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아이는 혼자이지만, 하고 싶은 게 먹고 싶은 게 생겨나니 이젠 숨이 쉬어진다. 남편이 고맙단 이야기를 하면 그의 입을 막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나에 즐거워하고 찰나에 기뻐하지 말라고 그를 붙잡는다.
세상을 거스르지 말고 순순히 살라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를 스치는 인연들만 만족시키면 된다 여겼다. 주변 사람들의 단계를 메기고 그들에게 여기까지, 저기까지 정하여 기쁨을 주었다. 그게 소명이고 최선이라 여겼다. 아이가 건강할 때 자랑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엄마도, 할머니도 그러하였으니 그 말에 따르곤 했다. 감기가 뜸하면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살 맛이 난다 하였는데, 내뱉고 나면 두려워 견디기 힘들어 손으로 말이 뱉어진 얼굴 앞 허공을 휘저었으니까. 그러니 여전히도 나는 남편이 내게 고맙다 하면 그를 말린다. 아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 무섭고 두렵다.
하루가 천 년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시간이 우리를 찾아온다. 삶이 컴컴해 도무지 한 치 앞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려운 때가 있다. 엉겨 붙어 버린 감정 속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실타래가 되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아니,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가져본 적 없는 게 있었던가? 지극히 원하나 얻지 못하는 게 있었던가? 삶의 절반을 걸어오는 동안 내가 제일 힘들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왔는데 삶이 엄숙히 거울을 내민다. 자식이라는 거울을 내게 디밀며 어디 한 번 해보자 했다.
살아온 대로 살고 싶은 욕심을 버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버렸다고 하지만 모두 버리지 못하였고, 아는 게 없지 무지하며 안하무인의 스스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매일 나를 찾는다. 엄마가 된다는 건 삶을 조금이나 알게 된다는 건 슬프고도 기쁘다는 걸, 삶은 축복이지만 저주라는 걸 이젠 안다.
딸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고 해준다. 함께 외출을 하자는 말에 딸이 일말의 걱정도 없이 흔쾌히 그러자고 말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내가 무단히도 이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외로이 혼자 불안해하며 이 집을 지킨 딸아이는 비로소 웃는다. 아이가 아이다워지는 순간이다.
"엄마 나 사실 집에 오기 싫어서 슬펐어."
아니다. 딸은 이 갈등을 함께 지나오니라 이미 아이가 아니다. 아슬아슬한 엄마와 아빠, 방에 처박혀 게임에 빠져있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오빠가 있는 집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딸이 이제야 말한다. 그날 들어오고 싶지 않더라고 말이다.
우리에겐 각자의 소명이 있을 것이다. 호박씨로 태어났을 때에는, 내가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지. 남편과 아이의 갈등을 묵도하고 남편과 해묵은 감정을 풀어헤치고 그를 용서하고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 왜 나야?"였다.
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나 또한 이 삶은 처음이라 낯설어 손을 내밀기 싫고 발을 내딛기 두렵다.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찾는다. 아들을 안아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엄마의 탓이라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가만히 앉아줘야 한다. 얼마나 힘들면 엄마를 탓할까 하며 아이 입에서 저 말이 나오기까지 아이가 견뎌야 하는 이 힘듦을 끌어안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남편에게 눈물 흘리지 않고 대화를 건네어야 했다. 차가운 그의 손을 잡을 용기를 내야 했다.
" 나만 없어지면 당신 삶이 천국이야? 그러 내가 없어질게.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봐. 당신이 힘든 이유가 정말 나야? 방금 한 말 진실일까?"
차분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지금도 생각만으로도 떨리는 일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오해 없는 말그릇에 그 만을 위한 생각을 담아내려면 내겐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다.
당신에겐, 내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터널도 때론 침 한 번 꿀꺽 삼키면 빛이 스며드는 짧은 터널도 있을 테지. 이제 터널의 시작점에 선다면 나를 투명하게 만들 생각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순간 우리에겐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면 그건 여전히 내가 어리석게도 나만을 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치열하게 상대를 위해 내 진심을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용기를 낼 것이다. 말이 아니면 행동으로, 행동도 아니라면 눈 마주침으로 진짜 나를 보여줄 생각이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 하기 부끄럽다면, 당신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이라는 걸 알리기 어렵다면 당신만의 방법을 고민해 보시길 빈다. 어떤 방법으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당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억울하지만 그렇다.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이는 외롭고 춥다. 하나 세상 뿌듯함이 당신에게 리워드로 주어질 것이며, 당신이 그들에게 고백한 사랑의 열 배, 아니 백 배를 돌려받을 것이다.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남편이 짧은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고 싶다는 카톡을 보낸다. 아들이 누운 자리 옆을 비집고 들어와 얼굴을 맞댄다. 딸이 마라탕은 집에서 끓인 게 제 맛이라며 오늘 저녁은 마라탕을 꼭 해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한다. 그들은 작고도 큰 용기로 그 시간을 버틴 내게 매일매일 선물을 준다.
먼저 손 내밀어 줘서 고맙다고 온 힘을 다해 외쳐주는 듯하다. 요새 호박씨는 이렇게 산다. 옛사람이라 복 날아갈까 무서워 차마 어디 가서 자랑은 못하고 다만 글로 남길뿐이다.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서있는 그대에게 전한다. 부디 용기 내시길. 그대의 사랑을 먼저 고백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