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Sep 06. 2023

홀로 아픔을 참고 있을 주재원 와이프에게

"피오줌이 나와서, 몰타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단정하고 정돈된 상태를 좋아하는 M에서 몰타는 꿈의 여행지였다. 주재원들 와이프 개인의 취향이 그들의 여행지에 대한 평에 베어난다. 베를린을 저렴한 런던으로 적극 추천 했던 나의 후기를 듣고 베를린에 다녀온 M은 혹평을 돌려 말하니라 쩔쩔맸다. M 남편의 출장 일정에 맞춰 Fall break 가을 여행을 몰타로 가게 된 M은 신나 보였다. 유럽 부자들의 세금 피난처이며 독일과는 다르게 영어를 사용하니 자유롭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최고급 호텔을 예약한 M 가족의 취향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녀의 신장에 탈이 났다. 프랑크푸르트의 한인 병원에서 건강 검진도 빠지지 않고 받는 그녀다.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 천국인 독일을 제대로 즐기는 그녀다. 피오줌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는 병이다. 혈뇨를 동반한 방광염까지 가보진 않았지만 방광염이라면 신물 나게 겪어 봤다. 얼마나 놀랐을까?

부모님의 약국에서 일한 시간을 모아보면 3년 여가 된다. 서울대 약대 나온 아버지 밑에서, 그런 아버지를 돌아 약국서 영업을 뛰는 엄마 밑에서 자란 시간이 있으니, 신체 건강은 웬만한 서당개 못지않다.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에게 부지런히 행동 안을 내밀었다.

" 한인 내과 가야 해요. 항생제 받아야 해요."

" 꾸준히 항생제 먹어야 해요. 전에 방광염 있었어요?"

겪었던 방광염 히스토리와 준종합병원 사이즈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 건너의 약국에서 쌓은 경험을 총 동원했다.

그녀의 반응은 진정해라 했다.

별 일 아니니 흥분하지 말라는 투의 목소리에서 선 넘지 말라는 그녀의 자존심이 보였다. M에게 전화하기를 멈췄다.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길 그만두었다. 많이 아픈 순간, 아이들과 집안을 며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시간이 다가온다면, 그녀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가 도움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살이에서 엄마가, 아내가 아프면 모든 일이 꼬인다. 경제적으로 존재감이 없어 주재원 와이프들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기 힘들다. 심지어 독일에선 그들의 성조차 잊힌다. Frau Kim, Frau Park 이런 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라 불리게 되니 유령인간이나 다름 없어진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타지에서 일하는 남편, 말이 통하지 않는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관장하는 주재원 와이프들이 고장이 나면 모든 게 멈춘다고 봐도 된다. 총체적 난관이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살아, 보듬어줄 이웃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발령을 낸 남편 회사가 가족적인 분위기이거나, 회사의 현지 직원 중에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아 병원 문제를 적극 도와준다면 행운이 넘치는 케이스가 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가족이 똘똘 뭉치는 수밖에 없다.

 엄마가 그리운 순간이 찾아오는 거다. 주재원 와이프라는 멋진 왕관은 벗어 내려논다. 나의 키가 점점 작아져, 방구석에 웅크려 누운 아이 만해진다. 엄마를 찾아본다. 열이 높아 엄마를 부를 힘조차 없어 목소리는 가늘어 들리지도 않을 정도다.

 우리 모두에겐 그런 날이 온다. 한국이건 외국이건 어디이건 상관없다.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해 싶은 순간이 내 앞을 가로막는 순간이 온다. 내가 엄마인데, 다 큰 성인인데, 그리고 돌봐야 할 남편과 아이가 있다.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버리는 시간이 우리를 찾아온다.





운전이 자신 없기는 일상이었다. 여행지에서 서두르다 몇 번 삔 발목은 20대에 다이어트한다고 무리해서 아픈 오른쪽 발목과 중복되었다. 브레이크와 액셀 또한 운 없게도 오른쪽이다. 운전에 대한 긴장은 오른쪽 발목에 실렸으니, 독일 생활 4년 차엔 결국 발목에 무리가 왔다. 프랑크푸르트는 그래도 살만한 동네다 싶은 것이 한인 한의사가 얼마 전 개업한 한의원이 생길 정도였다. 한의원에 가려면 운전을 해야 편하지만, 국철을 타고 가야 할 만큼 발목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남편에게 치료가 끝나면 데리러 오라고 일러두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발목이 아프고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지만 그의 귀에 발목상태에 대한 이야기는 튕겨져 나오고 있었다.

내일모레 한국행인데, 남편의 세 누나들에게 사다 줄 아이템들에 대한 생각으로 그의 머리는 가득하다. 남편에게 엄살을 피울 줄도, 아픈 정도를 자세히 이야기할 재주도 장착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짐작해 주길 바랐다. 말없이 알아주길 기대했다.

선택지가 없다는 건 불안감을 키운다. 침으로, 한국어를 사용하여 치료해 주는 의사가 여기 뿐이다 싶으면 믿음기 가기보단 불안감이 커진다. 여기 아니면 안 되는데, 이 의사는 나의 발목을 낫게 해 줄까? 젊은 남자 의사는 안심을 심어줄 여유와 말재간은 없다. 이제 개원했으니 그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기대하긴 힘들다. 회사가 지원해 주는 Private 의료 보험을 적용하고도 한 번에 10만 원에 해당하는 치료비를 내야 한다. 한국에선 침 한번 맞는데 5천 원이었으니 20배로 빨리 나아야 하는데, 낫긴커녕 나을 수 있다는 신뢰도 내겐 얕기 그지없다.

치료를 받고 나오니, 남편이 얘들을 다 싣고 와 쇼핑몰로 향한다. 누나들이 부탁한 tea 독일 차를 사러 가야 한단다. 원하는 종류가 10여 개 이고 종류당 5개에서 10개씩으로 다양하니, 그들이 원하는 차의 수량과 종류는 엑셀로 정리해야 할 지경이다. 어디서 이 만큼 차를 구해야 하는지, 차의 종류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은 남편은 나만 믿고 쇼핑을 나온 셈이다.

"여보, 나 발목 아픈데."

그래서, 본인이 운전해 왔다 정도인 걸까?


시간이 이만큼 흘러도 그날의 발목치료와 운전하던 남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마음을 먹어본다. 몸이 아플 땐 최선을 다해 여럿에게 알리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피를 나눈, 가족의 영역 안에 있는 이들에게도 겨우 알릴 만큼 하찮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국이어도 독일이어도 "나 아파요."하고 호소하는 이는 약자로 취급한다. 돈 없어서 아픈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부와 상관없이, 나이와 성별과 무관하게 우린 아프다. 아플 예정이다. 그러니 널리 널리 나의 고통을 나눌수록 위로와 공감의 기회는 생겨난다고 믿는다.

공황장애를 글로 공유했기에 극복해가고 있다. 암일지도 모른 상황, 나의 건강에 대한 걱정 기꺼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덜어진다. 알리고 덜어내시길. 해외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남몰래 울고 있을 주재원 와이프 그대에게 그리고 지나간 시간 속  쭈끄려 앉은 내게 당부한다. 그대도 나도 소중하다. 우리가 무너지면 모두 무너질 만큼 소중하다. 그러니 소리 내어 울고 아프다고 소리지르시길!


사진 출처: Grand harbour,Malta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VmtDuvpnn3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