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말이 없는 어머니는 속이 없으신 분인 줄 알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다거나,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달까? 시어머니를 보면서 남편의 이해도도 그가 내게 보여준 해운대 앞바다처럼 깊고 깊어서 나는 가늠도 할 수 없을 예정이길 바랐다. 나의 바람과 예상은 엇나갈게 당연했음에도 긴 시간 동안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 컸다.
지난주 남편은 징징대며 출장을 갔다. 긴 비행시간이 귀찮다고 했고, 출장으로 업무도 밀릴 터이니 미국인데도 싫다며 가고는 소식이 없다. 그가 집에 없음과 동시에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신호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부지런히 받아본다.
아픈 손목의 원인은 밥을 많이 해서인 게 분명하다. 방학 학원 스케줄 사이사이에 집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고, 앞으로 얼마나 이들에게 내가 한 밥을 먹일 수 있을까 싶음 생각에 가열하게 밥을 해댄다. 김밥, 삼각김밥, 스팸김밥은 아침 겸 점심 용으로 출근 전 아침 시간에 매일 새 밥으로 준비하는 메뉴다. 퇴근하고 한숨 돌리고 5시 30분이 되면 저녁밥도 짓는다. 밥솥도 일당백을 하고 있고 나의 손목 또한 그러하다. 밥솥은 기계라 아프다 소리는 없지만, 패킹이 늘어났는지 밥이 설익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손목은 기계가 아닌지라 통증으로 노동강도가 더해졌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생전 내게 전화하지 않는 어머니가 업무시간에 전화를 하셨다.
"***아바이가 내일 비행기로 오지?"
남편의 도착시간에 맞춰서 택배를 보내고 싶으시단다. 80이 넘은 어머니는 1시간을 달려 소고기를 사 오셨을 게지. 이제 여기쯤에서 어머니가 긴 시간 동안 말씀 하신 레퍼토리가 등장한다. '너네들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와 '고기를 많이 넣었다.'라는 문장이다. 매일 먹는 밥처럼 한결같이 어머니는 같은 문장을 내게 말씀하신다. 토씨 하나 틀림없이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내게 거푸 이야기하신다.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식단처럼 말이다.
착한 며느리로 살아왔으니, 나 또한 변함없이 어머니가 보내시는 시그널을 접수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답한다. 업무 시간이지만 전화는 받을 수 있다고 했고,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은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가장 좋아한다고도 했다. 만난 횟수와 함께한 시간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연들이니 어머니는 파악하시고도 남으실 터인데 싶지만, 그럼에도 재차 그들은 어머니의 음식을 좋아한다고 강조해 말씀드린다. 그제야 어머니는 우체국으로 출발할 채비를 하시는 듯하다. 이미 육개장을 보내기 위해서 마음먹으신지는 며칠이 되었을 터이다. 남편이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던 지난 월요일에 마음먹으셨을 게 분명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2년, 혼자 60평 너른 아파트를 쓸고 닦고 쓸고 닦고, 만날 친구는 없고 옆동 사는 조카나 가끔 만나는 심심하고 시간 많으신 시어머니가 가열하게 손목을 사용하셨을 게 훤하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비슷했다면, 난 아마 시큰 거리는 손목에 대해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을지도 모른다.
"일도 하면, 밥 하기가 쉽진 않을 게지."
어머니는 일하는 엄마셨다. 사업하는 남편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으니, 일수방을 탈출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재봉을 돌리고 교복을 만드셨다. 방 한 칸에서 딸 셋을 나아 기르고, 갓난쟁이 남편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 어린 딸에게 맡기고 옷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어머니에겐 존재한다. 어머니는 그 시간들을 기억하며, 나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신다. 어머니는 나의 기대를 환상을 산산이 부숴버리시진 않는다. 부서진 구석이 있는 그녀에 대한 판타지 조각을 주워 올려붙여본다. 그녀의 육개장을 기꺼이 받아서 야물차게 먹어치우리라 마음먹어본다.
2시간 후, 시어머니가 풀이 죽어 전화하셨다. 속상하다거나 섭섭하다는 식의 형용사를 사용하시는 어머니의 문장이 낯설다. 감정에 대한 묘사를 내게 했던 적이 있었나? 어머니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단어들이 전화를 통해 흘러나오니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오늘 붙이면 내일 안 들어간다고 해서 육개장 도로 들고 왔다. 속상하다, 속상해."
마감시간이 지나서 가셨을 게다. 3시에 전화를 끊고 가셨어도 어머니 속도로는 4시에 도착하셨을 터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다음날 도착하는 우체국 택배는 마감이 되었을 터인데 우체국에선 마감 시간에 대한 설명을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하진 않았나 보다. 어머니는 댕강 부산에서 서울로 가려면 하루가 넘게 걸리는 방식으로 변했나 보다며 섭섭함을 토로하셨다. 아들 도착 시간에 맞춰서 뜨끈한 육개장이 식탁에 차려지길 바라는 시간이 길었고, 준비가 크셨던 게다. 지난 월요일부터 그녀가 어떻게 지냈을지 그려진다.
그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고 싶다. 학원 시간에 맞춰 스팸김밥을 싸고 있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인 듯 하지만, 알람을 듣고 나면 어느새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환상적으로 멋있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단순하고 우직하게 살아온 엄마라는 존재가 멋지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부디 며느리로부터의 존경을 받는 노인이었으면 좋겠다.
엄마로 산다는 건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게 주어진 부모로 살아보다는 이 기회는 최고로 이타적인 인간으로 살아보게나 하며 신이 내린 기회였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마음을 먹은 어느 엄마를 발견하고 가까이에서 발견하고 쉽다. 게으른 마음에 열심히 찾지 않아도, 이타적인 어머니를 발견하고 따라 살고 싶은 희망을 찾고 싶다.
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