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잘 안 풀리면 흔히 하게 되는 것이 남 탓이다. 잘 안되면 주변을 탓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독일에서 돌아와 혹독한 코로나를 거치며 나의 공황장애 겸 갱년기, 남편이 아버지를 잃는 상실, 그리고 큰 아이의 사춘기가 동시에 우리를 덮쳤다. 작은 아이가 시간이 다 흘러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짬이 된 엄마를 발견하고는 하는 말이
"나 그때 집에 들어오기 너무 싫었어."
였다. 작은 아이는 자신의 표현이 온전히 다 전해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기 머뭇거린다. 아이는 집단 따돌림을 당해도 스스로를 탓한다.
국제학교 유치원에 한국애들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다. 남편의 회사는 연령에 관계없이 국제학교 학비를 내어주기에 국제학교 부속 유치원을 일찌감치 집어넣었고, 아이는 만 3세부터 그 반의 유일한 한국아이였다. 그러다 남편 회사와 같은 계열의 아이가 들어오면 작은 아이는 기뻐했다. 진심으로 기뻐했었다. 아이는 외로웠었다.
만 5세, 7세 반이 되자 H사 계열사에서 유치원 지원이 되었다. Primary Grade는 우리 나이로 치면 7세 반인데, 초등1학년이 아니어도 7세 지원을 해주는 회사들이 있어 한국아이가 한 반에 3-4명이 되었다. Open House,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식날 아이 얼굴에서 반짝이는 기쁨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이는 더욱더 외로워졌었다. 그다음 단계는 당신이 짐작하는 바와 같이 아이의 자기 학대가 시작되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쌓여가는지 알지 못했고,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에서 얻은 상처는 한국에 와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 여자애들 둘과 친구가 되더니, 결국 아이는 그 둘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엄마, 난 3이란 숫자가 싫어."
아이가 처음 당한 따돌림도 3이었었던 지라 그렇하다. 아이가 스스로를 따돌림당할 만한 이상한 아이라고 불렀다. 성격도 나쁘고, 철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따돌림은 나에겐 당연한 거야 라며 판단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돌렸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엄마처럼 너를 조건 없이 사랑할 인연이 어딘가 꼭 존재하니 스스로를 폄하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말했지만, 아이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내게 외출을 청한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그 아이들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상처를 드러내고 기억을 끄집어내고 우리는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 엄마, 그때 걔가 말이야."
세상 어디엔가 딸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할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토하듯 말했던 나의 외침은 이제 아이의 마음 한쪽에 잘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아이는 단단해졌고, 좋은 인연을 만났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려고 매일을 성장 중이다.
내게 또는 아이에게 다가올 어떤 아픈 인연에게 "너 때문이야!"가 아닌 " 당신 덕분입니다."를 외칠 수 있는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는 아이보다 참을성이 없는가 보다. 조건이 좋지 않거나 맞추기엔 거리가 꽤나 먼 동료를 대하면 종종 남 탓을 하고 싶다. 또는 괜한 자폭을 하고 싶다. 공부 많이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애나 키우다가 머 하러 집 밖에 나서서 이런 소리와 이런 처우를 받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고개를 쳐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을 조금만 더 멀리하고, 다행하게도 신이 내게 줄 내일에다가 오늘의 나를 가져다 놓고 보면 사실 오늘의 이 상처는 내일의 나에겐 도움이 된다. 내게 상처 준 사람 때문에 나는 이 모양인 게 아니라, 상처 입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지금 난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러니 오늘 입은 상처는 너 때문이 아니라, 당신 덕분이다. 당신 덕분에 내일의 내가 오늘보단 좀 더 자라 있을 기회가 생긴 셈이다. 상처를 입어야 상처를 치료해 보지.
작은 아이는 1년 중에 한 번만 아픈 아이다. 대신 그 한 번이 심하게 한 번이라 앓아누우면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잠만 잔다. 그렇고 나면 연하게 그려져 있던 쌍꺼풀이 진하고 느끼하게 생겨나서 쌍꺼풀 수술 비용을 벌곤 한다. 1년에 한 번씩 아이가 아프고 일어날 때마다 아이가 예뻐 보인다. 오늘의 나 또한 이 상처로, 그리고 이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으로 예뻐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