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사다준다고 하니 딸이 지금 먹고싶단다. 독일이였으면 상상도 못할게다. 지엄한 노동법이란게 있다.독일의 저녁시간엔 그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음식 배달이나 야식을 꿈꿀 순 없다는 이야기다. 집 안에서야 딸이 먹고 싶다고 하면 내 살이라도 내어주고 싶은게 엄마지만, 집 밖 세상의 속도는 제 아무리 부모라도 맞춰야한다.
해가 지면 모든 것이 멈추는 그 곳에선 미리 준비하고 적응하여 그 속도에 보폭을 맞춘다. 모두의 쉴 권리를 인정함에 예외가 없다.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일의 귀천에 대한 인식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고되기에 험하다 여겨지는 일에 종사하는 이에게 엄격하게 지켜지는 게 노동시간인 독일이다.
구입한 물건 교환하기 처럼 짧은 독일어로는 힘들어 영어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방문은 눈치가 필요했다.토요일 마트 문 닫는 시간 3시 언저리는 캐셔들의 얼굴에 불편함이 역력했다. 내 돈 내 산 교환하면서 겨우 파트타이머 정도들에게 쫄아서 쓰겠냐고 충고하더라. 표정을 숨기지 않는 그들을 대함 자체가 내겐 어렵고도 어려웠다.
그러니 먼저 배려하고 미리 스케줄을 짠다. 독일 세상은 한 템포 쉬고, 한 박자 잠시 멈추고 또는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는 속도로 살라고 내게 거듭 말해주었다.
내일이 일요일이지? 그럼 오늘은 신선식품 장을 꼭 봐야겠다고 계획한다. 6개월 후면 여름휴가가 오지?그럼 이번 주엔 여름 휴가갈 여행지를 정하고 호텔을 예약해야겠다고 준비한다.
그렇게 독일은 내게 니체의 '영원회귀'의 의미를 곱씹어 입에 넣어준다. 어짜피 살 거라면, 오늘과 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질 예정이라면 이왕 살 거 살 맛 나게 채워보길 권한다. 내일 아침해가 또 뜰게 뻔하니 막 살아라가 아니라, 내일은 오늘과 어찌 달리 꾸려가볼까 궁리해보라며 낮은 음성으로 독려해주는 것만 같다.
니체가 백년전 내 쉬었던 숨결을 독일에서 있는 힘껏 들이마셔보기. 독일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경력 단절이 해소되고 인턴으로 일하는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남편과의 대화였다.경부고속도로를 따라난 길마중길에서 목소리 크고 경보로 씰룩대며 걷는 중년 한쌍을 발견한다면 그건 우리 부부가 맞다.
"나한테 너무 하는거 아냐? 인턴에게 뭘 바래?"
다섯시간을 일하며 입 달싹 할 일 없는 스타트업 사무직은 대기업 20년차 팀장을 만나 성토의 자리를 펼친다.
남편이 말한다.
"계속 이렇진 않지. 잘 이야기 끌고 나가봐. 나처럼 지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인간을 여보가 이렇게 풀어내주잖어."
사람은 안바뀐다는 그 흔한 문장은 진리가 아니다. 한 사람과 함께하는 해 뜨고 해 짐을 20년하다보면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해외영업팀 신입사원의 얼굴엔 피로와 긴장, 때론 무기력함이 서려있었다. 차마 한 마디도 띠지 못해 차려주는 밥공기에 코를 박고 저녁을 먹는 그에게 나 또한 말 한 마디 붙일 수 없었다.
어찌나 입장이 바뀌었는지 요샌 그가 몇 시에 걸으러 갈테냐고 보챈다. 그에겐 나와 길마중길이 성토의 장이다.
우린 그렇게 매일 스펙터클하여 단 하루도 같을 날이 없는 24시간을 보낸다.내일이 또 올게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생각부터 시작이다 싶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다 싶으면 옳고 그름을 따져야하며 내가 이겨야만이 마땅하다. 허나 우리에겐 이 길마중길에서의 성토가 막을 내리고 다시 새 막이 오른다. 영원회귀는 당연히 한국에도 적용되고 나의 니체는 길마중길에도 있다. 그의 숨결을 느끼며 긴 숨을 들이마셔본다. 잠깐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의 하루를 바라보는거다. 내일의 해가 또 뜰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