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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어떻게 씻으세요?

by 호박씨

"더러워."

시댁 식구들과 만나면서 닥친 말들은 더러워가 주를 이루었다. 어머니를 포함한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 넷에게 나는 털털함이 아닌, 더러움으로 묘사되었는데 직접적으로 더럽단 소리를 뱉은 이들은 그중 둘 정도다.

평가를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곳은 주방이다. 쌀 씻기란 밥상 차리기에 시작이다. 허영만 작' 식객'에서 밥상의 주인은 밥이라 했지. 어머니의 주방에서 쌀 씻기는 수돗물이 아닌 정수기물로 해야 한다. 뽀얀 쌀뜨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 바락바락 문질러 2번 씻어내면 그제야 먹을 수 있는 쌀이 된다. 이해불가. 씻는다고 농약이 헹궈질까 싶고, 뽀얀 쌀뜨물은 영양 가득으로 내 눈에 보여 아까웠다. 쌀을 세탁하듯 바락바락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가 옆에 있으면 그리하고, 없으면 내 맘대로 수돗물에 티만 헹궈내어 밥을 안쳤다.

들키는 날이면 더럽단 비난이 쏟아졌다. 서열의 말단 주제에 왜 그렇게 씻어야 하냐고 물었다간 본전도 못 건질게 분명하다. '왜'에 대한 답을 그들도 줄 수 없으니까. 다만 내가 붙들어야 매달린 바는 그들이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생각이지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그들의 평가로부터 나를 분리해 내는 일은 쉽진 않았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필요한 일이다.





오늘도 흐르는 말에 쌀을 헹궈낸다. 주부습진이 심해 손바닥이 간지럽고 긁다 피가 터지는 손 대신 밥숟가락으로 3바퀴 정도 휘젓는다. 그녀가 알려준 방법이다.


국제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얘들 엄마는 티가 난다. 한국 패션과 한국 머리 덕분이다. 워킹맘이라면 잘 세팅된 머리라 눈에 띄고, 전업맘이라면 질끈 묶은 머리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독일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큼지막한 브랜드의 아웃도어가 박힌 롱 패딩도 아니고 명품 가방도 들고 있지 않는 그녀가 내내 궁금했다. 한국 사람 맞겠지?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 같은 저 라면 머리인데, 한국 여자라고? 샤넬은커녕 아무나 브랜드 가방을 들고 있는 그녀의 눈은 어찌 저렇게 반짝거릴 수 있을까? 주변 엄마들과 대화하는 내내 그녀의 얼굴은 우중충한 겨울의 독일을 물리치는 햇빛처럼 생명력이 가득하다.


Saturday Sports는 부모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골프 치러 나간 한국 아빠 대신, 한국 엄마들이 얘들을 데리고 와 삼삼오오 체육관내 관람석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코트에서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는 미국아빠들이다. 코치를 돕는 동양인 아빠가 눈에 띈다. 남편이 짬이 난다면 재능기부하는 미국인들에게 면 좀 새우도록 assistant 코치, 부코치역할을 해주었으면 싶다. 운동이 잼병이니, 수업이 끝나고 진행하는 밑정리나 간식 담당이라도 해본다. 내 딴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다. 동양인 아빠 누구 남편인지 부럽네, 부러워.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그렇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하는 일 없이 미국인들이 베푸는 기회를 누리는 한국인이 되기 싫어 웬만하면 모여 앉은 한국 엄마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10살은 많은 대만엄마 M의 늦둥이 William은 농구천재라 그녀도 관람석을 지키고 앉아있다. " 호박씨!" 반가워하는 그녀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한국 엄마들이 모여 앉은 곁에 앉아 있어 입만 띠지 않으면 영락없이 한국인이다. 나와 다니는 통해 교내 한국인들이 그녀에게 한국말을 걸곤 했으니까, 국제학교의 유일한 대만인인 그녀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 그날도 외로이 앉은 M에게 다가가 앉아 말동무를 해주리라. 주말까지 영어 하기 귀찮은데.....

그 순간, M의 앞 단 좌석에 앉은 라면머리의 그녀가 내게 말을 건다.

" 저기 농구하는 H엄마 맞죠? 어쩜 저렇게 야무져요? 부러워요."

그녀는 승자다. 부럽단 말을 건넬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좁디좁은 주재원 사회에서 첫 만남에 날 보고 부럽다, 좋겠다는 이는 그녀가 처음이다. 게다가 딸아이 H의 농구 교실 부코치는 그녀의 남편이다. 하나뿐인 그녀의 아들은 아빠가 부코치인 농구교실에 시간을 보내는 중인 거다. 통통해 더욱 짤막해 보이는 아들이 서툴게 농구공을 튀기고 있을 망정, 아빠와 클래스를 즐기고 있고 엄마는 이를 직관하고 있는 이 가족 부러워 미치겠다. 우리 딸이 농구를 아무리 잘하면 뭐 하겠는가? 이 순간을 함께하고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누군가가 오직 나뿐이라면 말이다. 7살 딸아이가 키즈용 낮은 골대에 3점 슛을 날린다고 해도, 마음 담아 손바닥을 마주쳐줄 이는 없다. 난 하릴없이 셀프로 박수를 쳐야겠지.




루프트한자, 독일의 대한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 재직 중이었다. 국제학교 가까이 집을 짓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각종 학교 자원봉사로 아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듯 학교에 나타났다. 학교에 보조 선생님으로 자리를 얻어 자원봉사나 Bookstore 매니저 일로 학교를 출입하면 그를 마주치곤 했다. 그녀보다 그와 더 자주 마주친 셈이었다.

느린 아이를 알아볼 눈썰미가 내겐 장착되어 있다.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무엇이든 천천히 해내는 아이의 엄마는 마치 자신이 느린냥 주변 눈치를 보고 다른 아이 엄마들에게 잘못이라도 저지른냥 약자처럼 행동한다. 그녀의 남편은 달랐다. 가끔 그에게 말을 거는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정보는 1도 없다는 듯 말을 섞지 않았다. 학교에서 만나는 그의 시선은 아들을 쫒기에 바빴다. 보조 교사라는 그의 업만으로 그는 충분해 보여 그를 보며 나를 반성하곤 했다.

" 한국 사람이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하지!"

" 세상엔 느린 아이도, 빠른 아이도 있는 거지!"

절제된 그의 행동에서 정제된 마음을 느꼈다면 너무 멀리간 걸까?

곧 한국으로 귀임하게 될 거란 이야기를 주변 몇에게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일찌감치 연락을 했다. 항공사 일도 바쁠 터인데, 비행이 없는 날 점심을 나와 보내겠단다. 그녀의 남편까지 함께 된 이탈리아 식당에서의 식사를 나무랄 데 없이 맛있었다. 그 시간의 주인공은 그녀였다. 1달 후면 떠나야 하고 언제 다시 이 매력적인 부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쉬웠다.


리소토가 나오자, 흘깃 와이프 쪽을 가리키며 그녀의 남편이 자리를 빌려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 쌀을 빨래한다니까요."

끼니 담당은 그녀의 남편인데, 쉬는 날 가끔 그녀가 밥 짓기에 도전하나 보다. 책에 쓰인 데로 온라인이 시키는 데로 깨끗이 쌀을 씻어내는 그녀를 설득시키고 싶은가 보다. 예상이 된다. 나의 떠남이 아쉬워 그녀가 가지고 나온 과자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먹이던 비싼 유기농 쌀과자였다. 부드럽고 밍밍한 과자를 여전히 즐기는 그녀의 아들 취향을 엿볼 수 있었도, 가끔 만나는 아들을 여전히도 아기로 생각하는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빨아도 빨아도 계속 뽀얀 물이 나오는 쌀은 그녀로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대 여섯 번은 씻고도 남을 일이지.

" 숟가락으로 씻어요."

배시시 그녀가 웃는다.

오늘도 숟가락으로 쌀을 젓으며 그녀를 떠올린다. 아이를 돌보는 남편과 독일에 집 한 채를 지을 돈과 외국계항공사를 다니던 그녀가 부럽다. 내가 부럽다며 환하게 햇살처럼 말하던 그녀를 밥 하며 떠올린다.




심장마비였다고만 전해진다. 1번지라고 불리던 나의 누추한 아파트에 3층에 그녀의 남편과 아들만 이사 오고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무엇 때문에 세상을 급하게 떠났는지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내가 독일을 떠나고 1년 후의 일였단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 주재원 와이프들은 추측만 했다. 나 역시 그리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이였다면 비행을 했었겠냐고 듣는 이 없는 질문을 뱉을 뿐이다.

학교가 코 앞이란 메리트를 빼고 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아파트였다. 한강가 한국의 초기 아파트처럼 낮은 건물은 곰팡이가 피고, 방음이라곤 1도 안 되는 집이지만 단 한 가지, 한인들이 모여산 다는 점과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란 이유로 독일 집주인은 많이도 받아 챙겼다.

그녀와 함께 짓던 집이 완성되었다 해도 들어갈 수 없을 런지도 모르겠다. 엄마 잃은 아이부터 챙겨야겠다는 마음에, 학교 앞으로 이사를 왔을 것이다.

7시여도 해가 지지 않아, 남편도 돌아오지 않아 알코올 프리 맥주를 얼어붙을 만큼 시원하게 만들어 아래 위층 벨을 울렸다. 공동 주차장에 캠핑 의자 꺼내두고 한잔 하자고, 같은 건물 엄마들에게 오늘의 추억을 만들자며 계단을 오르내렸었다. 그 건물에서 그녀의 남편은 반쪽이 된 얼굴로 아이와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비행이 있으면 명동 플라자 호텔에 머물곤 한다는 그녀의 말에, 서울도 괜찮은 이태리 식당이 많으니 귀임을 빌미로 그녀가 쏜 리소토를 갚을 날을 약속했다. 해사하게 그녀가 웃었다. 갚을 길이 없어졌다. 이번 생에서 갚을 일이 없는 바가 이것뿐이겠는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에게 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주리라. 하루살이처럼 살리라 마음먹어본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오늘도 쌀을 씻는다. 엄마 밥, 울 마누라 밥을 외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건 다해줄 테다. 부칠 곳 없는 편지는 쓰지 않고 싶다. 읽히지 못할 글도 쓰고 싶지 않다. 오늘을 잘 살아내야지. 하루를 살아도 나, 호박씨로 살아야지.


사진: Unsplashyang lou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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