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바라봐도 눈이 마주쳐도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왔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건 생각보다 단출할 수도 있다. 부부로 살다 보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숨 막히는 날도 있다. 내 인생이 이 모양인 건 그 무엇도 아닌 오롯이 배우자 때문인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지척에서 그녀가 내쉬는 공기로 호흡한다는 자체로도 불쾌해 그녀가 집에 오면 나가고 그가 나가면 그녀가 들어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살다 보면, 그 순간들이 영원하기만 할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 다른 공간에서 지내기를 약속하게 되거나 부부라는 허울만 걸쳤을 뿐인 관계도 세상엔 존재한다.
16살, 14살인 아이들 그리고 일하는 아내와 50이 눈앞인 가장 이 구성원들이 주말마다 모이기란 쉽지 않다. 청계산 입구역에 주차를 하고 청계산을 오르는 시늉만 하고 내려와 모두의 입에 맞는 저녁 한 끼를 함께하는 이벤트를 한 번 시도하기란 쉽지만, 매주 거르지 않고 주례행사로 거듭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작가라는 업을 가진 이는 의미부여를 기꺼이 능히 해낸다.
차도 사람도 빽빽하여 팔 한 번 들어 올릴 고개 한번 젖힐 공간 없는 강남과 여의도 그리고 나로 인해 더해진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삶에서 우린 우리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여전히 코로나적인 삶에 물들어 히코노모리가 된 아들과 대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우리 부부의 관계 그리고 이제야 스스로를 치유하며 소비의 시티라이프 속으로 빠져드는 어린 딸. 우리에겐 숲이 필요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이 필요하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우릴 채워주는 지구가 긴요하다. 한 줌의 시간으로 매겨지는 성적과 월급 명세서가 가족들을 등급 매기는 꼴이라니, 더는 참을 수 없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
" 이거 먹다간 프랜차이즈 피자는 못 먹겠네."
양재역 블록을 지나가는 순간부터 숨이 트이기 시작하고 양재 시민의 숲 매헌역 블록에 이르면 식욕이 돋는다. 진짜다.
남편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을 수 없던 시간을 지나 금요일 저녁만 되면 주말 청계산 등반( 20여분 걸어 오르는지라 등반이라 칭하기 민망하다.) 후 뭘 사 먹을까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신혼 초 남편이 할 수 있는 외식은 칼국수였다. 그가 부산 본가 부모님 밑에서 살면서 어린 시절 맛보았던 손의 기운이 스민 음식, 손칼국수였다.
받은 월급을 탕진해 가며 서울 맛집을 탐방해 가던 30의 호박씨에겐 그의 소박하다 못해 구성지기까지 한 취향이 싫었더랬다. 그런 그는 이제 호박씨 남편, 아니 호박씨 가정의 구성원이 되었는지 혼자 프랜차이즈 피자 한판이 뚝딱이다. 피자는 한 조각도 간신히 먹어내던 남자친구는 이제 두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앉아 바질 피자 같은 하드코어의 메뉴를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다.
다른 피자는 못 먹겠다며 가게를 나서면서도 연신 입맛을 다시는 그의 배는 두툼하다. 다른 남자들 절반의 두께를 가진 종이인간 같던 그가 내 눈엔 보담아 챙겨 먹여줘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밥 먹을 수가 없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모두 훔치고 나서야 그가 식사를 마친 식탁에 앉아 배를 간신히 채우던 날도 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양재동을 걸어가는 남편의 옆모습이 좋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 조그만 피자집을 알아내서 대견하다고 중얼거리는 그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인맥이 넓지 않은 남편이다. 그와 10여 년 넘게 만난 이들이 이혼을 하고 암에 걸린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공황장애와 불안증으로 고통받는다.
그리하여, 한 조각에 8000 원하는 맛집 피자를 그와 함께하고 눈을 마주치며 또 와야겠다고 약속하는 오늘은 소중해서 박제하지 않고선 못 배기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밀가루만 먹어대는 아들과 늘 첫째만 맞춰주는 탓에 관심에 주려하는 딸이 오늘 나의 이 순간에 태그를 달아준다. 행복. 세게 움켜쥐면 바스러져버리는 단어라 말하기를 멈추고 이 시간을 찬찬히 음미한다. 두 아이들의 대화, 꼬맹이가 된 듯 아빠에게 거는 장난, 이 중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다. 영원하지도 않을 예정이라 오롯이 기억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