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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06. 2024

오늘 해는 어느 쪽에서 떴더라

 반 백을 향해가니 이런 날이 있다. 오늘의 해는 분명 동쪽으로 떴겠지? 해가 어느 방향에서 떴는지 확인하고 싶은 날이 있는 거다. 신기하고도 신묘한 삶이란 바퀴의 기운이 다른 날이 있는 거다. 

 어찌나 잘못 살았는지 모든 게 엉켜버려 더는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그런 날들에도 해는 변함없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졌다. 나만 빼고 세상은 별 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땐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나란 존재는 여기 있는지 없는지도 세상은 알지 못한다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지구는 아무 변화가 없을 거다 싶었다. 그래 어디 없었던 듯 한 번 사라져 버리자 싶기까지 했었으니까. 불행함이 최고조에 이를 때와 행운이 최고점을 찍는 이 순간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바라던 행운은 워낙 찰나에 불과해서 소식을 듣는 한 순간의 짜릿함이 지나가면 나를 둘러싼 세상은 그대로다. 

 남편이 독일 주재원 발령 소식을 전해주던 그날은 큰 아이의 수술일이었다. 갑자기 닥친 아이의 수술에 낯선 아산 병원까지 어안이 벙벙한 날이었다. 작은 아이를 이웃집 엄마에게 맡기면서 남편의 퇴근이 늦을 예정이라고까지 부탁하면서 미안함만 가득 쌓인 날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간 건 아니었는데, 다음날 수술을 하게 된 큰 아이에게 수술 이유를 알리고 설득하는 데만도 이미 신경을 다 써버린 터였다. 

 "우리 독일 가게 되었어."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남편은 오늘 해가 어느 방향에서 떴는지 알고 싶어 할 만큼 기뻤을 텐데, 그런 그의 뿌듯함을 알지 못했었다. 




아파트 청약 발표시간이 자정이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갔다. 38:1의 경쟁률로 당첨이 될 리가 없다. 옆에 누웠던 남편이 나가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들어오지 않고, 남편이 켜둔 주방 등이 방문 사이를 삐집고 들어온다. 작은 빛이 태양처럼 밝아 잠을 잘 수 없다. 주방에 나가보니 남편은 노트북을 열고 앉아있다. 

"여보, 우리 당첨 됐어." 

이번에도 축하한단 말은 하지 못했다. 당첨 문자를 받자마자 내게 소식을 전해준 그를 붙잡고 서로 축하한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 우리 소유가 아니기에 남편을 탓하고 나무라기까지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 그에게 했던 말들은 상세했다. 나의 불행감을 호소하는 말들은 날 선 생생함으로 남편을 찔렀었다. 그 상처들을 다 치유할 만큼 행복이 담긴 대화를 서로에게 퍼부어야 할 터이다. 

계약금은 어떻게 내나 하고 입을 여는 그를 끌고 침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즐기기만 하자고 다독거렸다. 이 밤이 지나고 동이 어김없이 틀 것이고, 해는 분명 동쪽에서 뜰 것이기 때문에 행운 아래 줄줄이 엮여 나오는 업무와 잔업, 대가들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내게, 그에게 닥쳤던 불행 또한 하나가 아닌 줄줄이 여러 겹으로 찾아왔더랬지만 분명 세상은 별일 없이 돌아가곤 했었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은 그 무게가 같아야 하는 법이다.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정확하게 합계가 0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날 계산기를 두드려 +1이기만 하면 성공한 삶이라 웃음 지을 예정이란 걸 알고 있다. -1이라면 원한 섞인 귀신이 되거나 "한번 더"를 외치며 환생하고자 할 것이다. 

  나란 존재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참으로 정상인 셈이다. 평생 잊지 못할 즐거움을 오늘 맛봤다고 해서 해님이 오늘만 기분이 다하며 서쪽으로 뜨고 그러면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아주 무관한 존재들이기에 무사히 이 시공간을 공존하고 있다. 매우 불행한 어느 날, 오늘의 이 기록을 보며 토닥거릴 수 있길 바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날이 다가온다면 지금 써 내려가는 이 글을 보며 주먹을 쥐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호박씨가 되길 기도한다. 오늘이 불행해서 견딜 없을 듯한 누군가가 글을 읽고 행복함을 나눠가지길 원한다. 


사진: UnsplashJoel Dur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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