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3시 45분이다. 외근 후 사무실로 복귀할 시간쯤을 일 것만 같다. 유연 출근제가 9시에서 10시 사이에 출근하면 되는 지라, 젊은 직원들은 10시를 맞춰 출근하고 8시 언저리에 퇴근한다. 그러니 나의 퇴근은 그들의 근무시간에 절반쯤에 자리 잡고 있다. 출근길은 근로자들, 노동자들로 북적거리는 반면, 퇴근길은 하교시간에 일치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으로 퇴근 시간을 맞췄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오던 시간도 이쯤이었다. 부모님의 약국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오기 위해서 3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한숨을 돌리고 4시에 아이들을 픽업하곤 했었다. 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 4시는 왜 출근길보다 더 늘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 긴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 지어간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에 던지려면 에너지 넘치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들을 반기는 기색이라도 얼굴에 장착해야 할 터인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표정이었다. 어린이집 교사에게 수고하셨다는 의미의 미소를 보내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표정은 우울 그 자체였다.
남편은 야근 또는 회식일 것이 뻔한데, 아기들과 어떤 저녁밥을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들이 잠이 들려면 아직 대여섯 시간은 남았는데, 이들과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나는 좋은 여자, 훌륭한 엄마가 되는 걸까 에 대한 정답은 늘 미지수였다. 답이 없는 질문, 변화가 보이지 않는 육아라는 상황. 곤혹스러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놀이터에 젊은 여성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아이를 그녀는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다. 원단 좋아 보이는 니트와 편안한 명품 슬리퍼와 걸맞지 않은 영어 유치원용 노란 가방이 그녀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 그녀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처져 있어서였다. 엄마의 컨디션과는 다른 그림으로 아이가 있었다. 미끄럼을 혼자 오르고, 내리는 아이가 그녀의 아이인가 보다.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아이와 함께 놀지 않는 그녀가 서있다.
15년 전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마다 내게 떠오르는 이 감정의 원인을 다른 곳에 돌리기 바빴다. 엄마라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는 자녀에 대한 일관된 사랑이 1순위다. 세상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도대체 자녀에 대한 사랑이란, 모성애란 나만 없는 것인가? 그들을 만나러 가는 이 길이 왜 내겐 어렵기만 한 건지, 무기력함과 힘 빠짐은 죄책감이란 친구를 쉼 없이 끌고 왔다.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이들을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대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만도 못한 인간이 나란 인간이었다. 아이들을 픽업하는 다른 엄마들의 표정과 뒷모습도 살핀다. 그들에게 감히 아이들을 픽업하는 순간부터 혹시 피곤하냐고 물을 자신이 없었다. 이 죄를 짓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겠거니 싶어 수치심에 외로움까지 뒤범벅되어 버렸기에 15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고 난 오늘에서야 고백할 수 있을 정도다.
하교하고 만날 이가 전혀 없어, 학교에도 학원에도 소통하는 이는 없어 하교하고 나면 집으로와 쉬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피곤하다.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집안일만으로도 아이들이 올 시간이 싫었다.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할 에너지가 내겐 전혀 생기지 않았다.
왜일까?
부모님의 약국으로 출근을 할 땐, 내게 번져오는 이 슬픔과 무기력함의 원인이 집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공짜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는 나뿐이었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원어민과 영어 수업을 하는 유치원이라도 보내는 이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남편의 월급의 25%를 차지하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영어 유치원으로 두 아이를 다 등원시키는 부모들도 있었다. 외벌이로는 보낼 수 없는 영어 유치원 때문에,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싼 동네에 전세로 살고 있기 때문에, 친정 부모님이 제공하는 일자리 밖엔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슬픈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그리고 오늘, 평당가가 1억이 넘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홀로 서있는 그녀의 뒷모습과 마주한다. 그녀의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그녀의 아이는 한 명이라 그녀의 육아 고충은 곧 끝날 예정이다. 외벌이여도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기꺼이 명품 생활복을 사줄 만큼의 넉넉한 연봉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집은 부모님이 마련해 주셨기에 그녀가 알뜰 살뜰히 내 집마련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여전히 그녀의 뒷모습엔 무기력함이 서려있다.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은 순간이 있다. 세상이 생각할 때 여성이란, 또는 엄마란 사람들이 기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험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시간, 명품백을 사들고 나오는 경험, 아이 친구 엄마들과 브런치 모임을 가지며 남편과 시댁 욕을 하는 시간에 우린 기쁨을 느낄 것이 추측된다.
이 모든 시간 속엔 그 어떤 조각의 쾌락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오늘,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당신의 기쁨은 여기 없을 수도 있노라고, 우리에게 강요한 즐거움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이다.
당신만이 누릴 수 있는 온전히 기쁜 순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내가 가장 고민하는 바이기도 하다.
" 아들 대학 입학 소식 들은 그 순간만 좋더라. 나 참..."
선배 주재원 엄마들의 카톡에 아이들이 합격한 대학 로고가 찍히거나 입학식 사진이 올라올 예정이다. 그들이 박제하듯 올려둘 그 사진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들에게 허무하냐고 차마 물을 자신이 없다.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허무함을 일깨울 만한 용기가 아직 내겐 없다.
아이의 좋은 대학 진학은 아이에게 전도유먕한 까펫을 깔아주는 조건이 생기는 일이라 아이를 축하해 주면 그만이다. 아이의 성과를 엄마의 성과로 인정해 주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란 것을 여성들은 알고 있다. 게다가 딸아이라면 아이가 거둔 성과는 더더욱 힘을 발하기 어려운 한국이란 것을 우린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할 뿐 다들 잘 알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나의 기쁨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당한 순간에 즐겁지 않아도 된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숨 막히는 2호선에서 공황장애 발작이 일어날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구역 출근했던 나의 통장에 꽂힌 200만 원이 안 되는 최저시급의 월급은 참말로 기뻤다. 사회와 관계를 맺고, 가정 밖으로 벗어나며, 인정해주지 않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히스테리를 부려대던 날들을 날려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위를 타는 젊은 직원들이 최고치로 틀어둔 에어컨 냉기로 가득한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도 즐겁다. 관리비가 아까워 틀지 못했던 에어컨을 마음껏 쐴 수 있으니 기쁘다. 저녁나절이 되면, 도대체 이 더위는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아파트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서늘한 가을 냄새와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이젠 더 이상 땀으로 샤워하지 않고도 집에 돌아올 수 있겠구나 싶어 가을이 옴이 설레기까지 했다.
당신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최고로 행복한 순간순간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길 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누군가에겐 힘이 되기도 할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호박씨를 그 어느 누구도 칭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을 테다. 중년의 여자가 겪는 생활과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바를 기대할 사회가 아니란 것을 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내가 좋은 걸, 나의 이 진정한 기쁨은 나눌수록 불어나는 것을 알고 있다.
쓸쓸한 뒷모습의 그녀에게 이 글을 보낸다. 그녀만의 무기력함이 아니라고 알리고 싶다. 서른 중반의 어느 날, 빈 놀이터에서 놀던 3살, 5살 두 아이의 엄마였던 나의 텅 빈 눈과 쳐진 어깨는 오랫동안 계속되었었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살아보니 그러하다. 진정한 기쁨을 주고 내 어깨를 들어 올려준 건 돈도, 강요한 모성애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