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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Oct 08. 2023

소매치기 덕에 소중해진 기억을 당근하다.

 대놓고 이름이 쓰여있지 않은 소통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은근하게 어필하는 한복 같은 맛이 있었다. 루이비통도 샤넬도 에르메스도 심지어 고야드도 로고가 여러 군데 붙어 있기에 노골적이다. 일찌감치 마음먹기를 마치 멋있는 그림 한 점을 들고 나닌다는 기분을 누리려면 보테가 베네타의 가방을 나의 첫 고가 가방으로 장만해야겠다 하였었다. 

 그 백을 장만하던 그날은 여느 쇼핑과는 달리 특별했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유럽의 아웃렛은 대부분 저가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입구에 위치하는데 가볍게 접근하게끔 하기 위해 세일 폭이 높고, 정가의 가격도 저렴한 제품들부터 소비자가 만나게 설계되어 있다. 어디에나 있는 나이키이지만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소매치기로 악명이 자자한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베니스이기 유럽 사는 사람으로서의 현명함을 발휘해야겠기에 낡디 낡은 Fossil, 저가 브랜드의 3년 넘게 매일 사용한 가방을 착용하고 있었다. 내 아무리 동양인 여성일지언정, 이 허름한 복장이라면 어깨 뒤쪽으로 울러 맨들 내게 주목하겠냐 싶은 마음을 이 소매치기는 읽어버렸나 보다. 아들에게 신겨볼 운동화 박스를 드니라 뒤쪽으로 제친 가방 속에 들어있던 반지갑과 안경집을 가져갔다.  나이키 매장을 나와 아이들에게 콜라 하나를 사주려고 하는데 지갑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뙤약볕을 버티기 위해 쓴 선글라스 대신 가방 속에 들어있던 안경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테가 베네타 매장 앞이었으니 이미 우린 베니스 아웃렛의 안쪽 깊숙이 진입한 상태였다. 소매치기는 아웃렛 입구의 나이키에서 나의 지갑과 안경집을 들고 튄 지가 오래이겠지. 

 나이키로 가보자는 나의 말에 남편은 지갑에 얼마가 들었냐 물었다. 카드가 안 되는 매장이 많은 이탈리아였지만, 다행히 지갑엔 100유로, 15만 원 정도였다. 문제는 안경이었는데, 고도 근시인 탓에 압축을 여러 번 해야 쓸 수 있는 정도의 두께가 되는 나의 안경은 100유로가 넘는 렌즈였다. 안경집은  열흘 걸려 손으로 바느질한 나의 핸드메이드 작품이었다. 지갑보다 안경집, 현금보다 안경이 아쉬웠고 무엇보다 마치 눈앞에서 강도라도 당한 듯이 심장이 두근거려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이 놈의 유럽 눈엔 내가 호구 동양인 아줌마로 보이는 거냐고! 아, 한국 귀임하려면 최소 2년은 더 유럽에서 버텨야 하는데!!!!' 

소매치기의 눈에 내가 유럽 주재원인지 관광객인지 구분이 어디 되겠는가? 그의 도둑질에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 손을 떨며 두려워하리라고 그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떨리는 손과 뛰는 심장 때문에 한 걸음도 더 나아기가 힘들어 아이스크림 집에서 멍하니 서있는 나를 남편이 매장으로 이끌었다. 무섭다고 말하는 딸과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아들도 남편을 따라 곱디고운 백들이 즐비한 보테가 베네타로 입장했다. 

 앞으로 에 대한 걱정과 이탈리아에 대한 분노는 벚꽃색 위빙 가방 앞에서 금세 사라졌다.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가방들보다 야리야리한 색의 이 백이 내 눈엔 더 반짝거렸다. 말이라도 걸어오는 듯했다. 

' 괜찮아. 안경은 다시 맞추면 되고, 안경집은 또 바느질하면 되지. 100유로는 맛있는 거 사 먹었다고 생각하렴.' 

 그렇게 보테가 베네타 가방을 소유하게 되었다. 위빙 백이란 가죽을 마치 국수처럼 얇게 재단하여 엮듯이 만든 엮음 방식의 가방을 말한다. 위빙 weaving 은 브랜드만의 고유한 방식이라 이 가방은 짝퉁도 드물었으며, 로고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선택한 이유는 말 그대로 위빙 백은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고, 나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 것이라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섬세하고 복잡한 공정만큼이나 나 또한 복잡한 인간임을 세상에 알려주는 가방인 것만 같았다. 


 

 흔쾌히 그깟 가방 따위에 1000유로를 들이는 남편과는 달리 흔쾌히 가방을 사용하지 못했다. 일단 독일에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웃렛에서 집으로 들고 오자마자 독일 집 옷장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얇고 부드러운 양가죽을 들고나갈 곳이 독일 집 주변엔 딱히 없는 데다가, 그 백을 들고나갈 직장도 없었으며, 흩뿌리듯 비가 잦은 독일 날씨에 양가죽 가방이 젖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컸다. 

  한국에 오니 코로나의 시작이라, 애들 학교 상담일에라도 들고 가 자랑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심을 한다. 이러느니 당근 하자. 

 정가의 70% 정도로 올리니 만 하루도 못되어 연락이 왔다. 더스트 백과 정품 인증서까지 고이 보관하고 있었으니 당근에 중고 판매하기는 좋은 상황이었다. 가방의 새 주인은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늘씬하고 피부 고은 중년이었고 묻지도 않은 가방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예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고생하나 한 적 없어 보이는 손이며 걸치고 나온 골프 치마까지 다 마음에 들었다. 

" 친정엄마가 쓰실 거예요." 

좋겠네, 친정엄마 되시는 할머니. 

 돌아오는 길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였다. 소매치기와 베니스에 대해 떠올렸다. 가방으로라도 특별한 사람임을 알리고 싶은 나를 기억했다. 주재원 와이프가 된 그 순간부터 그리고 독일 땅을 밟은 그날부터 대단히 유니크한 존재가 된 듯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온 이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흔하게 널린 명품가방과 어디나 존재하는 검은 머리의 한국인로부터 좀 더 다른 내가 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년의 강남 아줌마 또는 40대 후반의 중학생을 둔 전업 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가방과 인사를 하는 당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 가방을 산 고운 이가 건넨 백만 원짜리 수표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된다. 수표 쓰는 이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네. 아무렇지도 않게 벚꽃색 위빙 백과 인사를 하고 쪼리를 끌고 가볍게 집을 향하는 내가 어찌나 성숙한 인간으로 느껴지는지 미소까지 떠오른다. 

 내겐 기억이 남았고, 시간이 나를 통과해 갔다. 소매치기 사건에도 의연한 남편이 있고, 그 사건에 무서워하던 딸은 나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중학생이 되었다. 소매치기당한 이유가 되었던 200mm의 작은 발을 가졌던 아이는 아빠만 한 청소년이 되었다. 그럼 되었지. 다 가진 내게 가방은 탐욕이다. 유럽 살이를 누린 것만 해도 충분한데 위빙 백까지 가진다면 대가나 벌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 한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이 즐겁다. 제법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당근앱도, 남편도, 소매치기범도 고마울 따름이다. 

  가방에게도 내 철에 한 몫했기에 안부를 전한다. 가방아, 너 잘 지내고 있지?  


사진: UnsplashThe Cleveland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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