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오랜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새털 같은 가벼움으로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더 어려워지는 요새다. 뭘 하면 철든 다더라 어디 갔다 오면 정신 차린다더라 하는데, 회사라는 곳이 내겐 일종의 군대 같은 사회화의 시간인 게 분명하다. 결혼, 부모과 자식, 혈연과 부부의 연 이런 관계들이 내 전부다라고 생각했던 때의 나를 봐 온 이들에게 연락하기가 자꾸 망설여지고 부끄러워진다. 기억들이 떠밀려 오면 볼이 붉어진다.
독일에서 주재원 와이프는 시간 부자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 날씨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가혹한 날씨, 가혹한 여자들의 입, 그 많은 것들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그녀와 많이도 걸었다. 동생과 동갑인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없는 동생보다 말이 훨씬 잘 통했다. 그녀를 처음 보고 곧 알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빽빽한 흑림을 걸으며 끝도 없이 가족을 욕했다. 아니, 그들을 염려했다. 아니다. 우린 각자의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경쟁적으로 증명했다. ' 내 남편이 네 남편보다 더 갑갑하다.' 또는 '네 시어머니가 내 시어머니 보다 낫다.'. 것도 아니면 '봐라. 그래도 네 자식이 내 자식보다 낫다.'는 식의 대화가 온 숲길을 메꿨다.
컨테이너 이삿짐을 내보내고 텅 빈 집에 있던 아이들과 나를 불러 12시간을 본인 집에서 먹이고 놀렸던 유일한 이가 그녀였다. 그 많은 오버오젤 한인 중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그녀에게 전화하길 망설이고 있는 거다. 그녀는 내 과거의 일부다. 큰 일부라서 그녀에겐 더 이상 내 민낯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녀가 생각나면 참는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내겐 그녀의 고통을 짊어질 힘이 없다. 온전히 기대고만 싶은 이기적인 마음에 그녀가 생각나는 거다. 스크린 두세 번만 누르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거리상으로 멀던 그 어떤 때에도 내가 불렀을 때 그녀가 뜸 들이던 때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
10번쯤 참았을까? 독일로 다시 가게 될지도 모른다던 지난달에도, 큰 아이가 나가 들어오지 않아 속을 끓이던 이번주에도, 그녀를 떠올렸고 그녀에게 연락하길 참았다. 그러니 오늘쯤엔 내게 상 한 번은 줘야 한다. 벨이 울리는 동안 선을 긋는다. 어디까진 이야기하고 어디까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전화로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아이 때문에 나라는 엄마에게 그녀가 실망할까 봐 걱정이 더럭 든다. 끊어버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그녀가 전화를 받는다.
"언니!"
전화해서 반갑다는 말을 연신한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녀는 여러모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기대려고, 그것도 다 기대지도 못하고 반만 기대려고 하는 나를 반가워하는 그녀를 내가 언니라 불러야 할 판이 아닌가?
결국 아이가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단 이야기도, 학교를 무단이탈 했단 이야기도 난 꺼내놓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온전히 타인에게 기대지도 못하고 외롭다고 비명을 지르는 날 또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예정이다.
내 친구는 고맙단 말을 참 잘한다. 그래서 그녀 앞에 서면 정말 고마운 사람이 되고만 싶다. 그녀보단 한 발자국 아니 반발자국은 낫다는 우월감으로 그녀를 대하는 내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이가 그녀다. 오늘도 그녀는 내게 칭찬세례를 퍼붓는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거푸 말한다. 얼굴 보자고 한다. 밥 먹자고 한다. 이럴 땐 날짜를 얼추 잡아야 한다. 예쁜 친구의 제안이 진심이란 걸 안다는 뜻을 표해야 한다. 그녀의 밥 먹자는 말이 허공에 흩어지기 전에 움켜잡아야 한다. 고작 30분 거리에서 지내면서도 시간부자였던 독일에서와는 달리 우리는 선뜻 만나지 못하는 그런 한국인들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시간에 만나 가족들을 욕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면, 이젠 기말고사가 코 앞인 아이들과 늦게서야 지친 어깨로 퇴근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우리만의 즐거움을 꾀하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중년의 엄마, 나이를 어정쩡하게 먹은 여자들이 되어버렸다.
만날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이가 돌아오지 않은 밤을 이야기할 것이고 사춘기가 한창인 둘째로 속 끓이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볼 것이다. 우린 만날 것이다. 더 이상 시간 부자가 아니어도 내겐 그녀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롯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실력이 출중한 '친구'가 그리워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