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부러 핸드폰을 손에 들고 출근길에 나서지 않는다.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기기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방선언을 하는 의미에서다. 앱 운영회사에 다니면서 핸드폰에서 해방되어야겠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을 수 있겠으나, 앱회사에 다니기에 의도적으로 걷는 시간 만에라도 손에 그 무엇도 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출근하면, 퇴근해서도 회사와 경쟁사의 앱 그리고 SNS들을 살피는데 열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써 올리는 브런치와 블로그도 앱을 통해 작성하기도 하니, 작심하지 않으면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기 십상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아침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다. 아침 출근길의 풍경, 사람들의 행동과 그들의 말 심지어 체취까지도 전업주부였던 내겐 세상이 주는 자극이다. 그러니 핸드폰은 가방 어딘가에 박아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사정으로 오늘 아침엔 소파 위에 두고 나왔고 지하철 역까지 걷는 10분 동안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밖에 없다.
개찰구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현금이 있다. 1회용 지하철 이용권을 발매하는 기계는 현금만 사용가능하다. ( 별로다. 이해할 수도 없다.) 핸드폰 케이스 뒤 슬롯에 체크카드 겸 교통카드가 끼워져 있다. 핸드폰이 없다는 이야기는 교통카드도 없다는 소리와 같다.
사무실 출입이 안 된다. 공유 오피스 운영 매니저가 위치한 1층으로 내려가 원격으로 사무실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4층으로 올라왔다. 자, 이제 업무를 봐볼까? 아이들 생각이 밀려왔다. 남편은 중국 출장 중이고 큰 아이는 몸살로 어제 학교를 조퇴했었다. 아침에도 진통제 한 알을 먹여서 보냈다. 작은 아이는 오늘 체육 수업이 있었나 궁금하다. 뛰다가 운동장에서 넘어져서 응급실에라도 가야 했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떠오르자 호흡이 가빠온다. 마우스를 쥔 손에 땀이 난다.
공황 장애 증상 중 하나는 과호흡인데 이 경우 머리가 어지럽고 손발을 움직이기 힘들며 다리가 후들거린다. 데스크에 앉아있을 중이니 걸을 일은 없지만 겨드랑이에서 올라오는 땀냄새와 손바닥에 스며 나는 땀을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릴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혼자 근심에 빠져들면 시나리오는 끝없이 펼쳐진다. 아이들 학교에서 내게 전화가 온다. 연락이 닿질 않아 학교에선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남편은 업무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고 아이들의 사고에 대한 대응은 시간을 끌게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마치 일어난 듯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세상에 경력단절자로 구직자로 나를 알리고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 사회가 인정하는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어낸지 만 4개월을 채워가고 있다. 마흔 중반을 넘어가도록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과 전업 주부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십 년이란 시간 동안 깨닫지 못했던 의미들이 한 땀 한 땀 나를 찾아온다.
남편의 월급으로 살아가니 그가 맡겨준 아이들을 일로 대했다. 사고가 나면 안 되고, 사건이 발생하면 대처해야 하며 아이들의 삶이 내가 이룬 결과물이 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는 태도가 정당화되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면서는 그들의 적응을 돕는다는 이름하에 24시간 그들을 감시하기도 했고 늘 그들과의 연락이 닿는 곳에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다. 국제학교까지 5분이 안 되는 거리에 살면서도 학교 봉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같은 공간 안에 있곤 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안심했고, 아이들이 불행하면 낙담했다. 드라마를 보듯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타인의 아이와 비교하면서 살았다. 책임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겐 공고했다.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과호흡엔 복식호흡이 좋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있는 힘껏 배를 부풀려본다. 눈은 스크린을 향해 있지만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은 배 위에 올려본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난들 그들이 알아서 어떻게든 잘 헤쳐나갈 것이다. 비상연락망에 친정엄마 전화번호도 넣어 뒀으니 엄마라도 출동하실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가 출근하는 회사의 이름도 알고 있으니 사무실에라도 전화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럴 만큼 충분히 자랐고 어떻게든 대처할 것이다.
게다가! 하필 핸드폰을 두고 갔고 남편이 출장 간 날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진다 해도 어찌한단 말인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핸드폰 가지러 퇴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다. 핸드폰으로 봐야 하는 업무들, 앱에 업로드된 광고 상품을 살피고 카카오 메신저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 동료들에게 사과를 했다. 오늘 핸드폰이 없으니 이 업무들은 보지 못할 듯하다고 하자 그들은 알겠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책임이라고 여겼던 일들은 오늘 5시간 동안 자리를 비워도 별일 없다.
기대에 부응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며 맡은 바를 오롯이 해내겠다는 나의 책임감에 선을 그어준다. 살면서 내내 뾰족한 펜으로 나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사이즈로 줄을 긋고 살았다. 한 치의 옴짝달쌀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하게 매끄러운 선, 옭아매고 있던 그 가는 영역 위에 구성지고 두꺼운 선을 그려내 본다. 마음대로, 마음이 허락하는 데까지 한계가 없이 넓게 그려본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려도 된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해가 되긴커녕 날카로움을 집어던지고 이 자유를 만끽하고 내려놓음으로써 나를 바라보는 그 누군가에게 미소를 선물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하루씩, 지금 당장 어디 하나 삐져나가는 데 없이 완벽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부디 그 선 밖으로 나오시길 빈다. 별일 없다. 장담한다. 별 일은커녕 즐겁기가 이를 데 없는 오늘을 기꺼이 이 글을 읽는 그대와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