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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업은 작가

by 호박씨

당신의 업은 무엇입니까 묻는다면 삶을 읽는다라고 답할 테다. 글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살듯이 밥 먹듯이, 잠자듯이 쓴다고 할 테다.

함께 글쓰기에 불을 붙인 이들은 코로나의 시작과 동시에 온라인 세상으로 모여든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집 밖에 나가야 내가 선명해지고 붉음 옆에서야 푸름은 제 빛을 분명하게 하듯 스스로를 잃는 순간 앞에서 해야 하는 선택은 타인을 만남이다. 여성, 엄마, 딸, 며느리라는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나면 내가 더 행복한가 네가 더 행복한가 더듬어 본다. 지금 되돌이켜보면 유치한 그 사고회로는 성숙한 결과를 낳는다. 우린 모두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는 걸 확인한다.

글이구나 싶었다. 의도하지 않은 자랑질, 의도했지만 왜곡되는 선의가 무지개색으로 빛나려면 글이라는 프리즘이 긴요했다. 글로 만나고 얼굴을 접하고 통화한 이와의 접촉은 특별하다. 키보드 앞에서 투명해지듯 서로의 글을 읽었던 사이는 진실함 그 자체다.



무슨 수로 글을 지속하냐고 묻는다면 글은 내게 숨과 같아 없으면 이제 살기 힘들다 답한다. 곁에서 글을 쓰던 이들은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글쓰기를 멈추길 대부분이다. 살기 바빠서, 먹고살기 급급해서라고 한다. 대답하는 그들의 눈빛이 흐려지면 마음 한편이 아린다.

타인 가운데서 색이 짙어지던 나는 그들과 어우러져 무지개가 되는 시간을 맛볼 수 있었다. 짜릿함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면서 품이 넉넉해지긴커녕 한없이 이기적으로 돌변한다. 삶이 이기고 지는 게임이고 내가 죽든, 네가 죽든 둘 중 하나다 싶은 동물적 본능만이 가득할 만큼 팍팍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글 없이 본능 하나만 명품 백에 넣고 출근길에 오른다. 어느새 그런 나라는 엄마, 이 존재 때문에 세상은 더 이기적으로 변한다. 악순환 그 자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업은 작가다. 삶은 기록으로 자취를 남기게 마련이다. 이건희 컬렉션 같은 자취를 남기는 이도 있지만, 무연고로 사후 며칠 후에나 발견되는 기록도 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탐독했던 박완서 작가의 고운 하드커버도 있지만,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의 이순자 작가처럼 유고작이기도 하다. 사는 동안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기록일지언정 그 자취가 가지는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여름이 드디어 저물고 바닥에 널린 매미시체들을 부지런히 나르는 개미의 행위다. 글을 쓰는 행위란 최선을 다해 이기적으로 살아 이타로 사라지는 생명 그 자체다. 겨우 열 너덧개의 좋아요를 위해 올리는 브런치 글이 아니듯 당신의 업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것으로 영원히 남을 리 없다. 우리 한 명 한 명은 삶을 잣아내는 작가다. 어떤 기록을 원하는지는 당신의 자유다. 내겐 글이다. 내게 자유의 칼춤은 글쓰기다. 작고 나이 든 한국 여성이 휘두를 수 있는 최고 효율의 칼이다. 나의 업은 작가다.



https://unsplash.com/ko/@masamas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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