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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22. 2024

독일 언제 와요?

한국 대기업을 그만두고 독일 기업에 취직을 한 남편을 따라 독일로 가게 된 그녀에서 연락이 왔다. 

"호박씨, 독일 언제 와요?" 

그녀와 독일에서 함께한 시간은 3년이지만, 그녀가 내가 가장 자주 만난 한국인이었으니 시간의 밀도로 보면 여러모로 그녀가 친밀도 1위다. 독일에 언제 오냐고 묻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마냥 반가워야 할 터인데, 나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하고 계산 없는 영혼이 아닌가 보다. 뒤따라오는 그녀의 카톡을 읽으며 입 안에 씁쓸함이 맴돈다. 

아무리 카톡을 되짚어보아도 그녀는 잘지고 있지 않다. 



내 입에 맛있는 게 들어오면, 생각나는 사람과 나누고 싶다. 나눔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딱 이거, 먹고 싶은 게 딱 이거라서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은 거다. 혼자 먹긴 아깝다 싶어 상대에게 권하는데 상대에겐 지금 이 메뉴가 닦은 아닌 거다. 심지어 상대는 이 메뉴를 싫어하게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거다. 

"환율이 너무 올라서 아직 차가 없어요."

나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그 시절, 그녀의 차는 벤츠, 나의 차는 아우디. 독일에서야 아우디가 벤츠가 벤츠가 비엠더블유라서 뭐 다 그게 그거지만 한국인인 주재원들에겐 엄연히 서열이 있는지라 그녀의 차가 제일 좋은 차다. A시리즈이건 E시리즈이건 상관없다. 

운전이 늘 자신 없는 그녀가 운전이 고민이라고 털어놓은 순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기사처럼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픽업하든 그녀 옆에 앉아서 내 목숨을 걸고 동행해 주든, 그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건 시간이라 그녀에게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사은품으로 '관심'과'신경 씀'도 따라간다. 


독일의 4월은 애매하다. 한국의 봄이 독일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봄도 귀하디 귀한 철이 되어가고 있지만. 태양이 적당히 다정하고, 잠바를 입어도 좋고 반팔이어도 좋으며 어딜 가더라도 비가 쏟아 퍼붓진 않아 모든 게 적당한 그 계절이 독일엔 없다. 긴 겨울만 지나가도 다행이다 싶지만 신난 마음에 우산 없이 가볍게 나섰다간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날씨의 독일이 눈에 선하다. 

어김없이 그녀는 날씨를 탓한다. 

"아직 겨울이에요."

맞다. 독일의 막강한 겨울은 한 여름이 되어도 위세를 떨친다. 

차가 있어도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운전해서 갈 능력이 안 되는 그녀다. 아직 차를 마련하기 전인 데다, 아이들은 독일계 국제학교를 걸어서 등교하니 학부모들을 만날 일도 없다. 키 크고 날씬한 몸매에 자신이 있는 그녀라 산책을 포함한 그 어떤 운동도(골프 제외)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다. 걸을 일이 없다. 


부디 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운동화 신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독일 들판을 걸어 다니시오.

그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거의 마지막인 최선의 조언이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나로선 이미 최선을 다했는지라 사실 한국 와서 그녀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만났고, 역시나 그녀는 독일에서의 시간에 갇혀있더라. 뒤를 돌아다보고 가진 것을 사랑하며 현재에 멈추고 싶어 하는 그녀를 알아버린 호박씨는 옛 버릇이 또 나온다. 사람에게 질리고 사람을 피한다. 더 이상 그녀를 싫어하기 전에 거리를 두는 거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을 걸 볼 때 나를 생각하시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주재원으로 지내던 그때 그 시절, 아이들이 무사히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며, 학교가 끝나고 플레이데이트가 잡혀있어 하릴없이 브런치를 1시까지 즐기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다시 독일에 가게 된다면 주재원으로 가게 될 터인데.... 그녀는 더 이상 주재원이 아니라 나완 상황이 다르며 그녀의 상황도 내게 이해 봤지 못할 터인데..... 

하고 싶은 말이 그녀에게 많아도 너무 많은데, 말을 돌릴 뿐이다. 

여전히 독일에 남아 있고 앞으로도 독일에 있게 될 한인들과의 교류가 있는지,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생활을 지내보라는 권유를 한다.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한국인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밧홈북 체스클럽을 검색해 준다. 기분 전환 겸 좀 거리가 먼 터키 여행을 가보라고 한다. 

그런 조언을 그녀에게 하고 있는 나는 작은 아이가 중간고사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옆에서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목이 해진 잠옷 바람으로 고등학생인 큰 아이가 중간고사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이 아름다운 봄날의 서울 작은 구축아파트에서 스크린을 향하고 있다. 점심은 뭘 해 먹어야 하나, 친정엄마가 가져다 주신 갖가지 봄김치에 무엇이 어울릴까 고민해 본다. 



그녀가 말한다. 

"독일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서요. 주재원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가 글로 그리워하는 독일에 있으며, 나는 그녀가 지금이라도 돌아오고 싶은 한국에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그녀는 내게 지내기 괴롭다는 하소연을 하고, 복에 겨운 소리라 그녀에게 말하길 애써 피하며 마지막 남은 우정을 짜내어 본다. 


 "한국 미세먼지 장난 아니에요!" 

봄비 덕에 미세먼지가 싹 씻겨 내려갔다는 사실을 숨기고 우정을 살려보는 거다. 5년이라는 긴 독일생활에 친구 한 명쯤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나는 외톨이가 체질이지만 말이다. 



사진: UnsplashParsa Mahmo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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