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여기저기에서 일을 했다. 자원봉사 또는 부모참여의 이름으로 학교 어딘가에 몸을 닿고 있으면, 아이들과 닿아있는 듯한 안도감이 선물로 다가왔다. 애들 주변을 맴돌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원하는 만큼만 주어지지는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정해진 자원봉사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만큼 뭔가에는 시간을 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보상받지 못하는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소기의 목적, 아이들의 언저리에 위치할 수 있다는 게 달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뭐 하는 건가, 나는 누 군인가 하는 현타가 가장 심하게 올 때가 인사였다. 10분 전에 만난 사람을 학교 복도에서 다시 마주치기도 하고, 한 달 전쯤엔 나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과 지나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마음이라는 게 인종에 따라서 바라는 바가 달라졌다. 아시안이라면 여성이라면 왠지 나와 동일한 만큼의 인사를 했으면 싶은데,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일본계 브라질 국적의 T 엄마가 작년 딸아이 반으로 전입을 왔었다. 전입을 오자마자는 그녀가 혼자 있으니 가서 말도 걸어보고 그녀도 너희 집에 놀러 가꾸마 하며 살갑게 대화를 나눴었다. 1년이 지난 그날 T엄마와 그녀보다 10살은 족히 어려 보이는 금발의 젊은 남편은 국제학교의 임원을 도맡아 하는 인싸 중 인싸가 되어있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넷 인 데다, 학교 임원이니 그녀도 늘 학교 어딘가에 있었고 게다가 나의 주활동무대인 북스토어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사도 있어 그녀와 복도에서 마주치는 건 다반사였다. 미소는커녕 눈인사도 하지 않고 큰 키에 맞는 빠른 보폭으로 지나가는 그녀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그녀는 큰 키를 뺀다면 영락없는 일본인이니 나의 기대와 반가움은 컸던 가보다.
미군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던 A엄마는 비욘세를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피부의 소유자였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이야기를 길게 나눠보아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영락없이 내 눈엔 연예인이다. 국제학교에 아이들이 다닌 지 6개월 만에 A엄마는 학교를 떠났고, 또 남편을 따라 3년 후에 다시 국제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는데, 그녀는 기억하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즐기던 폭탄주, 젓가락질에 대한 고찰 등 그녀와 나눴던 짜릿한 대화가 그리웠지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T 엄마 마냥 섭섭까지 하진 않았다. 비욘세가 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여겼다.
인사라는 게 사실 작지만 크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한국식 인사법을 지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과 다시 마주치게 되면 다시 '할로'를 해야 하나 아니면 눈만 맞추고 목례만 하고 지나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 고민으로 얼굴에 적당한 미소를 뗬다. 만일 내 미소에 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만 기분 나쁘고 말지 상대방은 알아차릴 수 없는 정도의 미소를 장착했었다.
상대가 미소는커녕 눈 맞춤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 냉랭한 공기가 우리를 에워곤 했다. 그러니 밑지는 장사는 그만해야 하는 거였다. 똑같은 실수를 한 번만 하는 거지 두 번은 안 하는 거다 했다. 이런 인색함을 탑재하게 되면 순간은 이득이고 잇속 차리는 거 같다.
괴롭다. 잇속을 차리는데 괴롭다. 내 것을 챙기는 건데 익숙하지가 않아서 어렵다. 그 시간에 그 공간에 또는 2016년 어느 겨울 어둑한 독일의 국제학교 복도에 함께 하고 있는 그 인연이 사실 순간순간 신기하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아, 나 독일이지. 와, 난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계속 숨을 쉬면서 잘 살고 있구나. 이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에 못 이겨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미소를 퍼부어야 성이 찰 텐데, 그 짓을 못하게 되었으니 어렵기만 했다. 아낌이란 마냥 어렵기만 했다.
10명의 직원이 함께 하는 사무실에 1명이라도 반차를 내게 되면 절간 같은 공기의 무게는 더해진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화면을 모고 있고, 사내 메신저로만 대화를 하기에 나와 그들 사이의 공기는 바삭바삭하니 물기가 하나도 없다.
오늘은 제대로 큰 사고 한 건을 발견해서, 잽싸게 사수에게 말을 걸었다.
" 잠깐 시간 되실까요?"
사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사실 전적으로 나의 불찰은 아니고,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며 업무의 영역도 내 앞으로 정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건은 아니었다. 상황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을 사수에게 꼭 하고 싶었다.
나의 어리고 똑똑하며 차분한 사수는 대응 방안 5개를 메신저에 올린다. 그에 따라서 대처하고 업체에서 온 전화도 그녀가 받아서 답변을 한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템플릿을 변경하고 내게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짚어준다. 이번 달 들어 그녀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사고였고, 내가 친 사고가 맞는 데다가 파장도 큰 데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마주한 내 얼굴엔 자꾸 미소가 떠오른다.
해결이 제대로 되길 바란다는 사수의 채팅에서 온기를 더듬는다. 프로답지 못한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큰 회사였다면 벌어진 사건은 고가에 반영되었겠지만 사실 인력 충원하기도 쉽지 않은 이 회사에서 사고침을 뭐 얼마나 나무라겠는가? 사건 사고 안 일어나면 다행이다로 끝나는 분위기다.
전날 종일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날 다음날, 보통은 인사를 할 힘이 나질 않는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나는 스크린을 보고 있을 게 당연하고 조그맣게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들어오는 개발팀원, 끝을 명랑하게 올리는 디자이너, 가장 조용한 아침인사를 건네는 사수와의 눈 마주침은 이루어질 리 없다. 그런 날은 그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기회가 없다. 대면으로는 그들과 눈을 맞추거나 말을 나눌 기회가 없는 6시간이다.
사고가 좋다. 사수에게 죄송하다고 할 망정 잇속 없이 나누는 순간이 좋다. 프로페셔널, 일하는 엄마, 워킹맘, 스타트업 재직자 이 모든 멋지고 그럴듯한 단어보다 단 한 번의 눈 맞춤과 옅은 미소 나눔이 훨씬 달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