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난다. 좋은 건데, 바라던 시간인데 공허함이 밀려온다. 가족들은 각자의 일정으로 바쁘다. 남편은 승진으로 물 샐 틈 없이 바쁘다. 그는 가끔가끔 나타나 그가 얼마나 그의 세계에 빠져있는지를 표현한다.
" 오늘 회사에서 말이야, 재밌는 일이 있었잖아."
" 그 부장이 말이야."
그는 너른 바다를 해치고 헤엄치듯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의 선두에 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또는 해왔던 일보다 조금 더, 더 조직은 그에게 요구한다. 덕분에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중이고, 중견기업이라는 조직 문화를 게임처럼 맛보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눈이 마주치면 피곤하다는 소리를 줄줄 해대지만, 사실 피곤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한 사람과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이젠 말이 전부가 아니며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팽팽한 승부가 펼쳐지는 운동 경기처럼 그는 오늘 그에게 주어진 업무과 관계들을 즐기는 중이다. 그러기에 피곤하며, 그러기에 스스로의 쓸모에 대해서 매 순간 느낄 수 있다. 멋진 순간이다.
" 엄마, 나 도서관 닫는 시간에 갈게. 한 10시?"
영어학원에 보내달라는 소리를 1년을 했었는데, 지난달에야 등록해 주었다. 해외 생활이 길었으니, 영어 학원이 웬 말이냐고 했지만 아이의 입장에선 이 동네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영어뿐이라 이야기였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주변 아이들이 외우는 토플 단어들 앞에서 주눅 드는 시간이 싫어 내게 틈만 나면 영어 학원을 보내달라는 소리였다. 사실 외벌이 강남 살림에 쪼들려서 안보 내줬는지도 모른다. 취업이 되고, 경력단절이 해결되자 딸아이 학원 수가 늘어난 걸 보면 말이다. 학원이 무용한 걸 겪어 봐야 알겠지 하며 한 번 가보라고 시도해 볼 수 없는 집안 경제 상황이었다. 그러니, 작은 아이와의 대화는 지는 게임이었다. 학원 없이 잘해보자는 명분 뒤엔 안 보내는 게 아니라 못 보낸다는 걸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영어학원은 한국식으로 단어암기와 문법 교습을 시킨다. 토플 시험과 고등학교 모의고사 시험을 보게 한다. 딸은 신이 났다. 학원 선생님이란 상담을 하니, 여기서 이런 얘를 만나긴 쉽지 않다는 투였다. 학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방학 스케줄 시작으로 저녁 시간에서 오전 9시로 수업 시간이 바뀌자마자 아이는 10분, 20분 전 아침 일찌감치 호젓이 그리고 즐겁게 등원한다. 그리곤 학원 숙제를 하러 도서관으로 사라진다. 특히 나의 퇴근 시간 전에 집에서 5분 거리의 도서관으로 공부거리를 싸들고 가선 도서관 문 닫는 시간에 오곤 한다.
작은 아이를 마주하는 시간은 아침 먹는 10분, 아이가 돌아오고 나서 1시간 정도인데, 밤시간은 대화하기엔 피로가 쏟아져서 사실 소통 하길 내가 피하는 편이다. 그만큼 딸과의 대화는 내겐 실전이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선 온 신경과 온 마음을 다한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저 멀리 두고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토씨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듣고 맞장구치려고 한다. 첫째로 자란 나로선 작은 아이에게 이해 안 되는 점이 많다. 한국 돌아와 2년 꼬박 큰 아이에만 집중한 게 미안해서라도 작은 아이와의 대화에 진심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이런다. 그런데, 아이가 없다. 만나기 쉽지 않다.
독일에서의 시간은 외로움과 주목 그 둘 사이를 넘나드는 시간이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상대방이 이해할지 의문이었으며,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만 하자고 살았더니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또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건 누굴 만나건 이질적인 대상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 맞춰주면서 사실 내 이야기할 시간을 기다렸다.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끝나자 내 이야기는 한 줄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곳엔 말하고 싶어 안달 난 구천을 떠도는 귀신같은 나의 영혼이 아직도 맴돌고 있다.
좁은 한인 사회와 주재원 공동체 그리고 주재원 가족이라는 위치는 주목의 대상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주재원끼리 여기 나올 정도면 회사도 우릴 인정해 준 거란 인식이 떠돈다. 뭐든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인데 말이다.
게다가 프랑프푸르트 외곽 독일 촌동네에선 아시안은 흔한 존재는 아니다. 눈에 쉽게 띈다. 현지인들에게도 우린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또 얼마나 빤히 쳐다들 보는지. 그러니 내겐 혼자인 이 시간이 생경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외롭고 말하고 싶고 그립고 허무하지만 뭔가 불안한 그 시간들을 이겨냈기에 오늘의 나는 조용히 자판을 두드리며 상태를 써 내려갈 수 있을게다. 그 어떤 고통의 시간도 힘든 경험도 의미가 있단 걸 오늘도 알아간다. 본격적으로 집을 나선 아이들과 언젠간 일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는 이 시간 또한 내일 어디쯤에선간 그 의미가 밝혀질 예정이다.
사진: Unsplash의Shelby Murphy Figuer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