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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May 14. 2024

남편은 수육을 차리고 아내는 말하고

1시간 일찍 퇴근한 남편이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고마움이 하늘에 닿는다. 저녁까지 혼자 먹어야 한다면 울지도 모른다. 아침은 아이들 나가는 순서대로 챙기고 그들이 남긴 음식에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혼자! 점심은 어제저녁으로 만들어둔 밑반찬에 밥을 챙겨 와 혼자 먹는다. 저녁은 어떻게 해서든 식구들 누구하고 라도 먹으려고 해 보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요샌 발생하는데, 그가 기다려주다니. 퇴근하면 허기진 표정과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로 배고픔에 허덕거리는 남편이라 강박처럼 그의 도착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살아온 시간이 17년이라 함께 먹겠다고 썰어둔 배추김치가 든 반찬통과 필라테스 마치는 시간 맞춰 끓여둔 육수가 어색하다. 

남편이 자리를 깔아줬으니 드러누워야겠다. 누운 김에 쉬었다 가라 했다. 누울 자리를 보면 뻗어야 한다고 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도 하지 않던가? 

" 나 오늘 처음으로 사람이랑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거야." 

가락시장에서 어제 그가 사 온 돼지고기는 나의 칭얼거림에 어울리는 반찬이다. 촉촉하게 삶긴 오겹살 수육은 그를 즐겁게 하고, 그의 식사시간을 늘려준다. 고맙다, 오겹살. 


"당신 말이 맞는 거 같아. 불공평해."

경력을 이은 아줌마들은 사실 가성이 좋단다.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가성 좋은 노동력, 경단녀다. 노동시장에서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 이들은 약자지만, 같은 약자라도 여성은 최약자다라는 의견에 남편이 동의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드디어 대기업 다니는 한국의 중년 남성에게서 끄덕임을 받았다. 

 저녁을 함께 먹고, 길마중길을 걸었다. 2시간 만에 그에게서 받은 백기가 아니었다. 이 세상이 다 나보고 집에나 있으라고 말할지언정 단 한 명만 나를 향해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주길 빌어왔다. 

" 애들이나 잘 키우지."

세상에 나가려 할 때 사실 이런 식의 조언은 나이 든 여성들이 쉽게 내게 건넸다. 친정 엄마, 고모. 어떤 이들은 나의 입사 소식에도 회사 어떻냐고 한 마디 묻질 않았다.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 한 회사를 20년 근속한 남편의 컨디션은 걱정하지만, 나이 든 신입사원으로 세상과 단절된 지 10년 만에 길을 나서는 나의 안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건 스스로를 박살내야 가능하다. 오겹살을 파는 가락시장의 호남축산 주인분은 가락시장 내에서 최고의 고기를 팔고 있지만, 가격 할인이나 적극적인 홍보가 없어 매출이 대단히 훌륭하진 않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은 호남축산의 분위기가 좋다. 더 많이 벌겠다고 고기를 많이 팔겠다고 나를 대한다 싶지 않다. 고기 자체에 자신감이 넘쳐나서, 더 사길 권한다기 보단 어딜 사야 적합해서 가장 맛있을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준다. 

 그런 호남축산 주인분은 옆집 구천구백 원짜리 가게에 사람이 넘쳐남을 부러워할까? 매달 월급을 정산하며 나는 나누기 곱하기를 해본다. 비록 내 노동이 이 정도의 가치를 띤다고 하더라도 난 일을 그만두지 않을 테야라고 혼자 다독여본다. 마음은커녕 말 한마디 나눌 일이 없는 사무실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젊고 어렸던 나의 신입사원 시절을 뒤돌아보며, 기억 속 꼰대들만 지우면 오늘의 업무환경이겠지 하며 착각했었다. 

오로지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한 사무실에선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를 혼자 되묻다 드디어 오늘은 누군가의 끄덕임을 보았다. 적어도 남편은 나를 향해 끄덕거리고 있다. 

"뭘 위해서 난 출근하는 거야, 여보?"

남편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숫자에 강한 사람이지, 말에 강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응. 이 정도면 그로써는 최선을 다한 문장이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경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하는 엄마의 등을 보여주고 있고, 한국의 노동시장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다. 나의 편인 남편이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홀로 계신지 만 2년을 채워가는 시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출장 겸 어머니와 석가탄신일을 보내고 올라올 예정이다. 그는 보수의 끝판, TK를 고향으로 둔 부모님에게서 자랐고 대기업을 한 군데만 다니고 있으며 늘 짧게 자른 머리를 유지하고 있고 어머니가 늘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읊조리는 누나 셋의 막내아들이다. 이다지도 보수적이고 뻔하고 귀하게 자란 그는 나의 선택이었고, 구역 이 사람을 데리고 진보와 혁신의 가정을 만들어보겠다는 마음도 오롯이 내가 결정한 바다. 쉽지 않다. 대화하려면 딱딱하고 단단한 그의 과거 또는 상처 입은 채 치받지 못한 그의 경험들과 부딪히기도 한다. 자신이 없을 때도 있고 오늘처럼 그와 맞설 힘이 1도 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짜릿한 날이 있다. 수육 먹으며 그의 동감을 얻는 바로 이런 날이 내겐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러니 멈출 수 없다. 대화를 반찬으로 하는 우리의 맛있는 저녁식사는 앞으로도 계속이다. 

사진: Unsplashvisualsofd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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