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의 어느 호텔 로비에서 브런치 글을 올리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있냐고? 없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50에 들어선 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이 삶이 마치 내 것인 양 계획하고 통제하려고 드는 몸부림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 로비를 밝히는 햇살처럼 그 어떤 의도와 목적도 없이 존재하는게 삶이다. 존재하기도 또는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게 이 삶이다.
독일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게 기록이였다. 비록 저 바다 어딘가를 헤엄치고 있는 동그란 복어쯤의 이 일생이지만, 자취를 남기고 싶고 기록 하고 싶고 통제하고 싶은 욕심. 유일하게 내가 욕심내는 것 바로 글이다.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게 글쓰기란 취미 아닐런지?
시차 적응으로부터 헤어나와야겠다고 결심한 미국 5일차에 홀리듯 모니터를 열었다. 결국 나를 일으키는 건 나의 글이고 내가 남기는 기록이라는 걸 절실히 알아가는 하루다.
어쩌다 조지아, 어쩌다 아틀란타이다. 조지아도 아틀란타도 나의 마흔 얼마쯤 인생에서 수없이 스쳐지나갔을 것이며 공기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영어 그리고 미국사람들도 지나간 인생에서 수없이 나와 만났을 터. 전생에 어떤 인연이였기에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건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라니.
부럽다라는 단어들부터 다들 끌어올렸지만 사실 과정은 참으로 거지같다. 내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호텔의 이름을 건 레지던스에서 지내고 있고, 다 큰 아이들과 한방을 쓰고 있으며 한 침대에서 2명이 자고 있고, 코를 심하게 고는 남편의 3일간의 출장이 고마워지는 이 시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오직 가족들만이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미국은 선물이다.
아들과 한 방에서 지내는 2주간의 시간 동안 아들에게 그 어떤 지시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부탁을 한다. 아들에게 나는 부탁을 건낸다. 아이의 존엄을 살려주는 말을 건내고,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시간과 계획을 제안하고 설명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건내고 싶은 대화를 건내고 사용하고 싶은 단어를 선별하여 아이에게 내밀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이 주는 선물이다.
한국서 발행해온 성적표에 찍힌 D는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성적은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주문처럼 외쳤지만 떨치고 살수 없었다.
초기화. 아이는 초기화되었다. 언어를 얻었다고 표현했다. 말이 생겼다고 했다. 아이 입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생겼다고 하였다.
어딜 가든 앞서 나가고, 먼저 묻고 다가가는 아이가 되었다. 작은 아이가 덩달아 신이 났다. 딸아이의 오빠가 돌아왔다.
이걸로 됬다. 이 날을 맞으려고 그렇게도 울고 짰었구나. 오늘을 잊지 말 것. 거지 같은 시간이 나를 찾아오더라도 오늘을 기억하며 미국살이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