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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03. 2024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눈치 보지 않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시간이 왔음에도 큰 아이는 마스크를 고집했다. 모난 데 없는 얼굴인데 거울을 보지 못했고, 성치 않은 곳 하나 없는 몸이었지만 벗지 않았다. 매년 여름휴가는 해운대로 가는 거라고 어머니도 남편도 기대하는 바를 알기에 아이도 데리고 간 일주일여의 시간이 그토록 무서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코로나 속에 빠진 아이를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입던 이중 겹의 학교 잠바를 입고 해운대 백사장에서 아이는 비지땀을 흘렸다. 잠바를 벗으라는 아빠의 말에 아이는 강한 거부를 표했다. 

 

 이른 더위다. 5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낮기온은 20도를 넘고, 사무실의 젊은 직원들은 에어컨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큰 아이가 졸업한 학교 잠바를 입고 다니는 중학생들을 찾을 수 있다. 한겨울에도 입던 진한 감색 잠바를 입고 하얀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과 마주친다. 눈이 무거워진다. 마주친 학생의 눈동자 너머로 위로를 건네본다. 이 모든 건 지나간다고, 아직 너에겐 시간이 많다고,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저 학생은 큰 아이가 아니다. 오늘 아침 아들은 오후엔 날씨가 덥다며 바람막이를 찾고 있었다. 이중지 학교 잠바가 두꺼우니 제발 이거라도 입었으면 싶어서 사줬던 시커먼 비닐 잠바가 쳐다보기 싫은가 보다. 고등학교 입학하던 겨울,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얀 사파리 잠바를 싸게 사서 옷장에 걸어두었었다. 꺼내 입은 아들의 어깨가 잠바와 딱 맞다. 하루에 1끼나 먹던 3년의 시간으로 아들은 말랐지만, 어깨가 넓어졌고 키도 커져서 넉넉하게 사파리가 잘 맞는다. 시커먼 중학생 무리 사이로 하얀 잠바를 입은 애가 있다면 큰 아이일진 몰라도, 마스크를 끼고 온몸을 가린 저 중학생은 내 아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참을 쳐다본다. 저 학생도 학생의 엄마도 힘들 것만 같다. 


내 아이가 마스크를 벗었다. 밥을 먹는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집 밖을 나가고 학교를 간다. 또래 아이들과 말을 나눈다. 오늘을 만끽하며 춤추듯 출근하고 기뻐하며 퇴근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두꺼운 감색 잠바에 마스크를 쓰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과 매일 마주한다.  

"덥지?" 

그들에게 말을 건네어보고 싶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아파트 앞 놀이터 그늘 아래서 쉬었다 가라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너를 이해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집으로 향하기 전에 한숨 돌리고 가라고. 

큰 아이가 무사히 성인이 될 수 있을까? 아침을 깨우는 멋진 수탉도 아니고, 엄마닭만 쫓아다니면 되는 솜뭉치 병아리도 아닌 중간 어딘가의 닭을 이르는 단어가 영계다. 영계의 깃털 색과 일치하는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선다. 내게 인사를 한다. 

"바이바이!"

겨우 학교를 나서면서 급히 마스크를 찾았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발견하지 않길, 이 마스크만 쓰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었다. 새 마스크를 사용할 줄도 몰랐고, 여름에도 두툼한 마스크를 끼고 다녔기에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건 여름용 마스크를 사 쟁이고, 걸어둔 마스크가 더러워지면 깨끗한 마스크로 바꿔두는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아들을 위로해야 했다. 


매일이 사춘기다. 나 또한 사춘기다. 영계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영계란 어디까지를 이르는지 가늠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매일이 그렇하다. 무사히 저 영계의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게 아님을 알기에 눈물 고인 눈으로 감색 잠바의 중학생들을 바라보게 되나 보다. 저들의 방황과 나의 일탈은 극소수, 아니 단 한 명의 공감만으로도 정상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 춤을 추다 멈춰봐야 춤의 시간이 가지는 혼돈과 불규칙함,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계의 시간 없이 수탉이 될 수 있는 닭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다시 마스크를 끼고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시간이 살면서 다가올 것이다. 오늘의 내가 그러하듯 말이다. 



 사진: UnsplashLeon 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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