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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Dec 03. 2021

주재원에 대해 오해는 금물

딸이 독일로 주재 나가는 날도 부모님은 어김없이 출근을 하신다. 부산에 계신 시부모님은 아들의 일이라면 알아서 잘하라고 일부로라도 거리를 좀 두고 대하신다. 나라 밖의 일이라면 자신감 없어하시는 두 분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네 식구는 누구의 환송도 없이 인천공항행 셔틀을 탔고, 짐 챙기니라 정신줄 쏙 빼가며 뒤 한번 돌아볼 겨를 없이 출국했다.

그렇게 바라던 주재원이 되었는데, 회사가 능력을  인정한다는 증거를 공식적으로 해준 주재 생활의 첫 시작일이다. 그러니 왠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왠지 우리에 대한 환영 OST 따위가 울려 퍼져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꽃다발이라도 하나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현실은 이러하다. 유럽서 일한 월급이 들어오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입국 가능 한도를 훨씬 뛰어넘은 유로화를 트렁크와 남편과 나의 지갑 속에 나누어 넣어두었다. 법이 지엄한 독일이라 한 달 생활비를 다 뺏길까 봐 무섭지만, 알뜰한 남편에겐 환전 수수료나 카드수수료가 너무나 아까우니 그는 리스크도 기꺼이 짊어진다. 

이민가방에는 쌀과 떡, 김치, 마른반찬, 장조림 등이 들어있다. 이 또한 엄격히 따진다면 불법이다. 세 개의 이민 가방, 네 개의 트렁크 속에는 한 달 동안 짐 없이 살 우리들의 일용한 양식과 약간의 옷이 들어있다. 물론 이불과 냄비도 들어있고 말이다.  메리 포핀스가 우리의 이민가방을 보았다면 엄지를 들어 보였을 것이다. 


이 불법물 투성이의 가방을 어떻게 통관시키느냐가 문제다. 남편이 트렁크에 넣어둔 유로화에 대해서 익히 나에게 일러두었고, 이민가방 속 먹거리들은 내가 쌌으니 간이 더 작은 나는 남편 몫까지 떨고 있는 중이다. 

입국 심사대 앞이다. 남편은 두리번거리다 애를 셋이나 데리고 들어가는 중동계 부부 뒤에 줄을 서본다. 중동 부부들의 짐을 뒤지니라 애를 먹는다면 왠지 우리 짐은 열어보지 않을 것이란 계산인가 보다. 한국말로 작전을 좀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알아듣는 이도 없으니, 그는 입을 꾹 다물고 트렁크를 꼭 쥐고 있다. 그냥 환전 수수료를 내지 이렇게 첫 입국을 불법 밀입국자처럼 하기엔 주재원 가오가 너무 없다 싶어 나는 불만이 많다. 


중동 부부의 트렁크는 몇 되지 않았으며 독일 세관은 트렁크를 모두 열라고 한다. 우리도 저러면 어쩌지? 중동 부부는 딱히 걸릴 만한 것이 없어 무사히 주섬주섬 트렁크를 닫을 수 있다. 부럽다. 

우리 차례. 남편이 태연한 척해보려고 웃지도 무뚝뚝하지도 않게 낮은 목소리로 Hello라는 인사를 세관원에게 건넨다. 그때 딸아이가 외친다. 

" 엄마, 쉬 급해." 

그래? 나는 세관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영어로 물었다. 쉬가 급한 것은 긴급상황이니 말이다. 졸지에 세관원님 안내 데스크님이 되셨다.

화장실을 물으며 둘러보니 세관을 통과하자마자 11시 방향에 화장실이 있다. 세관에게 심사대 건너의 화장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 우리가 잠깐 건너가서 저 화장실을 써도 되겠니?" 

딸과 내가 건너갔다가 다시 와도 되겠지의 시그널을 보내니 세관원 된다고 한다. 

나와 세관원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편은 심사대 위에 올렸던 트렁크와 이민 가방을 찬찬히 심사대 너머로 내리고 있다. 잘하고 있구먼. 

그렇게 부부 불법 이민단의 심사대 통과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능숙하게 심사대 통과하는 주재원 부부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으쓱해 보였다. 우리가 발령 난 데는 다 이런 능력 탑재가 원인이 아니겠냐며 자만을 떨었다. 


" 여보, 우리 차는 어딨어? "

공항밖에 나가면 왠지 회사에서 리무진쯤은 보내주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가 보내서 내가 여기 서있는 것이니 말이다. 

남편은 말한다. 

" 사무실부터 먼저 가야 해." 

" 이 짐을 다 끌고 사무실은 어떻게 가? " 

사무실을 가야 인수인계받은 남편의 업무용 법인차가 있다고 한다. 공항 주차료는 어마 무시한 데다 공항에서 사무실까지는 꽤 가깝다는 것이 그가 나에게 알려준 팩트였다. 위로는 안된다. 우리는 카니발 정도의 택시를 탄다. 이 카니발 택시에 모두 태워야 하는 것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사람 넷과 트렁크 넷, 그리고 이민가방 셋이다. 회사에서 도착하여 법인차를 보기 전이라 나는 이 카니발 택시의 상황이 좋은 줄을 몰랐었으니 이 많은 것들과 이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이 택시에 어떻게 다 싣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태리나 터키계 쯤으로 보이는 작은 몸집의 택시 기사님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다. 독일인답다. 아이들용 카시트를 꺼낸다. 독일 택시는 카시트 없이 어린이를 태우면 불법이며, 영업정지나 면허 취소도 당할 수 있다. 차분히 아이들을 태우고 아이들 주변으로 테트리스처럼 짐들을 싣는다. 다 들어간다. 


자, 이제 남편의 사무실로 출발. 후에 다른 지역으로 비행기 여행을 갈 때에 수없이 나는 이 공항 가는 길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독일 집에서 공항까지의 택시비가 10만 원이 넘었다. 남편은 내내 사무실까지 차를 몰고 가 주차를 하고 사무실 건물 앞에서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하는 알뜰함을 발휘했다. 나는 늘 그의 알뜰함이 불만이었다. 가오 떨어진다고 싶어 싫었다.

공항에서 사무실까지는 고속도로 A5로 10km이 떨어져 있다. 이 테트리스처럼 안락한 택시를 타고 10만 원을 지불하여 나의 독일 집과 만났으면 좋겠는데, 10분 만에 내려야 한다. 남편이 앞으로 일하게 될 건물 앞에 짐, 나, 아이들이 있다.  남편은 먼저 사무실을 들러 선배가 남겨둔 법인 차키를 찾아,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법인차를 가져오겠다고 한다. 부랴부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은 정신없어 보인다. 그로 써도 모든 게 새로우며 지금이 그의 최선이다.

내일 차가 있어야 편할 것임은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주재원으로써의 첫날인데  왜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굴지 싶다. 인지 부조화란 단어는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능력자가 주재원인데, 월급도 많이 받을 텐데, 주재원의 첫날이 왜 이리 고될까?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다.


겨우 7시인데 시커먼 독일 거리다. 후에 알고 보니 역삼동이나 종로쯤 되는 업무 지구인 그 동네는 휴일 7시면 사람의 자취를 찾기 힘든  곳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펑!"

" 펑!" 

" 엄마, 이 소리 뭐야? 무서워." 

대포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온다. 독일에 전쟁이 났단 소식은 한국서 비행기 타기 전엔 들은 바가 없는데, 11시간 안에 주변 나라와 독일 사이가 안 좋아졌나 보다. 아님 내란인가? 

대포소리의 정체를 아는 데에는 정확히 1년이 걸렸다. 12월 31일 1년의 마지막 날은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독일에서 유일하게 폭죽 터뜨림을 허락하는 날이다. 해의 마지막 날이 오기 한 달 전쯤부터 독일 마트에는 각종 폭죽들이 매대를 가득 채운다. 1년 후 나는 전쟁 났을 까 봐 오들오들 떨던 나를 떠올리며 30유로, 4만 원어치 넘게 폭죽을 독일 집 앞마당에서 원도 없이 아이들과 터뜨려 대며 새해를 맞았다. 


주재원이란 말의 진의란 일 잘해서 장하니 유럽 가서 좋은 것 많이 보고 오너라가 아니라는 것을 햇병아리 주재원은 알리가 없다. 발령의 참의미란 자고로 미션 임파시블을 감당할 깜냥이 되니 나가서 고생 좀 하고 오란 뜻이다. 미션 임파시블은 시리즈 물이니 1탄을 겪어야 2탄도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 남의 나라 가서 고생하여 1탄을 찍고 내공 좀 기르란 뜻이다. 1탄이 흥행하면 2탄도 곧 나오듯 주재원 1회 차를 성공하면 더 어려운 2회 차의 기회가 온다.

주재원으로 살아보고 나서도 한참이나 후에야  알게 되었지, 이런 참 의미를 입국 날은 예상하지도 내다보지도 못했다. 환송도 없고 환영도 없으니 아무도 우리를 대접해 주지 않는구먼 싶은 철 모르는 생각뿐이었다. 따라서 저녁 비행기로 도착한 썰렁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고요함과 전쟁 난 듯 사람의 자취는 없고 대포 소리만 들리던 그 업무지구의 어두움은 어쩌다 일어난 하루일 뿐이라 여겼다. 오해도 적당히 할 것을 아주 단단히 오해했다. '주재원이십니다'라는 말에 취해 혼자 잔뜩 했던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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