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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Dec 22. 2023

해외생활에서 무서움이란

그녀M 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다. 주재원이 아니라, 돌아온 기약 없이 거주할 예정인지라 이번에 독일 나가기 전에 꼭 봤으면 싶은지 그녀는 여러 번 스케줄을 물었다. 해외 나갈 준비를 하려면 사실 그녀야말로 한창 바쁘터라, 3시간여의 짬이 난 오늘의 시간을 그녀를 위해서 써야겠다 싶었다. 그녀의 집에서 최대한 가까이 이동하려니, 서울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1시간 넘는 여정이 나온다. 그녀를 만나러 출발한 시간은 크리스마스 연휴 시작 전날의 1시였으니 그나마 지하철엔 여유가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연신 보였다. 특유의 억양이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에 묻어나니 저들은 싱가포르 출신의 화교이려나 싶다. 그들은 몰려 타고 서울 한 중간에 몰려 내렸다. 

독일에 다시 나갈 기회가 생겼으니 M과는 나눌 이야기가 많다. 그간의 회포도 풀고, 주재원 신분이 아닌 이직으로 독일에 나가게 되면서 바뀐 여러 환경에 대해서 그녀가 이야기를 하다 무슬림에 대한 코멘트가 나왔다. 지난번 통화에서도 그녀는 재차 강조해서 말했었다. 다른 이도 아닌 M이 무슬림에 대해서 ' 아랍권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니 기묘하다.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와 내가 지낸 오버오젤에서 중동 국적을 가진 이들을 만나긴 어렵지 않다. 중동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국적을 원하는 이도 많았고 미국으로 가는 통로로 독일을 이용하고자하는 이들도 많다. 아래집에 살던 D의 가족도 그렇했으니까. D는 극강의 귀여움을 가진 5살이였다. 흑진주처럼 새카만 눈이 늘 반짝거려서 FBI라고 해도 믿을 법한 근육질의 D 아빠는 D가 아빠라고 불러야 아빠인줄 알 지경이였다. D는 재기발랄하고 거칠 것 없는 꼬마였고, 인사성이 밝았지만 D의 아빠는 인사 한 번 건내기가 어려운 포스를 풍겨댔다.

D 엄마는 늘 혼자였다. 산책코스가 나와 같지만 산책 시간이 달라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쉬이 발생하진 않았다. 그 날은 운이 좋았다. 숲을 다 빠져나와 뿌연 안개 속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읽는 그녀가 반가웠다. 

" 남편은 요새 잘 안보이네?"

"우리 남편 미국 갔어. 우린 독일에서 비자 기다리는 중이고. 우리가 미국에 언제 가서 남편을 만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야." 

그 날 이후 명절이 되면 D의 집 앞에 선물을 가져다 놓곤 했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는 D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게 뭐일지 한참을 고민하여 구입하고 아랫집 문고리에 걸어두곤 했다. 유치원에 다녀오는 시간을 알고 있었으니, D가 곧 발견할 수 있도록 타이밍을 맞춰서 가져다 두었다. 계단 복도를 통해 D의 탄성이 들리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다. 

위 아랫집 이웃으로 3년너머를 함께 지냈지만, 그녀의 사정을 알게된 건 한국으로 귀임하기 고작 10개월 전이였다. D에게 경험을 선물해주기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내 흥에 취해 한 짓이라 좀더 미리 D가족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컸다. 

아니다! D 식구들의 상황을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난 특별히 할 수 있는게 없었을 것이다. 나라 없는 이들의 눈을 안다. 그들에겐 말은 물론이거니와 손을 내밀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그들은 상처 받았고 꿋꿋해졌으며, 꿋꿋하다 못해 껍질이 단단히 만들어버려 왠만해서 그들의 심장에 도착하기 힘들다. 그들은 스스로를 내보이지도 않는다. 도움도 상대가 받아줘야 건낼 수 있는 법이다. 



  M과 독일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M이 가장 돈독한 우정을 쌓은 이 또한 그렇했다. Y 또한 중동에서 났지만 Y의남편은 미국계 회사에서 자리잡고 나라 없는 이처럼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일을 했고, Y와 Y 남편의 본국에 돌아갈 일 없이 세계인으로 사는 듯 했다. 그러니, Y는 M과 가장 친한, 같은 국적의 나에겐 눈인사조차 건내지 않았다. 늘 그녀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는데 D를 통해 미루어 Y의 닫힌 마음을 그저 이해할 따름이였다. 

 M에게 Y는 왜 저러냐고 물으니 M은 대수롭지 않아했었다. M에게 돈 많고, 능력 있는 남편은 가진 중동인 Y는 정이 넘치고 의리가 있어 꽤 잘 통하는 친구였다. 영어라는 도구로 친구를 사귄다는 사실과 더불어 미국 서부로 간 Y 덕에 서부에 중동부자 친구가 있다는 명목도 생기니 M에겐 Y가 좋을 수 밖에 없다. 

 난민과 친구의 차이는 한 두 가지가 아닐터이다. 당신이 난민을 두려워한다면 그 이유를 당신은 여럿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당신은 큰 소리로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는가? 1초의 망설임, 마음 저 깊은 곳의 속삭임을 당신은 분명히 들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범죄를 저지를 수도 나의 것을 뺴앗을 수도 있다고 여기는 이 두려움은 난민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사실 당신의 밥그릇을 뺴앗아 갈 수 있는 건 돈이 아주 아주 아주 많아 당신의 시간을 뺴앗을 수 있고, 당신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나라 없는 이는,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맨 손으로 탈출하다시피 도망나온 이들은 돈도, 권력도, 친구도, 가족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어떤 위협을 준단 말이지? 

" 가는 곳마다 무슬림이 보여서 무섭더라구요."

진짜? 

당신이 진짜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진정 무슬림이란 말인가? 


 주재원이든, 주재민이든, 이민이든 내 나라밖에 자발적으로 나간다는 건 기회이고 혜택일 수 있다. 단순히 금전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란 뜻이다. 한국처럼 단일 민족국가로, 여전히 가족과 가정 그리고 혈연에 대해 끔찍히 여기는 세상이 전부인냥 살아가는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는 신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다. 세상은 다양한 모양으로 펼쳐지며, 40여 남짓 내가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이 관계들은 전부도 아니고 일부도 아니고 꺠알만한 파편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해외에서의 시간동안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민지의 피가 미국을 더럽히고 있다는 어느 미치광이처럼 가진 자의 입장에서 가지지 못한 채 지구별을 왔다가는 다른 여행자의 마지막 남은 동전 한 입까지도 앗아가는 언행을 펼칠 수도 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게 선물같은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깨달음을 널리 널리 펼치고 싶다. 누군가가 손가락질 하거나 미치광이라고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M은 여성스럽다. 내겐 없는 여리여리함이 M에겐 탑재되어있다. 무슬림이 두렵고, 난민이 두렵다고 말하는 M에게 다정함을 건내보았다. 

" 독일에서 구한 집이 부촌에 위치해서 월세가 비싸던데, 난민들 그 부촌 끝자락에도 평생 살 수 없을 거에요. 아시잖아요? 그러니 마주칠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너무 걱정마요."

M의 눈에서 기운이 빠지고 M의 어깨가 제자리를 찾아온다. 나를 항해 내밀었던 몸도, 날카롭게 올라갔던 억양도 내려온다. 그녀도 두렵겠지. 처음 독일에 도착하던 날 숨쉬는 공기마저도 무서웠던 날의 나를 떠올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힘들었던 그 시간 속에 함께 했으니 우린 서로를 다독여줬지만 이제 떠나는 그녀에겐 내가 없으니, 나를 향해 그녀는 무섭다고, 두렵다고 말한다. 괜찮다. 그러니 정 많고 의리에 살고 죽는 M으로 독일에서 살아가겠지. 

1년 후에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다. 24년 겨울 그녀는 무슬림을 무서워했던 자신을 까맣게 있고 돈은 많아 안전하게 느껴지는 중동계 친구를 한 두명 또 만들었으리라 예언해본다! 

 M은 집주인 자랑이 한참이다. 중국인인 집주인은 하우스가 2채인데다 평생 일 하지 않다도 될 돈이 있어 마음이 넉넉하단다. 돈이 많은데 덕성도 갖췄으니 집주인은 M의 눈에는 괜찮은 사람이란다. M의 가족이 따박따박 월세를 내느냐 마느냐는 계약의 결정권은 집주인에게 있는데 M에게 집주인은 돈 많은 중국인이라 좋은 사람이란다. 타향살이가 길어지면 M도 언젠가 진짜 무서운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겠지? 


사진: UnsplashN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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