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애마 아우디
아파트 현관 앞 주차장에 하얀 테슬라가 닭날개처럼 차문을 위로 들어 올린 채 열려 있다. SUV 모델이라 날아오르려고 준비하는 하얀 익룡 같아 보인다. 테슬라 주인인 젊은 애 엄마의 표정이 꽤나 자랑스러운 눈치다.
나의 아우디를 만났을 때 나의 표정도 저랬겠지? 천하의 테슬라에게 아우디 따위를 비교하다니 지나가던 머스크가 코웃음 칠 소리다. 아우디 전기차 모델 E-tron 나온 상황에서 고작 A3 정도 몰아본 걸 가지고 먼 자랑이냐 할 수도 있겠다. 자랑은 아니고, 내가 그를 만나던 날을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독일에 도착하니 우리 집은 숲마을이라 차 없이는 이동이 쉽지 않았다. 물론 집 길건에는 U-bahn,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들어가는 국철이 다니고, 그 국철 정류장 10m 옆에는 버스 정류소가 있다. 동네가 워낙 숲마을이다 보니 출퇴근 시간인 아침, 저녁 7시부터 9시 이외의 시간에는 배차 간격이 1시간에 1대 정도였다. 그 또한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통과하여 다른 숲마을로 가는 경우들이어서 차로 10분 거리의 Bad Homburg밧홈북이나 Kronberg크론벡등으로 이동하려면 국철을 몇 번씩이나 갈아타고 40여분을 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 보러 가는 것도 자차가 필수다. 배송이라는 것은 이제 막 시작한 아마존뿐이었으며, 신선식품을 비롯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마트들은 배달에는 문외한인 곳이 독일이다. 독일의 냉장고 또한 양문형 따위는 보기 힘든데 그 원인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먹을 만큼만 장을 봐서 냉장고에 보관하여 먹는 독일인들의 식재료 소비습관에 따른 것이다. 냉장고보다는 냉동고만 사는 경우가 오히려 잦았다. 냉동 채소나 냉동 빵, 냉동 간편 조리 용품들이 워낙 다양해서 장 보러 가기 귀찮다면 냉동고만 쟁여 놓아도 장 보러 가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냉동 제품들은 무게가 꽤 되니 자주 장 보러 가기 싫어서 냉동제품을 쟁여 놓려고 한다면 차는 마트 장보기에 더 필수인 상황이다.
그리하여 주중에는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로 차를 살피고, 주말에는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중고차를 살펴보기를 한 달여였다. 독일은 중고차 매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새 차 딜러가 중고차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현대차 매장에 가면 새 차 매장 앞 넓은 주차 공간에 중고차들이 가득 주차되어있다. 차들 전면 유리에는 연식과 수동 여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차의 가격이 A4용지로 깔끔하게 붙어 있다.
중고차를 처분할 때에게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차 브랜드 매장에 연락을 해서 매도하면 된다. 중고차를 매입한 매장은 TUV라고 불리는 국가 공인 차량 점검 시스템을 통해 차의 성능에 대한 종합적 테스트를 차에 적용해둔다. 중고차를 매도할 때 테스트의 정보 투명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고차 구입과 새 차 구입의 한 끗 차이, 즉 오직 가격 차뿐이다. 선호하는 브랜드의 차 매장을 방문하여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의 새 차과 헌 차를 살펴보고 가격과 사양을 비교해보면 된다. 간결한 중고차 유통 절차이라 하겠다. 대신에 대박 득템 따위의 기회는 없다. 어떤 중고차가 몹시 싸다면 사고차량이다. 독일은 홍수가 드물고 날씨 변화가 한국보다 적어 침수 차량은 거의 없으니 대박 세일이란 말은 대부분 사고 경험이 있는 차량이다.
그나저나 나는 아우디가 좋다. 그 이름의 생김새와 간결한 로고가 미학적으로 좋다. 폭스바겐 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 Volks의 차 Wagen라는 뜻이다. 나치가 국민 모두가 이런 차 한 대 쯤은 가지고 살게 해 주겠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지라 한국어로는 국민 보급형 차다. 이러한 브랜드명의 의미를 모르면 모를까 이미 어감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폭스바겐은 왠지 별로다. 폭스바겐이 아우디를 인수해서 이 두 차는 옷만 바꿔 입은 쌍둥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우디가 좋다.
남편이 생각하는 예산, 만 5천 유로 한화로 2000천만 원 정도에 적합한 아우디 모델은 그 당시 2010년 산 A3였다. 온라인 중고차 사이트인 mobile.de를 눈이 빠지게 필터링하고 검색한 결과, 한 시간 거리의 시골 마을, 나의 숲마을보다 더 외곽인 Bad Camberg의 아우디 대리점에 딱 맞는 아우디가 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차가 쉬지 않고 아우토반을 여섯, 일곱 시간쯤 내달려서 가야 하는 함부르크 Hamburg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더 멀리는 덴마크 국경 인근의 독일 끝 뤼벡 Lubek에 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주재 오자마자 밤샘과 접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남편은 하루도 일을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2배의 돈을 주고 새 차를 산다고 한다면 집 주변 20분 거리 안에 아우디 매장은 널려있다. 또는 예산에 맞는 저렴한 새 폭스바겐을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중요한 것은 예산,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우디다. 이 둘을 모두 충족하는 차가 1시간 거리 안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 부부에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가성이 중요한 우리 남편, 상황이 난조다. 차를 가지러 가기로 토요일, 그 전날 새벽 1시까지 접대를 하고 뻗어 자고 있다. 술냄새가 풀풀 나는 안방에 있는 그를 깨우려니 참으로 안됐다. 그래도 1시간 거리라고 했으니, 독일에서의 첫 자산거래이니 약속 두 시간 전에는 깨워야 할 것 같다. 남편의 벌건 눈을 보니 숙취가 잔뜩 남아있다. 두 아이들 채비를 하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독일에 신용이 없기 때문에 현금으로 차를 사야 한다. 현금카드, EC 카드를 준비한다. 이천만 원짜리 중고차 현금 거래에 1시간 거리의 주행, 나는 이 두 가지를 해내야 한다. 떨린다.
남편은 눈에 이쑤시개라도 받쳐야 둬야 할 컨디션으로 운전에 나선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 옆자리에서 독일 시골 경치를 한가로이 즐길 나이지만 , 오늘은 낯선 시골길이 두렵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 혼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라도 외워 볼까 하고 창밖을 봐도 좁은 시골길이라 다 거기가 거기 같다. 나의 이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주기엔 남편이 상태가 아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도착한 아우디 매장. 중세 독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작은 시골마을이다. 프랑크푸르트를 서울시내이라고 치면, 숲마을 독일 집은 경기도 일산, 그리고 아우디 대리점이 있는 여기 Bad Camberg는 경기도 이천쯤이라 보면 되겠다. 일대에서 물 좋기로 유명한 곳이라 Bad Camberg의 이름을 딴 생수가 있으니, 물 좋고 쌀 맛난 이천과 딱 어울린다. 차를 가지러 온 것만 아니라면 이 아름다운 경치에서 시골 공기를 만끽하고 있을 터인데 안타깝다.
그때에 내 불안감을 한순간에 잠재우는 A3가 등장한다. 무슬림 중고차 판매원의 뒤를 따라보니 내 차가 이 차다. 말 그대로 까만 야생마 같이 반짝반짝한 그다. 검은색 차였으면 했는데 딱정벌레처럼 새카만 검정차다! 일상생활에서는 튀는 것이라곤 1도 싫은 독일인들에게 차는 검정 또는 회색이다. 물론 세컨드카가 있는 독일인 같은 경우에는 작심하고 빨간색이나 새하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 세컨드카 라이프는 몹시 반전 있는 두 얼굴의 독일인들이 가진 이중생활이니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 우와, 엄마 차 되게 좋다."
" 그렇지? "
자, 진정하고! 이제 이 예쁜 것을 집에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문제다. 어쩌다 우연히 돌멩이 하나를 매머드의 급소에 맞춘 원시인 아줌마가 쓰러져있는 매머드를 보며 하는 고민이다. 이 큰 걸 어찌 끌고 가지?
다행히 내게는 무슬림 딜러가 준 차 키가 있다.
뭔 일이 있어도 내 새끼들은 무사히 집에 도착해야 하니까 남편 차에 태운다.
" 여보, 천천히 몰아야 해. 나 뒤에 쫓아가고 있는 거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지? "
긍정적인 우리 남편, 걱정의 기색이라곤 없는 얼굴이다. 이제 술도 다 깨서 상태 좋다. 그래서 평소처럼 몰고 가면 어쩌나 계속해서 사서 걱정을 하는 나, 이게 호박씨다.
다시 꼬불꼬불한 시골길로 나서는 우리. 남편 차 뒷좌석에 아이들이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이 녀석들 안전벨트 안 하고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안 돼! 핸드폰 어딨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면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부서져라 쥐고 있는 중이니까.
아.... 어쩌나.
그즈음 손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뿌옇게 흐려진다. 이런.... 앞 유리창에 김이 끼기 시작한다.
이건 어떻게 조절하는 거냐고!
2010년식 아우디의 운전석 주변은 암호로 가득하다. 앞 유리창으로 공기를 내보내는 버튼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는 동안 나의 앞 유리창은 점점 더 뿌옇게 되어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자, 핸들에서 손을 하나 떼어본다. 급한 김에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 본다.
한겨울인데 진땀이 뻘뻘 난다.
조금 닦고 나니 남편의 차 뒤꽁무니만 겨우 보인다. 이 상태로 1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암요. 버티고 말고. 세상에서 가장 기초적이며, 원시적인 와이퍼인 손 와이퍼로 난 집에 도착했다. 남편 차 뒤에 딱 붙어서 국도를 부지런히 달려온 결과, 무사히 독일 집 도착이다. 이렇게 독일 집이 좋을 수가 없다. 보눙 앞에 세워져 있는 나의 매머드 아니 아우디가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자, 이 정도면 테슬라보다 아우디를 사랑하는 나의 감정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아우디와 헤어지던 날도 매머드 아줌마는 가관이었다. Bad camberg의 아우디 매장은 내 차의 가격을 가장 후하게 매겨주었다. 디젤 쇼크와 친환경 차량에 대한 정부 지원금으로 나의 디젤차 값은 똥값이 되어버려서 여러 딜러를 견적 비교했지만 역시나 매수했던 딜러에게 매도하는 것이 옳은 답인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또 남편과 Bad camberg로 1시간짜리 국도 여행을 간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다. 남편이 전화를 한다. 여유 있게 핸드폰을 받는 나.
"왜 이리 빨리 가는 거야? "
" 내가 이 국도 전문이잖아."
한 손은 운전대, 한 손은 운전석 쪽 창문을 내린다.
숲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맑은 원시림 같은 바람이 차 안 가득하다.
이게 너와 함께하는 마지막 길이구나. 그동안 수고 많았다. 너도, 나도 말이야.
지구 반대편의 이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살겠다고 악바리처럼 여기저기 너를 끌고 다녔는데, 네가 아니었으면 그 모든 일들이 가능했을까? 고마워. 내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무사히 데려다줘서, 한국 음식이 너무나 그리운 나를 한식당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야구 연습이 끝난, 지독히도 어두운 독일의 밤에 우리 아들 픽업 갈 수 있었던 것도 너 덕분이야. 아우디 그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어본다.
무슬림 딜러이긴 한데 같은 사람은 아니다. 내 차를 기다리고 있던 딜러에게 키를 넘겨주고 나는 까만 내 차를, 이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그를 자꾸 뒤돌아본다.
" 왜 울어? "
" 그냥. 섭섭하네."
" 뭐가? "
" 그냥 다. 지나간 일들이 다 섭섭해."
뭐가 섭섭한 걸까? 2배속으로 감은 비디오테이프처럼 살아온 나의 시간들 안에서 남은 감정은 왜 섭섭함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차를 두고 남편 차에 올라타는데 자꾸만 뒤가 돌아봐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내 속이다.
늘 힘들다고, 내 집도 없는 서울이 내 것인 양 나의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독일 생활을 했던 나는 알고 보면 지극히 나의 자유를 사랑했다. 아우디와 이별하는 순간, 국도를 헤집고 다니던 나의 시간들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