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온게 분명하다. 그 해의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만 5년을 채워가는 현재에도 나는 종종 독일을 생각한다. 변화가 느릿한 그 곳 또한 어제와 오늘이 다를진데 내 기억 속에 독일은 박제가 되어있다.
"엄마가 지우개로 머리 때렸잖아. 수학 못 푼다고!"
작은 아이는 한국에 오자마자의 시간으로 자주 시간 여행을 간다.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레퍼토리가 반복되어 나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을 작은 아이가 날 서게 꺼내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때에 아이에게 엄마라는 사람으로써 나는 분수가 안풀리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의 머리를 향해 지우개를 던지는 딱 바로 그런 이였다. 한국에서 그렇게 자라왔고, 그렇게 생각했다. 유럽을 살듯, 유럽에서 이제 막 한국으로 도착했든 말든 상황과는 상관 없이, 늘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되어한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나이가 같은 이들 중에선 가장 나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삶을 직선으로 보아야 가능한 계산이다. 차곡차곡 하루씩 노력해서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레가 나으며 옆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으면 안심이 되고 뒤쳐져서도 안되고 너무 앞서서 눈에 띄는 것도 싫다. 하루를 참으면 내일이 달라진다며 오늘을 견디고 참는 방법을 내 삶에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 적용 시켜서 살아갔다.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불안도 잠재워진다고 믿었다.
아이들은 독일집 식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곤 했었다. 국어 한 장, 수학 한 장, 연산 문제집 한 페이지. 같은 시간에 재우고 같은 시간에 깨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는 밤새 드라마를 보고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 맛없는 독일 과자를 씹었다. 잠을 자지 않고 그대로 아이들을 깨워 학교를 보내고 자는 둥 마는 둥 침대에 누워 하루 중 점심 라면 한 끼 먹는 날이 많았다.
참으면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불안에 맞춰서 살다보면 터지는 날이 오는 가보다. 삶은 직선이 아니다. 고지 곧대로 누적되지 않는다. 억울하고 화나 삶을 향해 소리질러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왜 참고 고생한거 알아주지 않냐고 삶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 시간을 지나 오늘의 내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는데에는 꽤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니 지우개를 머리에 던진 그 날로 시간 여행을 휙 갔다가 돌아왔다. 그런 아이에게 자분히 오늘의 나를 설명해본다. 어느 다른 날에는 조금 더 차분히 설명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이와 눈을 맞춰본다. 사과는 이미 많이 했는지라, 과거에 대한 이야기보단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지금 공부하고 싶지 않거나, 성적이 안 좋아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네가 행복하게 살 거 같아."
무슨 말인지 가닿았을까? 오늘 가닿지 않는다해도 이해할 날이 분명 올거라 믿는다.
유럽을 살면서 한국을 살듯이 불안으로 뭉쳐 살던 날이 있었다. 매일 화를 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참고 살며 살아서 이다지도 불행하고 불안해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런 내 화를 받아낸 건 늘 내 옆에 있던 작은 아이였다. 독일의 국제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작은 아이는 소중하게 무엇도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었다. 한동안 그 사진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키우면서 내가 했던 수없이 많은 잘못과 실수들은 사진 속 아이의 미소 앞에선 모두 녹아버린다. 그렇게 불안으로 아이를 키웠던 시간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던져지듯 작은 아이의 사진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살 맛 나게 오늘 살고 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을까? 아이가 신명나게 한국을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올*세일이라 용돈을 아끼고 쿠폰을 챙겨서 3년을 졸라 겨우 얻어낸 색조화장품을 샀다. 엄마인 내 신상정보로 주문을 했기에 내역이 핸드폰에 고스란히 뜬다.
"엄마, 내가 올*세일이라고 자꾸 비싼 거 사고, 파우치 있는데 또 사구 또 사구 해서 한심하지?"
침대에 누운 내 옆에 다가와 '한심하다'는 단어를 꺼낸다. 아이에게 '한심하다'는 단어를 나는 종종 꺼냈었나보다. 근래의 나는 아니더라도 수년 전에 그 한국어의 뜻도 모르던 아이에게 자주 그런 말을 했었을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한심하게 바로보았었다. 분명히 나는 그랬었다.
"아니! 엄마는 더보다 더 탕진하면서 살았었어.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으로 다 나가서 텅장이 되었다니까. 근데 지금 알뜰하잖어. 사람이 바뀌더라."
아이가 언제까지 올*세일을 즐기고, 새로나온 모든 화장품을 시도해보고 싶을까? 적어도 영원하지 않을것이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삶을 향해서 억울해하던 나는 이제 다정하게 말을 걸 줄 안다. 맞서 싸워본들 소용없으며 계획하려고 하는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이걸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인생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그리 하면 안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딸도 그럴 것이다. '그 땐 왜 그랬을까?' 라고 스스로 물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질 날이 아이에게도 오겠지. '유럽을 살면서 한국 살듯이 살다니 '또는 '한국을 살면서 유럽을 그리워하다니'라며 스스로를 나무라기 보단 '그럴 만 했어.' 또는 '그 시간이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거지'라며 스스로를 그저 한 번 토닥거리며 웃어내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안다.
사진: Unsplash의Duong N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