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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13. 2023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인터넷 전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절간같이 조용한 사무실, 기술팀 남자직원들이 건물 내의 구내식당 스타일 밥집으로 향하면 반나절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힘차게 외쳐주는 날이 있는가 하면, 오늘처럼 비가 내려 새벽부터 공기가 무거운 날은 뭐든 부아가 치민다. 

"호박씨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원하는데 취직이 되는구나."

주재원 시절부터 알던, 7,8년 지기 선배주재원와이프 언니들의 부러움을 산들, 진정한 경력이음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라고 여성개발센터에서 추켜줘 본 들, 소용없다. 말을 해야 또는 글을 써야, 그것도 안된다면 소소하게 업무에 사이사이에 수다라도 떨어야 숨 쉴 수는 인간형이다. 

"사무실 이사 가기 전에 인터넷 전화 주소 이전해야 합니다."

"세금계산서 수정발행해야 합니다."

"엑셀파일로 정리해서 주세요." 

대표가 처음부터 일러주었다. 경영지원이라 이것저것 잡다한, 별거 아닌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 시작부터 선명했지만 말로 들어서야 경력단절 20년인 내겐 이 정도로 다양하고 소소하며 티 안나는 일일 줄은 몰랐다. 직접 해봐야 아는 게 일이다. 



인터넷도, 전화도 설치되려면 길게는 한 달도 걸렸다.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 오늘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테지만, 2015년 1월 정확히 그 어떤 소통 수단도 없던 상태로 2주를 살았다. 선임이 임대했던 월세집에 입주했으니 전화는 안 끊길 방법이 있을 것만 같은데, 독일도 선임도 회사도 전화와 인터넷을 깔끔하게 정리해 둔 상태였다. 한국이었으면 단순하게 명의 변경이었음 되었을 터이지만, 남의 나라 살이에선 합리적임을 찾긴 쉽지 않다. 

사무실 이사를 간다고 인터넷 전화를 해지하고, 전화 주소 이전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 잡다하게만 느껴지는 일에 그 시절 내가 얼마나 목숨을 걸었는지 기억이 났다. 독일 도착한 주말 이틀이 지나고 남편은 출근을 했고, 인수인계와 출장으로 그는 늘 집에 없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인터넷 공유기는 남편의 이름으로 소포배달이 왔다. 우체부가 벨을 눌렀을 테지만, 벨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한인마트에 걸어서 장을 보러 간 시간에 우리 집을 방문했었나 보다. 암호와 다를 바 없는 우체부의 알림 종이 한 장을 들고 15분을 걸어 동네 담배가게로 갔다. 독일은 담배가게가 DHL 우편집중국이고, 동네의 노인들이 종종 모이는 곳이며 잡지와 문방구 따위를 파는 작은 가게가 여전히도 동네 곳곳에 존재한다. 담배가게 주인 그러니까 우편집중국 관리인인 동시에 문방구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신분증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한국에 와서 우체부가 붙여둔 스티커 알림을 보고서야 깨달은 사실은 바로 우편물 대리 수령이었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급한 마음으로 15분을 걸어가 종이 조각을 내밀어 본들 공유기를 줄 리 없다. 호박씨는 호박씨 남편 본인이 아니며, 아무리 내가 이 사람과 살고 있는 여자라고 부르짖어 본들 담배 가게 아저씨는 남편의 사인이 없는 우체부의 알림지 때문에 소포를 건네줄 수 없다. 생각이 없다기 보단 법을 지켜야 하니 우편집중국의 운영자로서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칙대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낸다. 

남편은 토요일도 출근을 했다. 일요일도 출장을 갔다. 그러니 담배가게가 문을 닫는 토요일 1시 전에 들를 시간적인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다. 그렇게 세상과의 유일한 접점인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한 인터넷 공유기는 담배가게에서 일주일 넘게 머물게 된다. 

공유기를 드디어 남편이 픽업해 온 날, 우리 둘의 분노는 천장이 높은 독일집을 찌를 듯했다. 독일어로 된 공유기 사용방법을 우리가 이해할 턱이 있나. 그러니 원시인 마냥 그림을 보고 짝을 맞추고, 원숭이 마냥 그림을 흉내 내어 가며 우연히라도 맞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공유기를 대했다. 그날 저녁은 실패. 남편에게 부디 회사의 현지채용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남편에게 돌아온 답은 현채 인력 괴롭히지 말라였다. 괴롭히는 건 아니다.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게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을 간신히 국제학교에 보내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컨테이너가 도착하려면 열흘은 더 남은 상태라, 우리 집에 있는 가구라곤 전임자가 주고 간 낡은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식탁에 공유기를 내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기운을 모은다. 제발 연결되어주라. 독일어 설명서를 보고 다시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본다. 연결! 드디어! 들고 간 인터넷 전화로 남편에게 카카오톡을 날려본다. 여보, 나 해냈어. 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 1이 사라지는 데에는 반나절이 넘게 걸렸지만, 그의 확인은 필요 없었다. 해냈으면 그만이다. 




주재기간 동안 한국행은 가성 떨어진다는 남편의 지론 덕분에, 그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는 마음에 주재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의 기억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내 나라라면, 말이 통하는 곳이라면, 내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닌 여기라면 모든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당최 해내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경력을 이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을 눌러 담았다. 20년 만에 쓰는 자소서엔 그런 기운이 서려있었다. 감정을 지나치게 또는 얄팍하게 담을 생각도 없었다. 사회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 사회과의 접점을 가진 엄마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 이 2가지가 나의 자소서 전부였다. 그 자소서를 읽고 면접을 보겠다고 결심한 대표도 회사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만, 출근하는 날부터 어제까지 업무시간의 8할은 고마움이었다. 집에서 하던 티도 안 나고 세상도 인정해주지 않는 돌봄 산업 종사자의 과거를 하루빨리 털고 싶은 마음이 고마움을 앞지르는 날도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어디까지 돌봐야 하는지, 언제까지 돌봐야 하는지, 타인 뒤꽁무니만 살펴주다 호박씨 인생 끝나는구나 하며 무겁고 나약한 생각이 머리 위를 맴도는 날이다. 절레절레, 흔들어본다. 공유기와 한 판 붙던 그날의 식탁 앞으로 나를 데려가본다. 뭔들 못하겠는가? 그곳에서, 아무것도 없던 그 순간에도 난 해내지 않았던가? 


사진: UnsplashMaheshkumar Pai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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