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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정은 평등한가요?

by 호박씨

딸도 있고 아들도 있어 남녀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기에 좋은 편이다. 주변 남매를 둔 지인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래에 취업한 회사의 젊은이들을 나의 지인에서 제외하고 나면, 주변은 사실 갖은 자로 가득 차 있다. 자식을 가진 자, 배우자를 둔 자, 집을 가진 자 들이다. 기득권이라 이름 붙인 나면 우리가 무슨 기득권이냐는 소리가 날 예정이다. 중산층이라 이름 붙여주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재벌은 아니니 중산층이라 붙이면 적절하다 할 게다. 그들이 평생 다 쓰고도 남을 만큼의 재산과 그 재산을 받을 자신의 혈연이 있으니 기득권이라 붙여도 적절할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기득권층이란 딱지를 붙여준다. 냉큼 붙인다.

기득권층이 남녀의 성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야 가정에 머무르는 동안 딸들은 또는 아내들은 여전히 가진 자 이겠지만, 가정 안에서는 어떠한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가정은 양성이 평등한가?


일을 하게 되면서 좋은 점은, 이건 세상의 이야기인데 말이야 하며 이야깃거리를 물어서 오기 좋다는 점이다. 집안에 머무르면서 이 질서는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고 말하면 사실 먹히질 않는다. 집에만 있다 보면 아는 게 없다는 투이다. 쉬운 말로 " 밖에 나가서 한 번 물어봐. 그 말이 맞는지!"라는 말을 던져도 반박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가정이라는 영역 안에 머무르다 보면, 이 가정 내의 질서는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 공정함으로 이름 붙여 지기가 일쑤다. 공정함의 기준을 정하는 자는 권력을 가진 자일테고, 권력을 가진 자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경제권을 쥐고 있는 자일 것임에, 당신의 남편일 것임에 분명하니 말이다.

책임, 사랑, 의무 등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아서 길러 국가의 출산율에 이바지한 여성들은 이렇게 순순히, 지긋이 한국의 기존 질서에 물들어가고, 양순해지며, 권력의 가진 자가 권력을 유지하기에 편하게 편하게 조용해진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동일하다.

" 튀어 난 돌은 정 맞게 되어 있어."

잘난 척은 적당히 해야 지란 말을 종종 듣는다. 물론 그 말 뒤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는 소리가 따라붙는다. 특히 남편이 롤모델로 삼았던 잘 나가던 팀장님이 팀장 자리를 뺏기고 팀원으로 회사에 남게 되고 나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재 취업 이후로도 빈번하게 듣는 말이다.

팀원으로라도 회사에 남게 되신 팀장님은 남편이 팀장자리를 맡게 된 팀의 일반 팀원으로 배치되었다. 팀장과 팀원, 선배와 후배의 자리가 정반대로 뒤바뀐 셈이다. 나이 든 전 팀장님이 느끼는 약자로서의 차별과 부당함을 현 팀장인 남편에게 호소하면 남편은 듣고 싶지 않다 또는 조직을 위해서 불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비슷한 결의 조언을 그에게서 들은 바 있다.

" 회의 시간에 너무 튀지 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지."

대기업 생활을 20년을 채워가는 그의 조언이니 고분이 잘 들어서 회사에 오래오래 살아남아야지라고 생각할 호박씨가 아님을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잘 아실 테다.

" 내가 싫으면 내보내겠지.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할 말 다하고 잘릴 때 잘리지 뭐."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실상 약체 중 최약체인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높이 지껄임으로써 이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쿠데타 중이라고 중얼거려 본다. 경력 단절을 해결한 와이프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하지만 20년 전의 대기업에 취직했던 서른의 남편의 마음가짐 그리고 평생 남성으로 살아온 그의 입장에서 진정 내게 쓸모 있는 소리가 나올지 미심쩍다.




우리의 이야기를 여기서 시작되었다.

" 한 밤 중에 외출하기 꺼려진 경험 있어?"

" 어릴 땐 그랬지. 나도 사람인데."

어릴 땐 그랬지.... 나이가 마흔이든 나이가 반백살이든 상관없이 여성은 아동처럼 취급되며 아이처럼 최약체로 취급된다.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하다 보니 거기에 고분고분 해져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취급한다.

그래야 자기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지치기도 한다. 난 아이가 아니며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부르짖지만 상대가 나를 자꾸 집에다 예쁘게 꽂아둘 꽃으로 취급하면 어느 순간엔 풀이 죽는다.

" 그래, 그냥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살자."

절화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화분에라도 심기면 이미 잘린 절화의 입장에서 감사해해야 하는가? 살아있지 않으면서도 살아있는 척 스스로에게도 거짓을 고하는 정도면 양반이다. 영원히 죽지 못하는 조화, 그게 당신 그리고 나의 처지였을 것이다. 조화 중에서도 퀄리티가 뛰어난 상품이 눈에 자주 띄는 세상이다. 조화 중 고퀄, 정확한 지금의 나다.


딸이 말한다.

"아빠도 힘들어."

그렇지. 누가 더 고생하고 누가 덜 고생하는 인생이 어딨단 말인가. 공평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신의 존재를 설정한 순간부터 불평등의 시작인 것을 우린 인지한 것과 다름없다.

아빠, 남편, 아들, 팀장, 남성 남편이 짊어진 그 모든 시선들로 그가 힘들기만 한가? 우린 누구나 상황에서의 기쁨과 슬픔을 겪는다. 기쁨도 상대적이고 슬픔도 상대적이란 사실 당신은 알고 있으리라.

투표권이 없던 이가 투표할 수 있는 순간 절정의 기쁨을 맛보았으니 이제 더 이상은 요구하지 말라 할 것인지 의문이다. 집에서 소비만 하고 살던 경단녀가 최저시급으로 계산된 월급을 보고 미소 짓는 순간이 있었으니 더 받을 꿈도 꾸지 말라 충고할 것인지 궁금하다.


딸아, 세상은 흘러 흘러가고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단다. 그러니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게.

아들아, 살아보니 누구나 약자의 위치에 처하기도 기득권자가 되기도 하더라. 그러니 깨인 자로 살아가길 바랄게.

여보, 별난 와이프가 혁명적인 소리 계속 해대서 힘들죠? 공정이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성 모두를 위한 이야기랍니다. 미리 고마워요.


"당신의 가정은 평등한가요?"묻는다면 평등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말할 것이다. 괜한 고생, 불필요함 시끄러움이 아니다. 배울 만큼 배웠고 가질 만큼 가진 기득권자로 살아간다면 세상을 향해 기꺼이 내어줘야 하는 것도 있다. 무사히 아이들을 여기까지 키울 수 있었고, 일주일에 책 한 권 사서 읽을 형편이 되며, 배고파 본 적이 없다면 깨인 소리 한 번은 내질러보고 살아야겠다. 세상을 꽃잎 하나만큼은 공평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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