도 Trang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주말을 보냈다. 스포츠 천재인 Mandy의 아들은 테니스와 농구 리그에서 에이스다. 헤센주 테니스 주니어 대표다. 농구는 밧홈북시 소속인데 농구 경기가 헤센주 여기저기서 열리다 보니 라이드 하기에 바쁘다.

Trang의 아들은 그녀를 닮아 체구가 작고 다부지다. 발이 어찌나 빠른지, 동네 오버오젤 축구 대회에 나갔다가 옆동네인 쾨니히슈타인 감독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Trang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렸겠다. 안 그래도 오버오젤 축구팀 감독이 아들을 제대로 기용하고 있지 않는 듯하여 매 주말마다 축구장에 나가 싸움닭처럼 감독을 지키고 쳐다보고 있는 판이니까.


순발력을 요구하거나, 공을 다루는 능력을 요구하는 흔히 한국에서의 체육시간이 고역이었다. 느려도 보통 느린 게 아니었고 공을 다루는 데 서툰 정도는 상상 초월이었다. 공부처럼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쿠키틀로 찍어낸 진저브레드맨처럼 스포츠에 관해선 나와 정확하게 닮은 아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거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내 마음대로 안되면서, 남자니까 서양이니까 여기서 어떻게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날의 숲은 레드카펫은 저리 가라 할 만큼 폭신했다. 수북이 쌓인 갖가지 색의 낙엽들 덕분에 자연조명이 턱 밑을 비춰줘 아줌마들, 우리 셋다 여배우 같았다. 적당히 떨어진 잎들 덕에 붉은 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와서 산의 공기는 반짝이는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광경도 내겐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내게 기쁠 일은 저들의 아들을 이기고 내 아들도 뭐든 할 줄 안다고 한마디 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 밧홈북에 야구팀이 있더라고. 거기 갈 거야."

예의 바른 두 아줌마들은 동북아이들에게 야구는 유리하다며 잘됬다고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 내 속도 모르고, 저리 티 없이 즐거워해주니 여기서 제일 저질인 인간은 바로 나다. 진심으로 아들이 즐길 만한 운동 하나쯤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야구로 데려간다는 건 30% 정도다. 그녀의 아들들에 대한 30%의 시기와 날 뺴닮았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30%가 야구 선택으로 간 포트폴리오라는 사실은 오직 나만 아는 계산이다.





야구 캠프는 일주일 동안 지속됐다. 억지로 보내니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 삼각김밥, 그냥 김밥, 유부초밥을 번갈아 해서 보내는 지극 정성의 시간을 아침마다 보냈다. 기도하는 기분으로 점심을 쌌달까? 제발 안 간단 소리만 하지 말아 줄래. 또는 갑자기 야구하기를 즐기는 마음을 생겨나길 빌면서 도시락을 챙겼다.

" 엄마, 나만 이상한 거 싸와서 먹기 싫어."

손도 대지 않은 도시락 통은 마치 엄마의 은밀한 기도를 거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안 먹었냐고 다그치자, 아들이 실토했다. 3학년이었지만 과묵한 아들이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기분인지 내게 묘사할 수 있는 아이다. 그래, 내 앞에 서있는 저 작은 존재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이다.

싸 보낸 밥 먹고, 한국은 밥심이라고 독일애들 다 부숴버리라며 보낸 도시락은 그렇게 사라지고, 그다음 날부터는 햄을 우역우역 집어넣은 샌드위치를 쌌다. 아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질투를 담아서 말이다.

나를 질책할 수는 없으니 아들의 등을 밀어 보냈다. 손에는 배트를 들려 보냈지. 저녁 식탁에서 아들은 손에 느껴지는 배트의 진동을 묘사하니라 바빴다.

" 머리끝까지 울린다니까."

만화로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림도 제법 그리는 아들이니까.

내 질투와 집착의 사이엔 아이가 있었다. 나와 닮은 듯해 답답하고 거울 보는 듯해 마주하기 두려웠던 아이는 가을 독일 숲처럼 반짝 거리는 재능이 넘치는 존재인 것을 반십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아간다.


사진: UnsplashChris C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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