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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18. 2024

장국영보다 나은 아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했다. 이다지도 거지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그가 죽을 수 있을까? 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던 날도 이렇게 화창한 날이었다. 태양이 날 비웃는 듯했다. 너는 이렇게 영원할 수 없지? 영원히 빛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세상에 뭐 하러 나왔냐고 물었다. 

 취업이 되지 않았다. 원서를 100개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말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원서를 써도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취직이 안 되는 걸 보니, 세상은 날 원하지 않는 거다. 지금에서 되돌이켜보면 이미 우울증이라고 해도 모자랄 게 없는 상태였다. 약국을 12시간 넘게 운영하시는 부모님이 출근하시기 한 2시간 전, 새벽 5시쯤 폭탄 터뜨리기 같은 게임을 하면서 PC 앞을 지키던 7시간을 마무리하고 잠을 잤다. 바닥에 이불 깔고 머리만 붙이다가 일어나면 1시. 엄마가 해둔 반찬에 밥 차려 먹기가 죄스러워 라면 비슷한 거로 끼니를 채우고 케이블 TV를 틀었다. 하루 종일 나오는 케이블 TV. 패션 채널을 틀면 열불이 터졌다. 화면에 저 모델들이 입고 나오는 저 예술 작품 같은 옷들을 만들고 싶은 게 죄인가? 왜 난 여기서 이 소파에 달라붙어 있는 거지. 반듯한 30평 아파트 거실로 파고드는 태양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장국영은 뭐든 원하는 뜻대로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말이다. 호텔에서 뛰어내린 것도 어쨌든 용기가 아닌가 싶었다. 이 지긋한 스물 중반 끝장 내버릴 용기도 없는 나란 인간은 명문대 유망학과 졸업을 2월에 마치고 집에서 PC로 원서를 쓰고 있었다. 아니, 내는 족족 실패하는 원서 때문에 정수리 한가운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장국영은 뭐가 뜻대로 되지 않아 목숨까지 끊었단 말이야. 되는 일이 단 한 개도 없다.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은 태양처럼 영원히 빛나야 하는데, 이 많은 연예인들 중 유일하게 사랑하는 눈빛을 가진 사람조차도 세상에서 사라진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한국이 문제라고 했다. 아이가 맛있다고 전달 칭찬했던 식혜 떡볶이가 딱 한 입만큼 부족하다고 해서, 부랴부랴 아이가 학교에서 자습하고 돌아올 10시를 맞춰 덥혀둔 떡볶이였다. 칼로 굵직하게 썰어낸 떡 네댓 개를 먹더니 배가 부르 다했다. 더 먹지 하고 권하는 내 말에 아이는 왜 한국에서 공부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처럼 영어가 편한 사람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건 부조리해. 점수도 시험도 다 불공평하잖아." 

 말문이 막혔다. 20년 전 나의 부모에게 이렇게 당돌하게 물었던 적이 있던가? 원망이 떠오른다. 난 부모에게 지금 아이처럼 우는 소리 한 번 하지 못했는데, 아들은 내게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불공평하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영어 환경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록 나는 부모에게 요구한 적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 살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왜 살아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을지언정, 나는 엄마가 아닌가? 

 제대로 된 엄마가 되겠다는데 유일한 삶의 목표다. 그리고 내겐 늘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가 살아있는 한, 내가 살아있는 한 내겐 계속계속 시험이 닥친다. 아이가 멋있는 삶 한 번 살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자꾸 내게 온다. 나는 엄마다. 그러니, 지나간 엉망진창의 스물다섯을 아들이 맛보지 않게 할 것이다. 다시 살아보는 기회. 그게 엄마인 자가 누릴 수 있는 기회다. 



 천녀유혼처럼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에서도,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만큼 섬세한 작품에서도 그의 눈빛은 한결 같이 진심이었다. 장국영은 늘 청춘이었다. 가진 게 없어도, 맨발이어도, 목이 늘어진 하얀 러닝을 입고 있어도 빛나는 사람이었다. 

 수능시험을 잘 봤던 엄마라서, 대기업에 취직해 본 적이 없어서, 같은 음식을 되풀이해도 늘 눈대충으로 양을 맞추는 그럼 엄마일지라도 멋있게 보이고 싶다. 20년 전 한낮의 거실 케이블 TV 앞에서 하루를 보내던 그 멍청한 대졸자 시절에 대해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장국영처럼 죽을 용기도 없을 탓하던 시간은 엄마이기 전 나만 아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 당장 해외고등학교로 자신을 보내달라는 아이에게 있는 힘없는 힘을 다 짜내어 다독일 수 있는가 보다. 

 얼마나 공부하기 싫어. 한국말로 둘러싸여서 사는 오늘이 얼마나 힘드니. 이렇게 다정한 말도 해보다가, 으름장도 놓아본다. 징징거리는 너에겐 유학비 비슷한 거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협박해 본다. 한국 적응과 함께 닥쳐온 코로나로 친구는커녕 그 어떤 사회적 관계도 없이 지나온 3년으로 아이는 녹다운되어 방에 스스로를 가둬두었었다. 너는 그렇게 약해 빠졌어라고 나무라니 아이의 눈이 빨개진다. 남자가 저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아, 나의 장국영도 저런 눈빛이었었다. 위로와 공감만이 필요한 검고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약해 빠졌어. 남자지만 말이야. 그렇니 너는 당차고 단단하게 살아가.'

아이는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게다. 유학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유학비를 통장에 꽂아주고, 유학원을 알아봐 주는 엄마가 아니라 ' 힘들지. 사는 게 힘들지?'라고 고개 끄덕여줄 존재가 필요한 게다. 

 아이 앞에서 눈물 흘리고 소리 지르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내게 감정을 토로하는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데에도 기진맥진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이렇게 나타나보다. 떡볶이 접시를 앞에 두고 식탁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아이가 부랴부랴 씻으러 들어간다. 

" 엄마, 나 자야 해."

 우린 그렇게 또 하루의 막을 내리고 내일을 살기 위해 자러 갔다. 장국영처럼 스스로 삶을 끊을 용기는 없어도 내일을 살기 위해 잠을 선택하는 용기가 우리에겐 있다. 아들과 난 장국영보다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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