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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12. 2024

씨네 스타 프랑크푸르트에선  철이 든다지.

 요샌 넷플릭스를 두리번거려도 딱히 볼 게 없다. 2015년 독일의 봄엔 콘텐츠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쉬웠다. 오죽하면 독일에서 영어로 하는 영화관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겠는가? 한국어 책을 구할 수 없다면, 영화라도 봐야지 싶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예술 영화가 빛나던 때가 있었다. 예술을 영화로 해내던 시대였었다. 영상으로 구해보긴 쉽지 않아서 예술영화 잡지로 먼저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디즈니 만화는 중학교 때 졸업했고, 대학에 가선 해적판 일본 영화에 빠졌다. 할리우드가 독일의 영화를 다 잡아먹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독일에서의 생활이 없었다면, 유럽 영화가 사라지고 유럽만의 콘텐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리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의 대도시엔 한국에서 즐기던 대형 영화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까지 1시간 걸리는 나의 도시 오버오젤과 같은 작은 동네엔 여전히도 꼬마 영화관이 존재한다. 누가 보러 갈까 싶지만, 꿋꿋이 보러 가는 이가 존재하기에 상영관이 1개뿐인 영화관은 각 동네마다 건재하다. 동네 영화관에선 당연히 원어 영화를 찾긴 힘들다. 할리우드 영화의 오리지널 버전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Cinestar, 나름 대형 영화관 체인으로 상영관이 여럿인 극장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게 어딘가? 발견하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간 곳이 영화관이었다. 생각보다 지저분한 강남역 영화관에 적잖이 놀랬다. 독일로 떠나기 직전 아이들과 함께 봤던 겨울왕국의 영화관은 시간 속에 지나가고 없었다. 독일 영화관은 카드 할인도 통신사 할인도 없어 저렴한 비용은 아니어서 큰 마음을 먹고서야 가곤 했기에, 시설이 좀 더 세련됐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의 영화관은 정해진 가격에 깔끔했고, 사람이 붐비는 정도도 적당했다. 

 영화관이 많지 않음에도,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았던 이유는 독일엔 영화 보기 말고도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움직거리지 않으며 견디기 쉽지 않은 긴 겨울이라 앉아서 영화 보기보단 볼링, 보드게임처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이겨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영화가 인기 없는 이유일 것이다. 유럽은 더 이상 천만 관객 등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깔끔하고 한적한 Original version의 할리우드 영화는 오롯이 나와 아이들의 것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운 순간이 존재하는 장소는 자꾸 가고 싶어지고, 그 경험은 반복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귀가 예민한 작은 아이는 극장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큰 아이는 마블과 스타워즈의 세상에서 제대로 헤엄치고 있었다. 게다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영화 예약은 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시내 운전을 연습하고, 영화관 주변 주차장을 검색했다. 영화관 팝콘이 비싸니 옆 Rewe 슈퍼를 찾아서 아이들에게 음료와 간식을 고르게 했다. 주차를 하고 걸어갈 거리에 위치한 광둥식 딤섬집을 찾아냈다.

 영화관 길 건너에 한국 치킨집이 들어왔을 땐, 누군가가 나의 이 개척 여정에 손뼉 쳐준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러했다. 함께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아이들 친구와 친구의 엄마를 영화관 여정으로 초대했지만 반응이 좋은 적이 없었다. 타인의 인정은 포기하고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 가끔 남편이 합류한 우리 넷으로도 Cinestar라는 단어는 독일에서의 삶을 살 맛 나게 만들었다. 


마음먹었던 바에 도달하고 말아야겠다고만 생각하면 과정이 고통스러워진다. 조급한 마음까지 겹쳐져 목표점에 도달하면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사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막상 꼭대기에 도달하면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 없으면 못살겠어서 영화관을 갔던 게 결국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씨네스타를 가던 날로부터 9년 여가 흘러서야 안다. 기록하는 덕분에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의미를 깨우쳐가고 있는 중이다. 반백에 거의 다 와가니 하루하루 능숙하고 멋진 어른인 것 같지만 그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글쓰기는 매일 내게 일깨워준다. 

영화관에 도착하던 과정과 운전해 나가던 길, 아이들과 헤매던 스산한 날의 거리,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찾기 같은 따뜻한 아시안 음식.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날의 공기와 기분은 과정이 되어 머릿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깨달음이 오고 나니,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도 조금씩 느긋해진다. 직장동료들을 대하는 마음 또한 가벼워진다. 잘난 맛에 살아온 지난 시간이 부끄러워지면서, 이젠 잘해봐야겠다 싶다. 내게 이다음이라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철이 들려고 그리도 독일 영화관을 들락날락했던 게다. 그랬던 것이다. 


대문그림 : https://www.cinestar.de/kino-frankfurt-main-mainzer-landstr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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