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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05. 2024

그깟 제주행 비행기

5년 만의 비행기는 제주행이다. 독일서 한국으로 돌아왔던 2019년 12월 31일부터 4년이 지나서 타게 된 비행기는 큰 아이와 둘이서 타게 되었다. 친정 부모님과 작은 아이, 남편은 제주도에서의 봄바다와 고등회를 부지런히 단톡방에 올려주고 있었다. 그 이틀 동안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 과연 비행기가 상공으로 올라가는 동안의 움직임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나만의 사정이었다. 제주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내게 비행기 타는 동안 괜찮았냐고 묻는 건 오직 작은 아이뿐이었다. 이틀 내내 걱정했노라고, 사실 이륙하는 내내 나만 떨어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엄마니까. 

딸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말해도 되기 때문이다. 

" 엄마, 나는 비행기 뜰 때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어쩌지 하고 생각한다!"

응. 엄마도..... 이렇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Incredible 알지? 거기 Elastic처럼 엄마는 늘어나고  아빠는 그 밑에서 바치고 오빠는 발이 빠르니까 모터처럼 뒤에서 밀면서 뛸게. 떨어져도 걱정 없지?" 

중2인 아이가 꼬마처럼 웃는다. 큰 아이는 발이 빠르니 잘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고 엄마는 살이 잘 늘어나니 가능하겠단다. 그래, 우린 이렇게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나가는 셈이다. 




9호선을 타고 큰 아이와 김포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였다. 중간고사로 한 과목으로 보고 돌아온 아이와 출발했으니 출발 시간은 겨우 12시. 정오에 저학년 아이들의 하교에 맞춰 달고나 할아버지가 지하철 역 앞 초등학교 정문에서 달고나 생산 작업에 한창이시다. 캐러멜라이징된 설탕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했던 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눈이 빨개져 있고, 연신 눈을 껌벅인다. 

" 저 할아버지가 저기 길에 있다는 게 이게 말이되?"

 바짝 마른 노인이 초등학교 앞에 앉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원 짜리 달고나를 파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은 불행하기 짝이 없단다. 왜 살아야하는에 대해 아이는 자꾸 묻는다. 내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을 구한다. 

그때부터 비행기 타기까지 아이는 내내 울었다. 우는 걸 숨기기 위해 눈을 껌뻑여 보고, 눈물을 닦아도 보았다. 탑승 수속을 하고 기내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 

"나 독일에서 한국 올 때가 생각나."

휴지가 한 장도 없다. 목에 매고 있던 스카프를 아이에게 쥐여주었다. 힘들었다. 13살에 돌아온 낯선 나라, 내 나라라고 엄마가 말한 한국은 쉽지 않았다. 내내 살았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을 아이는 한꺼번에 몰아서 겪어냈고 겪고 있으니 쉽지 않다. 그래서, 우는 걸까? 온실처럼 사는 지역과 나라에서 분리된 국제학교라는 보금자리를 떠나온 상실을 4년이 넘게 지난 오늘에서야 아이는 느끼고 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김포에서 제주로 떠나올 때는 나만 떨어져 죽을 것 같아서 심장이 쫄깃해지고, 박동이 빨라지더니 제주에서 김포로 이륙할 때는 잠을 잤다. 그것도 꿀잠으로 잤다. 자리가 복도자리가 창가와 중간 자리의 신혼부부가 타자 마자 내 자리를 차지하고는 반듯하게 앉아 서울 도착할 때까지 잤다. 

 딸의 Ms.Elastic이 되어야 할 나는 간데 없이 말이다. 제주행 비행기에서 울어대던 아들은 나보다 10 좌석이나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았다. 만석이라 친정부모님을 포함한 여섯 식구 모두 떨어져 앉았는데, 내 자리를 찾고 나서는 일일이 그들에게 가서 자리를 확인했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잠이 잘 온다. 

 공항 발작이 나던 날, 앞으론 지하철을 탈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버스도 택시도 타지 못할 것이라고 비행기 여행은 이제 생각도 못할 거라고 걱정했다. 혹시 남편이 다시 독일에 발령이 난다면, 난 세 가족을 먼저 독일로 보내고 걸어서 서울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리라 결심했다. 

그런 나에게 이런 행운이 온 건, 집이란 공간에서 부비적거리고, 밥을 나눠먹고, 눈물에 찬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란 걸 안다. 고작 제주행 비행기 타며 가족들이 비행기가 추락하면 내가 구명보트가 되겠다며 다짐해 보는 이 촌극의 이유는 그들 덕분에 비행기를 탈 수 있고, 제주바다를 볼 수 있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문 그림 : 영화 The Incredible- Elastic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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