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Oct 28. 2024

다시 독일에 가게 된다면 말이야

 출근길을 선택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지하철 한 정거장만큼 걸으면 환승 없이 지하철을 타고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 덜 걷고 지하철을 타면 고속터미널의 긴 환승을 해야 하고, 걷는 시간도 같은 데다 고속터미널의 지하철은 유동인구가 많아 오며 가며 속 시원함을 느끼기엔 사람이 많다.


                                                     



지난주 남편의 생일날 남편은 생일 케이크도 먹기 전 퇴근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더니 혼자 산책하고 오겠다면 나가버렸다. 주재원 발령의 시간이 또 다가오는 게다. 독일에서 돌아오고 나선 매년 11월이 되면 남편은 심난과 설렘 사이를 오간다. 그와 함께 나는 걱정과 불안 사이를 오간다. 희박한 확률로 우리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발령이 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그는 홀로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내게 전한다. 

독일에서의 시간이 내 앞에 툭 놓였다. 졸지 말자. 무서워하지 말자.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자. 수도 없이 되뇌어도 두 아이들하고만 함께 하는 시간이 되자 무거움을 이기기 버거웠다. 뭐라도 해야 한다. 

"만약에 말이야, 너희들한테 어느 나라에 가서 아빠가 일할 수 있을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갈래?"

"어? 우리 나갈 수 있어?"

아이들의 반응 속엔 이미 답이 있다. 이들은 한국에 남겠다고, 다른 나라에서의 삶은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독일에서의 시간들은 내게 고생으로 온전히 왜곡되어 기억되고 있지만, 아이들에겐 산으로, 운동장으로 친구네 집으로 놀다 놀다 그러고도 계속 놀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들의 해외생활엔 좋았다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건 분명하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아이는 잘하지 않는다. 작은 아이가 주로 내게 재잘거리는 건 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학원에서 만난 이상한 인연들이다. 그런 아이가 한국에서의 지나간 시간과 현재 자신이 느끼는 걸 한참 이야기한다. 집에서 고속터미널까진 주말 교통이 좋지 않아 뭘 타고 가도 걷는 게 제일 빠르다. 우린 붉은 등을 켜고 서있는 차들을 지나치며 곧게 뻗은 행인 드문 8차선 옆을 걷는다. 아이는 한국에서의 오늘을 읊조린다. 

"엄마, 한국은 모든 게 공부로 통해. 재수 없는 애도 공부를 잘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거든. 재수 없는데 공부도 못하면 진짜 개 욕해." 

그렇구나. 둘째라 예쁘기만 하다. 힘들 때 기댈 수 있을 정도로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 타인 속에 심지어 부모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속엔 사리가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터널의 한 중간에서도 둘째 정도면 양호한 축에 속한다. 

"근데, 해외 가는 거가 도피인 거잖아."

아픈 데를 정곡으로 찌른다. 나가고 싶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한국에서의 청소년시기가 고되단 소리다. 괜찮은 거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거니까라며 참고 참지만 아슬아슬한 마음을 늘 품고 산다. 둘째의 '도피'라는 단어가 불안함을 온 마음으로 퍼뜨린다. 





 사람이 적당히 있는 출근길이 좋다. 한참을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사무실 앞이다. 공황장애와 신경쇠약을 낫게 해 준 건 출근길이다. 송두리쨰 덮쳐온 삶의 불안함은 매일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책임질 게 있다면, 불안해서야 쓰겠는가 싶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또는 '뭐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참 젊은이들이 나보단 훨씬 불안해하는 일상을 살고 있으며 불안함을 껴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그들을 거울처럼 살피며 내 불안함을 토닥일 수 있으니 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 경력이음이 나를 살렸다. 독일이든, 경력이음이든 뭔가를 앞을 막는다 해도 껴앉고 함께 춤춰야지. 피하지 않을 것이다. 리듬을 느끼면서 헤엄치듯 천천히 함께 움직일 것이다. 해외 생활은 도피가 아니라, 그저 삶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야 말 것이다. 나는 그냥 천상 엄마니까. 


"엄마, 한국은 사람을 역할로만 본대. 엄마는 ***인데 **이 엄마로만 부르잖아. 단순하게 부르는 게 한국사람들 버릇인 거 같더라."

작은 아이가 한참 자신의 현재를 토로하고 잠잠해지기 시작하자 큰 아이가 나선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치다. 독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겐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로 세상과 기성질서에 대한 불만이 넘쳐났을 것이다. 사춘기를 한국에서 나고 있는 큰 아이에겐 한국의 단점들만 천연색으로 보인다. 

 한국 밖으로 나가면 엄마와 동생과 이렇게 하염없이 길을 걸어가면서 재잘거리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잘 다듬어진 서비스를 받은 오늘을 그리워할 것이다. 한국의 좋은 점들만 총 천연색으로 떠오르는 그런 날이 올 게다. 한국을 진짜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오려면 큰 아이는 한국 밖으로 나가야 하는 할런지도 모른다. 내겐 상상만으로도 벌써 오늘이 그립다. 남의 나라살이를 상상하기만 해도 지금 이 곳이 좋다. 

   

사진: Unsplash의 The Cleveland Museum of Ar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